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인플레이션 이론의 쟁점과 현황

 지난 3월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는 남극에 소재한 전파망원경을 통해 관측한 우주배경복사로부터‘인플레이션(Inflation) 우주론’의 직접적 증거인 중력파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우주의 탄생이론인 ‘빅뱅이론’의 최신 버전으로 빅뱅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여러 현상을 규명할 수 있으나 지금까지 가설에 머물러왔다. 그러나 이번 발견을 통해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정설로서의 입지를 굳힐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번 결과는 중력파를 직접 검출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흔적을 관측한 것인 만큼 이것이 정말 중력파에 의한 현상인지 검증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이형목 교수(물리천문학부)는 “중력파의 흔적으로 해석된 우주배경복사의 *편광현상은 우리 은하의 먼지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이를 검증하려면 “다른 편광현상을 관측해 같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검증이 완료되면 인플레이션이론은 빅뱅이론을 대체해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과연 우주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떻게 바뀔까?

 

우주는 '거의' 균일하다, 왜?

빅뱅이론은 우리 우주가 초고온, 초고밀도의 한 점에서 폭발을 겪어 지금의 크기로 팽창했다는 이론이다. 허블에 의해 우주의 팽창이 설명된 뒤, 러시아 태생의 과학자 조지 가모프(George Gamow)는 팽창하는 우주의 역사를 거꾸로 추적해 우주의 시작을 매우 작게 축소된 점으로 유추했다. 이 점 안에는 에너지보존법칙에 따라 현재 우주의 모든 질량과 에너지가 어마어마한 밀도로 압축돼있었고 대폭발(Big Bang)에 의해 현재의 우주로 확장될 것이었다. 가모프는 이 과정에서 나온 태초의 빛(전자기파)이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음을 예견했는데, 이를 우주배경복사라 부른다. 이는 1965년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에 의해 측정되어 빅뱅이론이 참임이 증명됐다.

신기한 점은 우주배경복사가 전 우주에 걸쳐 균일한 온도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 온도는 약 2.725K(-270.275℃)로 1,000분의 1도에 미치지 못하는 오차를 갖는다. 이 오차는 작지만 중요한데 빅뱅이론에서는 이로 인해 생긴 중력의 차이로 소립자들이 뭉쳐 별과 은하가 형성됐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빅뱅이론의 문제점은 우주배경복사가 ‘모든 지점에서’ 거의 균일한 온도를 유지하는 이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체의 탄생이 가능하도록 약간의 불균질성을 지니게 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전자는 지평선 문제라고도 불리는데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를 중심으로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양 끝부분을 생각해보자. 두 지역의 우주배경복사는 그 온도가 약 2.725K로 균일하다. 그런데 두 지역 간의 거리는 지구까지의 거리의 2배기 때문에, 이제 겨우 지구에 도착한 태초의 빛은 당연히 다른 한쪽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빨리 전달되는 정보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관측한 양 끝은 서로 어떤 영향도 주고받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못하는 지역을 ‘우주 지평선’이라 한다. 뜨거운 물이 상온에서 미지근하게 변하듯이 서로 다른 온도가 교환되는 것도 정보의 교환이기에 이는 아무리 빨라도 빛의 속도를 초과할 수 없다.

더군다나 빅뱅이론에서의 팽창은 높은 초기 속도가 주어지고 우주 내 물질 간의 중력에 의해 점점 팽창속도가 줄어들어야 한다. 즉 시간이 0인 지점에 다가갈수록 팽창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못하는 거리에 있는 두 지점은 이전에도 열을 교환하지 못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의 우주배경복사의 온도가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같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앨런 구스가 1979년에 제시한 인플레이션이론은 간단한 원리로 이런 지평선 문제를 해결한다. 인플레이션이론은 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이론에서의 급팽창)이 일어나기 전의 팽창을 느린 속도로 규정한다. 이때 온도들이 균일하게 조정된 뒤에 어마어마한 가속팽창이 일어났다는 것이 인플레이션이론의 요지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론은 ‘높은 초기속도’를 상정하지 않고 현재 우주의 크기에 달하는 팽창을 설명해야 하기에, 아주 짧은 시간에 작용한 ‘말도 안 되게’ 빠른 팽창을 제시해야 한다(그림1).이런 팽창이 가능하다는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이론은 빅뱅이론에 부재한 팽창원인과 더불어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차이마저 규명하는 설명력을 갖게 된다(그림2).

▲ 그림② 인플레이션이론과 빅뱅이론의 팽창 비교
 이 그래프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세로 축이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실제 인플레이션 이론에 의한 우주의 팽창은 빅뱅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지만 현재 관측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정해져있기에 두 그래프가 겹쳐 표기된다. 또한 이 그래프에선 중력에 의한 팽창속도의 억제와 현재 주목받고 있는 암흑에너지에 의한 팽창가속이 표현돼 있지 않다.
그래픽: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빅뱅이론에는 '빅뱅'이 없다.

빅뱅이론은 그 이름과 달리 우주가 탄생하던 시기 팽창의 원인과 무지막지한 초기속도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이론에는 ‘인플레이션’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이기에 인플레이션이론은 빅뱅이론의 대체자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빅뱅이론에서 팽창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를 억제하는 원인은 중력으로 분명하다. 평소 중력은 당기는 힘(인력)으로 작용해 공간의 팽창을 억제한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론은 우주의 탄생 이후 극도로 짧은 시간동안 이 중력이 밀어내는 힘(척력)으로 작용해 팽창을 야기했다는 논리를 펼친다. 어떻게 중력이 인력이 아닌 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이는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원리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²’에 의하면 에너지는 질량으로 전환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어떤 물체에 압력이 가해진다면 이로 인해 물체의 에너지가 늘어나 중력도 커진다. 그런데 그 압력이 다른 방향으로 가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공을 밖에서 누르는 것과 코르크 마개를 따려는 행위는 공과 병 안에 각각 다른 방향의 압력을 제공한다. 이 경우 바뀐 압력의 방향에 따라 더해진 중력의 방향도 바뀔 수 있다. 만약 우주탄생 초기에 강력한 음압(陰壓)이 존재했다면 척력으로 변한 중력이 공간을 크게 팽창시킬 수 있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의 급팽창이다. 인플레이션이론은 이런 강력한 음압을 제공하는 에너지가 초기의 우주에 가득 차있었다고 가정하고 이를 인플라톤장(Inflaton field)이라 규정한다.

인플라톤장은 모든 공간을 균일한 값으로 채우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이 때문에 공간이 팽창할수록 그 에너지가 커진다. 인플라톤장이 갖는 음압이 공간을 팽창시키고 이것이 다시 인플라톤장의 에너지를 강화시켜 극단적인 팽창이 벌어진다. 그 규모는 약 10⁻³³초 동안 10⁲⁶배 이상이다. 그러나 이런 규모의 팽창이 지속된다면 어떤 우주도 탄생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인플레이션이 중단되면 인플라톤장의 음압과 에너지가 소모·방출되면서 에너지는 질량으로 변해 입자를 형성한다.(그림3) 다만 이렇게 형성된 입자들이 별과 은하로 모이기 위해선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이는 양자요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인플레이션과 결부되며 가능해진다.

▲ 그림③ 급팽창(인플레이션)하던 공간이 에너지 소모와 방출에 따라 우주를 형성하는 모습

양자요동과 인플레이션 우주의 귀결? 무한한 다중우주

인플레이션이론은 우주배경복사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비균질성을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이론이 양자역학에 바탕을 둔 이론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기본원리인 ‘불확정성원리’에 따르면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정확히 관측될 수 없다. 이는 입자가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갖고 있다는 양자역학의 실험결과에 따라 입자를 파동으로 표현했을 때, 그 위치와 속도를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한계에서 비롯한다. 불확정성원리는 ‘시간’과 ‘에너지(질량)’ 사이에서도 성립하는데 이 때문에 시공간에 발생하는 요동을 양자요동이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공간에 여러 장들의 값이 0인 상태를 진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진공에서는 장의 값이 0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에너지가 정확히 0이라면 측정시간대를 정할 수 없고, 정확한 시간대에 에너지는 하나의 값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공간 내의 모든 장의 값은 0근처에서 요동친다. 결국 우리가 상상한 진공이란 실제로는 없는 셈이다.

이제 본론으로 되돌아가자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전의 우주는 어느 곳이든 균일한 온도를 지녔을 것이라 예측된다. 그러나 이 균질성도 불확정성원리를 피해갈 수는 없기에 매우 미세한 단위로 온도의 차이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고 공간이 걷잡을 수없이 팽창하자 이런 미세한 차이도 더욱 확장됐다. 마치 풍선에 펜으로 그은 가느다란 선이 풍선을 불면서 같이 확대되듯 양자요동으로 인한 매우 미세한 온도차이가 0.001도에 다다를 정도로 커진 것이다.

우주배경복사에서 중력파를 간접적으로 발견했다는 3월의 발표는 바로 이런 양자요동의 확대를 의미한다. 중력파는 말 그대로 중력에 의한 파동(물결)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중력은 시공간을 왜곡시키는데, 그런 중력이 크게 변할 때 시공간의 휘어짐도 변하면서 시공간의 출렁임을 유발한다. 이 출렁임의 전달을 중력파라고 하는데, 양자요동의 미세한 에너지 차이가 인플레이션에 의해 극도로 확장됐다는 말은 이로 인해 시공간이 요동쳤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에너지는 곧 질량으로 환원되며 질량이 시공간에 가하는 왜곡이 중력이기 때문이다. 반면 빅뱅이론에서는 양자요동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공간의 팽창과정에서 중력파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장의 값은 양자요동을 겪는데 인플라톤장도 마찬가지다. 우주탄생 직후에 높은 에너지를 가진 인플라톤장은 팽창을 야기하면서 동시에 양자요동을 겪는다. 특히 인플라톤장의 값이 높을 수록 이 요동은 심해서 그 값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로 그 때가 급팽창을 멈추고 우리 우주가 형성된 시점이다.

그런데 양자요동을 통해 우연히 팽창을 중단한 지역이 있다면 인플라톤장이 아슬아슬하게 높은 값의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도 있을 것이다. 이런 지역은 초기의 우주와 같이 계속 팽창하고 있는 상태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지역도 금방 장의 값이 바닥으로 떨어지기에 안정된 지역만 존재할 것 같지만 문제는 인플레이션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데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플레이션으로 팽창한 공간의 인플라톤장 값은 여전히 높고 그 중 대부분이 안정되더라도 남은 일부분이 팽창하는 속도는 그렇지 않은 지역의 증가속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결말은 인플라톤장의 값이 우연히 떨어진 곳을 하나의 우주로 삼아 수많은 다중우주론으로 귀결된다. 이런 다중우주는 끊임없이 안정화되지 않은 지역을 계속 팽창시키는 인플라톤장에 의해 거의 무한하게 형성된다. 이 교수는 이를 두고 “우리가 사는 우주가 왜 팽창을 멈췄는지 질문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우리가 바로 팽창을 멈춘 우주에 우연히 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이론의 귀결이 다중우주로 확장되면서 우리는 빅뱅이론이 예견하는 우주의 크기를 넘어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거의 무한한 개수의 우주를 떠올리게 됐다. 이런 새로운 우주 개념은 그 규모가 너무 커 이를 직관적으로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빅뱅이론’이 그러했듯, 언젠가는 ‘인플레이션이론’이라는 이름의 TV쇼가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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