역사적인 시기 구분은 근본적으로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논쟁의 대상이 된다. 시간이 균일하게 흐른다고 가정한다면, 그 시간을 임의로 나눠 작년과 올해, 어제와 오늘은 다른 시기에 속한다고 확언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선험적인 근거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공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시대인들을 묶는 이른바 ‘세대론’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서구 사회에서는 1968년 5월을 경험했던 젊은이들을 ‘68세대’로 부르고, 한국에서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대학에 다녔던 사람들을 ‘광주세대’로 칭하기도 한다. 이들은 젊은 시절의 강렬한 집단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사회 개혁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8월에 졸업하는 여러분들을 ‘세월호 세대’로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4월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과 이후 일련의 처리 과정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총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대한민국을 슬픔과 분노에 빠뜨렸다. 배는 가라앉았지만, 안전을 도외시하고 무사 안일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던 고질적 병폐가 고스란히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지난 4개월여 동안 집단적 경험의 강렬함은 여러 세대론의 바탕이 되는 그것들에 비해 결코 덜하다고 할 수 없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의 희망찬 첫 걸음을 내딛는 졸업생들을 ‘세월호 세대’로 굳이 호명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주체가 되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재난의 유일한 가치는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의 숨어 있는 문제점들을 드러내는 경보 장치의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성장만을 추구하며 임기응변식으로 운영해온 사회 체계를 재구성하고,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을 강화하며, 벌어져만 가는 경제적 격차를 줄여나가는 일은 우리에게 오롯이 남겨진 과제다.

세대론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집단적 경험의 거대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경험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동시대인들과 연대하여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냈을 때 사후적으로 특정 ‘세대’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세월호 세대’의 실체는 현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미래에 있다. 졸업생들은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지성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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