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하면 떠오르는 최근 이슈는 단연 의정부고등학교의 졸업사진이다. 졸업사진이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파격적일 학생들의 코스튬 플레이에 사람들의 의견은 제각각이었지만, 나는 이런 행위예술(!)을 처음 시작한 학생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나 하는 궁금증을 지울 수 없었다. 입시 외엔 한 톨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한국 고등학교에 저런 시도를 하다니! 당장 내가 대학교 졸업사진을 저렇게 찍는다고 나선다 해도 벌어질 상황이 까마득한데, 경이로우면서도 그 용기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안타깝게도 『대학신문』에게 졸업호는 의도는 없고 껍데기만 남은, ‘박제된 특집’이 된 지 오래다. 『대학신문』 졸업호는 한 학기 발행되는 10~12개의 신문 가운데 가장 짧고 정형화된 신문이다. 매년 초 입학호가 상대적으로 다채로운 기사들로 꾸며지는 데 비해 졸업호는 수년 간 같은 코너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반복되어왔다. 두어 장 들어가는 종합면에 이어 졸업생 인터뷰, 정년교수 인터뷰, 떠나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차곡차곡 지면을 채우고, 마지막으로 단과대별로 정리된 졸업생 명단이 실린다.

실린 글들 모두 좋은 내용이기는 하다. 하지만 솔직히 몇 년 전 글을 가져다 놓아도 신문을 들춰보지 않는 이상 전혀 모를 게 분명하다. 코너가 같다고 내용도 같으면 그거야말로 지면 낭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 현재, 여기의 시대정신을 표방하는 『대학신문』은 왜 유독 졸업호에서는 한 박자 쉬어가는가? 지금의 졸업호에는 수십 년 전부터 반복된 틀에 박힌 인터뷰와 아무도 읽지 않는 편지가 있을 뿐, 시의도, 변화도, 세월도 없다. 

혹자는 촌각을 다투는 기사 한 줄이 아쉬운 지면에 매 학기 같은 특집을 반복하는 게 낭비라고 보는 것 같지만 나는 졸업호에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신문』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라도 자기 이름이 실린 입학호와 졸업호 하나쯤은 가지고 싶어 하니 말이다. 『대학신문』으로서는 잠재적 독자층에게 스스로의 존재를 ‘영업’할 더할나위 없는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또 새로 구성된 기자단이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발행하는 첫 신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졸업호가 읽는 것을 넘어 졸업앨범에 끼워서 간직하고 싶을 만큼 재기발랄하고 알찬 특집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졸업하는 자녀,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진부하다면, 졸업하는 부모나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싣는 건 어떠한가? 졸업생 두세 명의 기고를 받는 대신 졸업할 나이가 된 학번들의 역사를 추적해보는 건 어떨지? 정년교수 인터뷰처럼 졸업생 인터뷰도 단과대마다 한 명씩 선발해 졸업생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수십 년을 내려온 전통에 칼을 댄다는 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혁신이라는 게 말보다 행동이 백만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기자생활을 할 때 못했던 일을 남한테 왈가왈부 하려니 한편으론 멋쩍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누군가 용기를 내길 바라본다. 내가 졸업할 때가 되어서도 『대학신문』 졸업호를 펼쳤는데 읽을 거라곤 깨알같은 글씨체로 적힌 내 이름뿐이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이옥지
동양사학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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