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의연한 정치에 질린 대학생들, 선거 후에 불통으로 일관한 정부·여당에 책임 있어 무기력 극복해 악순환 막아야

 

구태의연한 정차에 질린 대학생들,

선거후에 불통으로 일관한

정부·여당에 책임 있어

무기력 극복해 악순환 막아야

 

  펜실베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인 마틴 샐리그만은 1967년, 개를 대상으로 ‘학습된 무기력’에 관한 고전적 실험을 한다. 구금장치에 갇힌 개에게 강한 전기충격을 주는데, A 집단의 개들은 코 근처에 장치된 관자를 밀어냄으로 전기충격을 멈출 수 있었다. 반면 B 집단에 있는 개들은 어떤 행동으로도 충격을 피할 수 없게 두었다. 뒤이어 A, B 집단의 개들은 장애물을 뛰어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는 곳에 놓였는데, A 집단의 개들은 장애물을 뛰어넘어 전기충격을 피하는 반면, B 집단의 개들은 도피하지 않고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이 실험은 내용과 대상을 바꿔가며 광범위하게 진행돼, 학습된 무기력은 종을 초월하여 일반화될 수 있음이 입증됐고 이를 통해 그는 “유기체가 자신의 환경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 그 결과로 통제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것을 학습한다”며 무기력도 학습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심리학 수업을 통해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처음 접하게 됐을 때, 나는 당시 나를 사로잡던 ‘정치적 무력감’을 적확하게 지적당한 느낌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 그대로 굴러갈 뿐이다’라는 무력감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의 촛불이 꺼질 때의 좌절감이 내게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던 내 또래들을 비롯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100일이 넘게 서울광장에 모여 한 목소리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개도 사람도 뛰어넘지 못할 ‘명박산성’이 세워져 국민들을 가뒀고, 결국 협상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4대강 사업을 비롯한 각종 국책 사업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졸속 추진될 때도, 반쪽짜리 세월호 특별법이 합의된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평화시위, 서명운동, 40일이 넘는 단식에도 정부는 언제나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으며 버티면 그만이었다. “이리도 불가능하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같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걸까?”

이를 보고 자란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가 과연 무기력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을까?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관한 문제는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꿈쩍도 않는 ‘불통’ 정치에 대한 무기력과 피로감으로 인해 우리는 통제 불가능한 ‘나라’ 살리기를 포기하고, 통제 가능한 ‘나’ 살리기에 머물게 된 것일지도.

이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되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어떤 행동을 하든 변호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당선 이후 불통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당선 후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국민이 모여 어떻게 정치를 바꿀 수 있는지 후세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계속된 불통은 ‘현재’의 민심을 지치게 할 뿐 아니라, ‘미래’의 세대들에게도 무기력감을 주입하는 무책임한 태도인 것이다. 이미 어린 세대들은 6개월 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하게 지속되는 어른들의 싸움을 보면서 분노하고, 애도하다가, 결국엔 지쳤을 것이다. 이렇게 다음 세대는 또 다시 무기력해진다. 탓하면 뭘 하나, 어차피 그들은 이토록 무기력하고 고분고분해지는 세대를 환영할 것이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으로 주목받는 17세 소년 조슈아 웡은 “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어린 그가 그의 동생들을 생각하며 한 이 말은, 선배로서 ‘우리’의 역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년 전 한국의 시민들이 군사정권을 몰아낸 것을 본보기로 삼고 있다는 그들에게 지금의 무기력한 우리는 떳떳할 수 있을까? 여전히 우리가 모여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이 때, 나는 차마 “한 번만 더 힘 내보자”고 다독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의 무력감의 실체가 그간의 정치로 인해 학습된 결과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지금까지의 무기력을 극복하는 첫 걸음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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