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자신도 한때 『대학신문』에 몸담았던 일종의 ‘동업자’로서 『대학신문』에 대한 애정(정확히는 애증?)과 연대감을 먼저 밝힌다. ‘지난 호를 읽고’가 필자에 부과된 과제인 듯하나, 『대학신문』 전반으로 뻗치는 상념은 방금 언급한 이력 상 갖게 된 ‘직업병’ 탓이다.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대학신문』의 존재 근거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진행형일 것으로 짐작된다. 어찌됐든 『대학신문』이 존재하는 한 『대학신문』은 서울대의 구성원인 학생, 교강사 그리고 본부와 직원의 아말감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학내에 여러 교지, 홍보지 등이 있지만, 구성원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독립적인 공동의 논의의 장은 여전히 『대학신문』밖에 없다. 『대학신문』은 “서울대”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서울대”가 기록한 ‘역사’인 것이다. 급감하는 구성원들의 관심에 대한 우려가 클 텐데, 독자들이 읽어주고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구성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지면과 기획을 대폭 확충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것이 『대학신문』의 현재이고, 미래도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4꼭지에, 4-5면에 걸쳐있고 기사 분량으로 (조금 과장하면) 지난 호의 거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총학생회 관련 기사의 비중은 다소 과하지 않는가? 문화면 사진 설명 중의 “반증”은 증명 혹은 입증이라고 해야 하겠고, “대학쌀롱”도 이제는 “대학살롱”으로 외장을 바꾸어 개장해야 않을까? 국어의 오용이 기성 언론매체에서도 일상화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대학신문』이 국어를 ‘포기’하는 마지막 신문일 거라고 믿고 싶다. 책면에서 『대학신문』 기호 다음에 조사를 붙여 쓰지 못하는 기술적 문제를 혹시 아직 해결하지 못했는지? 한 글자, 한 단어 때문에도 몇 시간씩 서성거리는 기자들의 고투를 알기에 하는 말들이다.

필자가 이 리뷰를 위해 『대학신문』을 구하려 교내 건물 여기저기를 기웃거려야 했던 것까지 『대학신문』이 안고 있는 문제는 저제나 이제나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대학신문사”의 구성원이 계속 교체될 수밖에 없는 대학언론의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지만, 그럴수록 애써 습득한 노하우는 ‘문화적 밈’으로 전수돼야 한다. 기자들이 오늘도 밤새 불 밝히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것까지 바뀌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이라고 『대학신문』을 광고하고 있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시나브로 영구미제가 될듯해 이 기회를 빌려 주문한다. 나름의 역사가 된 것을 선뜻 바꾸기는 내키지 않겠으나, 서울대가 대학의 총칭이 아닌 상황에서 명실상부하지 않는 『大學新聞』이라는 제호를 포함하여 한자 표기를 변경해야 할 시점이 지나도 이미 한참 지난 것은 아닌가? 모든 분들의 숙면을 빈다.


정호근 교수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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