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이 지난달 24일 누적 관객 수 1,600만을 돌파하며 화려한 성적표를 이어가고 있다. 천만 관객 최단 기록과 더불어 「아바타」를 제치고 역대 국내 영화 중 최다 관객 수 1위에 오르는 등 한국 영화사를 새로 쓰고 있다. 하지만 전국의 약 2,500개의 상영관 중 약 1,600개 가까이 스크린을 차지한 적이 있는 ‘명량’에 대한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이를 두고 스크린 독과점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명량」의 흥행을 단순히 스크린 독과점으로 볼 수는 없다. 「명량」의 좌석점유율이 개봉 첫 주에는 85%대, 2주차와 3주차 때에도 60~70%를 오가는 등 폭발적인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있었던 기존의 천만 관객 영화들과는 다른 양상이다. 관객이 원하기 때문에 많은 스크린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시장의 논리인 것이다.


「명량」이 스크린독점이냐 아니냐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명량」이 우리가 다른 영화를 볼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가 일 것이다. 만약 그 자리에 「명량」이 없었더라도 우리는 과연 다양한 영화들을 선택했을까?


◇스크린 독과점, 영화의 다양성을 막는 주범일까=한 건물 안에 10개 이상의 상영관과 부대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가 1996년 CGV 강변 11에서 처음 생겨난 이래, 영화관은 더 이상 영세한 곳이 아닌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같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이 되었다. 멀티플렉스 극장시대가 열리면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도 함께 대두했다. 제작·배급·상영의 3박자를 고루 갖춘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같은 대기업이 자사가 제작한 영화를 영화관에 자주 상영하는 일명 ‘밀어주기’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안숭범 영화평론가는 “영화는 상대적으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대중적인 종합예술”이라며 “경제적 리스크에 대한 고려 때문에, 기본적으로 작가적 개성이 반영되기가 어려운 문화콘텐츠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티켓 파워가 입증된 직관적 흥미 위주의 오락 영화를 집중적으로 제작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영화시장이 상업 영화에 기울어지면서, 다양성이 부족한 현상을 보이게 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영화 시장에서 대형 사업자가 수직적으로 독점을 이루고 있는 지금의 구조를 제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작년 7월 영화·영상 관련 학과 교수 54명은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특정 영화가 상영관 내에서 상영될 수 있는 스크린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요구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이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휩싸일 당시 흥행에 어리둥절해 하며, 다양한 소수 취향의 영화를 보호할 수 있도록 ‘마이너리티 쿼터’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독과점에 대한 제재가 시행된다고 해도 영화계에 닥친 문화적 다양성의 부재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이에 대해 “한국 관객은 영화 관람을 하나의 트렌드로 여기는 습성이 있다”며 “독립영화는 트렌드를 타기 힘들기 때문에 멀티플렉스가 들어서기 전에도 흥행이 어려웠기에 스크린 독과점 때문에 영화의 다양성이 침해받았다고 보긴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는 영화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상업 영화에 입맛이 길들여진 관객들이 직접 다양한 영화를 찾지 않는 이상 영화적 다양함의 폭이 넓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이다.


◇‘다양성 영화’의 현주소=기존 상업 영화 외의 다른 장르의 영화를 ‘다양성 영화’라 한다. ‘다양성 영화’란 기존 영화계의 주류를 담당하고 있는 상업 영화와는 다른 영화를 구분 짓기 위해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도입한 공식 명칭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현재의 불균형적인 영화산업 유통망을 바로잡기 위한 정책의 일부로 ‘다양성 영화’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다루거나, 형식 면에서 파격적이거나, 미학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내세우거나, 주제가 복잡해 대중과 소통이 어려워 기존의 상업 영화에서 다루지 못했던 범위를 다루는 영화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최근에 「그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비긴 어게인」 등이 관객몰이를 하면서 예술성을 내세운 영화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졌지만 몇 편의 대표적인 영화를 제외하면 ‘다양성 영화’는 턱없이 작은 시장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매년 결산에 따르면, 총 관객 중 ‘다양성 영화’ 관객의 비율은 고작 2~4% 정도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다양성 영화’는 홍보도 제대로 안 되고 비용도 많이 못 쓰니 입소문이 잘 나지 않고서는 흥행이 어렵다”며 “타겟 시장이 작은 영화에 대한 트렌드는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안정된 배급체계로 안정된 시장 얻기 까다롭다”고 ‘다양성 영화’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내다봤다.


상대적으로 관심도 적고 시장 크기도 작은 ‘다양성 영화’를 굳이 지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허남웅 평론가는 이에 대해 “예술은 일상에는 큰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대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영화의 다양성은 곧,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의 다양성을 의미한다”고 영화시장에서 ‘다양성 영화’가 갖는 의의를 말했다.


지금의 한국 영화계는 양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다. 안숭범 영화평론가는 이에 대해 “할리우드 거대 영화사들도 한때 투자, 제작, 배급을 모두 담당했으나 이에 대한 폐해가 나타나자 미국에서 제작과 배급을 분리하는 법안이 통과됐다”며 “우리나라도 근본적으로 제작사가 배급을 같이 하지 못하게 하면 좀 더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다양성을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생태계가 구축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영화는 상품인 동시에 예술이기 때문에, 단순한 시장 논리로 접근하기 힘들다. 다양성을 갖추지 못한 예술이 진정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 ‘다양성 영화’에 조금 더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까. 아직은 조금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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