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국가인가’

세월호와 304명이 진도 앞바다에서 가라앉은 직후 「한겨레21」 표지에 담겼던 문구다. TV로 배가 뒤집히는 광경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뇌리 속에 떠오른 당황과 회의를 응축한 말이기도 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물속으로 그저 잠겨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무력감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이 나라가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을 헤아려보았다. 그리고 이 나라에게 자신이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도.

그런 계산을 하면서 사람들은 국가의 맨 얼굴을 새삼 마주했다. ‘선장, “가만히 있어라”’, ‘한국선급의 세월호 증개축 부실 검사’, ‘해운조합의 운항관리 부실’, ‘해수부-해운조합 유착 의혹’, ‘해경, 초동대처 부실’ 등 ‘부실’과 ‘유착’이라는 키워드로 점철된 기사의 표제들을 접하면서 그 얼굴은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런 나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반추하며 어느 누구로 특정할 수 없는 ‘우리’가 그것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때문에 사람들이 안산과 서울광장에서 향을 피우며 가장 많이 남긴 말은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였다.

이처럼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집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 나라의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우선 그 책임을 어느 한 곳으로 돌리기로 계획한다. ‘선장은 살인자’라는 대통령의 선언은 그런 시도의 한 단면이었다. 시체를 찾아 18년만에 열린 전국 임시 반상회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불어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받을 때마다 요긴하게 써왔던 카드를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했다. ‘세월호 여파로 경체 침체가 우려된다’고 슬쩍 브리핑했다. 눈물 연기도 빼놓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품었던 초기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질을 흐리는 말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가라앉은 배와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진 근본적인 물음을 지탱할 추진력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월호는 모두에게 공통되는 것이 아닌 오른쪽과 왼쪽을 가르는 기준으로 둔갑됐다. 오른쪽에 선 ‘어버이’와 ‘엄마’는 자식을 잃은 부모 면전에서 ‘자식 죽은 게 벼슬이냐’고 했다. ‘보상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조소하는 ‘벌레’들도 있었다. 일상의 민낯을 마주한 사람에게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따위의 사설을 쓰는 선동꾼들도 있었다.

4월 16일로부터 대략 100일 정도 지난 시점에서 세월호 참사는 이전부터 숱하게 봐왔던 정쟁 중 하나로 만들어져있었다. 기시감을 느낀 사람은 본래 자신들이 느꼈던 회의감을 잊게 됐다. 세월호가 던진, 사람들에게 공통됐던 그 말도 배가 가라앉은 그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됐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땅히 선행돼야 할 ‘진상 규명’조차 협상의 대상이 되고, 각자 이념적 스탠스에 따라 심사숙고해서 말해야만 할 것 같은 단어가 돼버렸다. 가라앉고 있는 말을 애써 건지기 위해서 딸을 짚어 삼킨 바다 속으로 아버지가 다시 들어가고 있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야위어 가는 아버지의 ‘아비 자격’을 검증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었다.

8월 30일 현재 진도 바다 속에는 여전히 10명이 가라앉아 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반드시 뭍으로 올려져야 한다. 더불어 그들과 함께 가라앉아 있는 본래의 그 말도 함께 올려져야 한다. 수많은 부차적인 말이 난무할수록 그 말을 찾아내 최초의 회의감을 감각해야 할 필요는 더욱 절실해진다. ‘이것이 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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