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앉아있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유령이 말을 걸었다
옆에 앉아있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유령이 말을 걸었다
  • 박치현 기자
  • 승인 2014.11.0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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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사실주의 거장 가르시아 마르케스 타계

 

 

 *지난 4월 17일(현지시각) 콜롬비아 출신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향년 8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는 ‘마술적 사실주의’로 불린 독창적 서사기법을 구사하며 세계적으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붐을 이끌었다. 『대학신문』의 이번 기획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고 그 독창성이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는 시각과 떨어질 수 없음을 보여주려 한다. 또 1960년대부터 주목받았던 그의 문학양식이 21세기에는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일반적으로 그는 ‘마르케스’라고 불려지고 있지만 ‘가르시아’가 그의 아버지의 성, ‘마르케스’가 어머니의 성이라는 점에서 기사에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로 표기한다. 또 그의 절친한 친구들은 그를 ‘가보’라고 불렀는데 이 또한 사용한다.


‘마술적 사실주의’로 불린 독창적 서사기법을 구사하며 세계적으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붐을 이끌었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백년의 고독』의 크나큰 성공에 힘입어 1982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틴아메리카의 토속적 문화에 바탕을 둔 환상적 표현들을 통해 중남미의 구체적 현실을 소설에 담아낸 리얼리즘 작가다.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그러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한 때 자신을 ‘마술적 사실주의’라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는 리얼리즘 작가로서 현실을 다뤘고 무엇보다 그를 바탕으로 이야기(서사)를 하고 싶어 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작가로 성장하던 1950년대의 소설에서는 서사가 사라지고 있었다. 당시 주목받던 누보로망(Nouveau Roman) 작가들은 현상학적 인식을 토대로 파편화된 소설을 기획하면서 이데올로기에 종속될 수 있는 과거 소설의 관습을 타파하려 했다. 다시 말해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인과관계를 갖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인식을 미시적으로 서술해 독자가 의미를 생산하게끔 만든 것이다.

그런 새로운 시도가 어떤 문학적 가치를 갖는지와는 별개로, 점점 문학이 난해해지면서 대중은 문학과 유리돼 갔다. 다시 말해 뚜렷한 메시지를 잃어버린 작품들이 소설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기존 소설의 죽음이 거론됐던 것이다. 그런 때에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혜성처럼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에 밀란 쿤데라는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두고 어찌 소설의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문학의 이야기성에 주목했기에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혀 서사의 부활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는 콜롬비아의 ‘천일 전쟁’이나 사회 문제였던 바나나 농장에서의 학살 등을 플롯으로 살려 리얼리즘 작가로서 새로운 길을 걸었다. 다만 그는 평범한 리얼리즘 작가였다기 보다는 자기가 보고 들은 일을 재밌게 전해주는 이야기꾼의 기질을 외할머니로부터 이어받아 ‘이야기하기 위해 살아왔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젊었을 때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년에 완성하는 두 남녀를 그리고 있는데 그들의 모델은 다름 아닌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부모로, 그는 그들이 인생에서 겪은 면면을 엮어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작품과 그의 ‘리얼한’ 인생은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이는 그의 자서전 제목이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라는 점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런 시각을 통해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55년 『낙엽』을 시작으로 일생 수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중편 대작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 이어 1967년에 출판된 『백년의 고독』으로 인해 그의 이름이 전세계에 알려진다. 1975년 독재자의 원형(原型)을 그린 『족장의 가을』을 출간한 그는 칠레 피노체트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의미로 절필선언을 하지만 1981년 독재정권이 흔들리지 않음을 확인하고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를 내놓는다. 1985년에 출판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세월에 굴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는데, 비슷한 주제가 2004년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지막 소설인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 반복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여러 중•단편 소설이 있으며 기자 활동을 통해 작성한 각종 르포도 출간된 바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사회적 삶과 라틴아메리카의 고독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의 대서양변에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부모님과 떨어져 은퇴한 대령이었던 외할아버지와 미신을 신봉하는 외할머니와 살게 된다. 그곳에서 ‘가보’의 외할머니는 어린 그에게 그 지역의 전설과 미신을 말해줬고, 이는 후에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환상적 표현을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된 계기가 된다.

이후 자라나 청년이 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신문기자로 일하게 되면서 중남미의 사회 현실에 눈뜨게 된다. 그가 취재한 많은 내용은 실제로 그의 작품 속 배경과 사건으로 녹아들어갔다. 지난 6월에 열린 학술대회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한국」에서 송병선 교수(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콜롬비아 군인들을 다룬 기사를 소개했다.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콜롬비아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막상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그들을 맞이한 것은 ‘살인자’를 향한 경멸이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를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 대령이 자신의 연금에 관한 기약 없는 편지를 기다리는 것은 표현하는데, 대령이 마을사람들과 떨어진 고립의 삶을 사는 것도 기사에 나타난 ‘경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1958년에 일어난 쿠바 사회주의 혁명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는 방식을 크게 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소련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쿠바를 옹호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혁명 직후의 쿠바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주인’ 세력에서 벗어나 ‘다른 운명’을 개척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노벨상 수상연설문인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연설의 말미에서 그는 “많은 유럽 지도자들과 사상가들은 … 마치 세상을 거머쥔 두 세력의 주인들에 의해 살아가는 것 이외의 다른 운명은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서구의 영향에서 자유로워 보였던 쿠바의 사례에서 라틴아메리카가 나아가야할 길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이는 쿠바 혁명의 주동자인 피델 카스트로가 독재자의 길을 걸어감에 따라 지식인들은 그 지지를 철회한 것과 달리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피델 카스트로와의 우정을 자랑하며 죽을 때까지 쿠바의 편에 서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라틴아메리카는 서구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제시하는 방법은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을 스스로의 논리로 확립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서구의 잣대로 라틴아메리카를 재단함에 따라 그 개입이 정당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단지 문학적 표현 양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공할만한 현실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고 고백하고 있다. 정확한 연대기와 함께 기록된 ‘배꼽이 있는 돼지’나 ‘주둥이가 숟가락처럼 생긴 혓바닥 없는 펠리컨’, ‘엘도라도로 대표되는 황금’ 등의 환상은 항상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의하면 이런 ‘기이한 현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상실된 자신의 다리를 위해 화려한 장례식을 거행한 장군, 빨간 종이를 전등에 붙여 전염병과 싸운 장군, 계속되는 전쟁, 쿠데타, 학살 등이 그 증거다.

여기서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최대의 적은 비참한 삶 자체가 아니라 이런 삶을 현실로 믿게끔 만드는 전통적 설명방식이 불충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서구의 이성적 재능’은 라틴아메리카의 기이함을 오직 비현실적인 무언가로 치부해 개입하려한다. 이는 결국 그들의 삶을 부정할 뿐이다. 따라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우리 현실을 타인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행위는 갈수록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수록 우리를 덜 자유스럽게 하며, 갈수록 고독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서구적 이성주의의 시각을 거부하는 것은 그의 문학양식이 갖는 ‘마술성’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이성의 반대인 환상을 옹호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성주의는 환상을 ‘비이성’ 내지 ‘비현실’로 명확히 규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거부함으로써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환상을 현실로 귀환시키게 된다.

 

 

펄펄 끓는 얼음과 늙어가는 유령

거인이 그 상자 뚜껑을 열자 상자 안에서 살을 엘 정도로 차가운 공기 한 줄기가 새어나왔다. 상자에는 내부에 무수한 바늘이 들어 있는 투명하고 커다란 덩어리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 바늘들에 황혼빛이 스며들어가 색색의 별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중략)… 아우렐리아노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 얼음에 손을 얹더니 화들짝 뒤로 뺐다. “펄펄 끓고 있어요.” …(중략)… “이건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야.”
-(『백년의 고독』, 조구호 역, 민음사)

『백년의 고독』을 여는 첫 줄은 작품의 핵심인물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아버지에게 이끌려 얼음을 구경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함으로 시작한다. 현대의 독자들에게 평범한 일상적 사물인 얼음은 작품 속에서 환상적인 대상으로 재탄생하며 아버지인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로 착각될 정도의 경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경이가 환상적 표현으로 서술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놀라움은, 그것이 ‘처음 접해보는 대상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있음직해 보인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얼음에 대한 ‘끓고 있다’는 아우렐리아노의 말이 분명 모순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얼음의 냉기를 접한 소년의 생생한 느낌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지나치면 동질적인 ‘고통’으로 느껴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린 아우렐리아노의 말은 오히려 사실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상의 환상화’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가진 ‘마술적’ 표현을 구성하는 하나의 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의 축은 예상할 수 있겠지만 ‘환상의 일상화’다. 우연히 찾아온 ‘불면증’이 ‘기억 상실’이란 증상을 동반하여 온 마을에 전염되는 장면이나 비가 4년이 넘게 그치지 않았다는 설정은 작품의 진행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일상적으로 치부된다. 예를 들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 의해 목숨을 잃은 푸르덴시오 아길라르는 죽음 이후에도 계속 작품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는데, 그는 ‘유령’으로 규정되기보다는 죽음을 앞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에게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죽음의 세계에서도 노화를 겪으며 제2의 죽음을 기다리는 푸르덴시오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죽음을 설명하는 원인으로서 작품 내 일상적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이처럼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환상과 일상을 교차시키며 하나의 일상적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언급된 ‘환상의 현실로의 귀환’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보통의 환상문학은 환상을 ‘비현실’로 여기는데, 김현균 교수(서어서문학과)는 그 차이를 독자의 ‘주저함’과 관련해 설명한다. 김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불가리아 출신의 프랑스 문학이론가인 츠베탕 토도로프는 일찍이 환상문학을 정의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독자의 주저함을 들었다고 한다. 이 ‘주저함’ 내지 ‘망설임’은 자연법칙만을 알고 있는 한 존재가 원래 알고 있던 세계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맞닥뜨려 느끼는 당혹감과 관련돼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 특히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장점은 독자가 주저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독자들은 비현실적인 환상을 그려내는 그의 문학을 읽으면서도 머뭇거리지 않는 것일까? 이는 ‘비현실적 환상’을 단순한 비현실로 다루지 않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특유의 태도로부터 비롯할 가능성이 높다. 앙헬 에스테반과 스테파니 파니첼리가 지은 『카스트로와 마르케스』에 실린 대화 자료는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보여준다. 여기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자신의 작품이 전부 사실에 기초한다는 말과 ‘시트를 타고 하늘을 나는 소녀’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질문 받는다. 이에 그는 “그것 역시 사실”이라며 “왜냐하면 마을 사람들이 거기 사는 한 소녀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해줬고” 또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실제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는 실제로 소녀가 하늘로 올라갔는지 따져보는 것보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진지하게 믿는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의 문학에서 환상은 현실에 반대되는 무엇이 아니라 현실의 구성요소로서 다른 사건과 인과관계를 맺으면서 실재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환상’을 그저 비현실적 요소로 치부하는 서구적 이성주의와 대비되는 태도다.

이런 점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문학적 양식과 리얼리즘 문학으로서 그것이 표현하려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비슷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를 규정하는 서구적 이성주의’를 거부하는 문학적 양식과 마찬가지로,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라틴아메리카를 서구의 잣대로 평가하고 그에 따라 개입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 비판 의식에 따라 그는 작품의 플롯 내에 서구 자본의 유입과 그로 인한 폐해를 그려 넣기도 했던 것이다.

우석균 교수(라틴아메리카 연구소)는 학술대회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한국」에서 이런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태도를 ‘식민주의 비판’으로 해석한 바 있다. ‘늙어가는 유령’이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환상적 서술이었다면 ‘펄펄 끓는 얼음’은 토속적이고 전근대적인 마콘도에 서구적 근대성이 침투한 첫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조차 없던 마콘도에 철도가 부설되고 바나나 회사가 세워진 것은 막을 수 없는 서구 자본의 영향을 보여준다.

심지어 어떤 경우, 마술적 사실주의의 서술 방식이 내용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서구의 흔적을 지워버리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 바나나 농장에서 시위를 진행한 노동자들이 학살당한 뒤 마콘도의 주민들은 이를 잊어버리고, 이후 마을이 폐허가 된 것은 4년이 넘게 내린 비 때문으로 서술된다. 의도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환상적 서술방식은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학살과 폐허가 된 마을의 진짜 원인일지 모르는 서구 자본의 개입을 그 존재적 차원에서부터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마콘도는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상상의 수도’인가?

「파리 리뷰」와 함께한 인터뷰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자신의 이야기 방식은 그의 외할머니에게 빚진 것이라 고백한다. 그의 외할머니는 어린시절의 그에게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혀 변화 없는 표정’으로 전해줬다고 한다. 그는 이를 따라하려 했지만 그 이야기를 사실이라 ‘믿지 않고서는’ 변화 없는 표정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의 외할머니도 어린 ‘가보’에게 변화 없는 표정으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전해줄 때 그것들을 믿으려고 노력해야 했을까? 그보다 그녀는 그 이야기들을 당연한 사실이라 믿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환상’이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세계를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인해 가능한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그의 외할머니 사이의 세대적 간극을 보여주는 듯하다. 더군다나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의 작가들이 그것들을 ‘믿기’ 위해 들여야 할 노력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와도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콘도는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상상의 수도라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마술적 사실주의를 통해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말하고 싶어 했던 라틴아메리카의 고유한 정체성은 아직도 유효할까?

이에 대해 라틴아메리카의 이른바 ‘맥콘도(McOndo)’ 세대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1990년대 등장한 ‘맥콘도’ 세대는 ‘마콘도’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얼음’이 아닌 ‘매킨토시’를 꼽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들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는 더는 신화적 공간인 마콘도로 대변될 수 없다. 이미 근대화(서구화)가 충분히 진행된 라틴아메리카에 얼음을 보고 놀라는 사람이나 마술적 설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으며, 이제 중남미인들은 마술보다는 맥도날드와 매킨토시를 매우 친숙하게 여기는 지구촌 시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라틴아메리카의 토속적 환상이나 서구문명에 대한 경이감으로 구성되는 ‘마술적 사실주의’ 역시 더는 유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공격에 대해 우 교수는 「마술적 사실주의와 마콘도 논쟁」에서 맥콘도 세대의 주장이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마술적 사실주의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시도였다”고 평한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크나큰 성공으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부흥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족쇄로 작용해 마술적 사실주의가 아닌 다른 작품을 생산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국적인 저개발의 마콘도 이미지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맥콘도 세대가 그들이 비판하는 좌파와 서구 문화시장의 환원주의적 오류를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비롯한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은 서구 주류문화의 관점과 차별화되는 대안적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그 고유성을 확보했음에도 그 ‘차이’를 소비하려는 서구 독자들에 의해 라틴아메리카의 이미지로 고정됐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그 고유성을 부정하면서 ‘맥콘도 세대’는 그 차이마저 잃고 모든 것을 ‘서구 주류문화’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 교수 역시 “그 당시의 국제정세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국제정세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다”며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신식민주의적 문제의식까지 폐기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다만 『백년의 고독』이 쓰인 1960년대의 라틴아메리카는 결코 지금의 라틴아메리카와 같지 않다는 사실도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지적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지점이라 할 수 있지만 아직도 활발하게 읽히고 있는 그의 작품을 뛰어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김 교수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넘어야 할 산으로 지목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의 문학이 가진 위상을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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