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웠으면 합니다.”

동양화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는 리강씨는 졸업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경남 밀양 출신인 할아버지가 일제 때 이주한 만주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옌볜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신양 로신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중국 소수민족 민족백화 미술대전’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등, 중국에서 화가로 인정받던 리씨는 모교인 옌볜대학에서 8년간 전임강사로 동양화를 가르쳤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자주 해주신 이야기를 통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옌볜대학과 교류를 갖고 있는 전남대 등 한국의 대학들을 통해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리강씨는 한국의 전통미를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2001년 우리학교 동양화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디자인에서 동양화로 전공을 바꾼 것은 며칠 밤을 지샐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정말 잘한 선택인 것 같다”며 “캔버스 위에 빼곡하게 물감을 덧입히는 서양화와 달리 이곳저곳을 여백으로 남겨두는 여유, 먹이 종이 깊이 스며드는 느낌, 깊지만 깔끔한 붓놀림, 방안 가득 퍼지는 묵향”을 동양화의 매력으로 꼽았다.

 

 

또 리씨는 “1900년대 한국에서 일어났던 변화가 100년 뒤 옌볜에서 한국이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창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며 “한국에 온 것은 내 인생에 있어 큰 행운이자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동양화 공부에서 “주입식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반영한 창의적인 내용을 중시한다”며 “한국의 수업 방식은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고 혼란스러웠지만 매우 유익한 충격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리강씨의 한국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특히 “모든 외래어를 중국어로 바꾸어 말하는 옌볜과 달리 외래어가 그대로 사용되는 한국말은 알아듣기 힘들었다”며 “지금처럼 듣고 말할 수 있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웃었다. 또 “서울대의 등록금이 중국 대학에 비해 3~4배 정도 비싸고 서울 물가도 높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며 그림을 사주고, 동화책에 삽화를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소개시켜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준 한국의 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에게 “최대 의지로 전통 속으로 들어가 최대 용기로 떨치고 나오라”는 중국 화가의 말을 인용하며 “한국 학생들은 그림에 대한 감각은 탁월하지만 전통에 대한 이해는 다소 부족한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현대 추세에 맞게 자유분방하게 그려야 할지, 그동안 해왔던 전통적 방법으로 그려야 할지 앞으로의 작품 방향을 고민중”이라는 그는 “힘들 때마다 옌볜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들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며 한국에서 미술사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 작품세계의 깊이를 더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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