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공장에서 꿈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버려진 공장에서 꿈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 김혜인 기자
  • 승인 2014.11.1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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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① 아이슬란드 스토바피요르드의 자연 속에 세워진 창작공간(creative center). 과거 생선 공장이었던 이곳을 로사 부부가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며 HERE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아이슬란드는 아일랜드와 혼동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한국인에게 생소한 나라다. 그나마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로 빙하나 화산 지형이 알려진 정도다. 아이슬란드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남한과 비슷한 크기의 땅에 27만 명의 적은 인구가 사는 나라다. 이중 75%가 수도 레이캬비크에 몰려 살기 때문에 나머지 도시들은 인구 200명에서 300명가량의 작은 마을들이 해안선을 따라 흩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동쪽 끝에 위치한 스토바피요르드(Stoðvarfjorður)는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차로 8시간가량을 달려야 나오는 작은 마을이다.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마을

마을에 들어서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광활한 풍경이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이 엘프와 트롤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 산맥이 눈을 가득 채운다. 산맥의 계곡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들은 한 곳으로 모여 바다를 이룬다. 한때 이 바다는 스토바피요르드 주민들의 생명줄이었다. 전통적으로 어업 국가인 아이슬란드의 다른 마을들이 그렇듯 이 마을의 주민들도 고기를 잡거나 마을 중심에 위치한 생선 공장에서 일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아이슬란드에도 도시화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어업도 몇몇 많지 않은 도시의 큰 회사들이 독점하는 상황이 됐다. 어선이나 생선 가공 기술에서 큰 도시의 회사들을 이기지 못하는 작은 마을의 어업은 무너져갔다. 스토바피요르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5년 마을의 생선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32명의 실업자가 한꺼번에 발생했다. 마을 전체 인구가 200명가량 되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타격이었다. 마을의 경제 상황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악화됐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고 마을에 하나뿐인 은행과 우체국도 문을 닫았다. 전교생이 12명인 초등학교도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마을 주민의 입을 빌리면 ‘지도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했었다는 스토바피요르드. 그러나, 한 예술가 부부에 의해 죽어가는 마을을 살리기 위한 놀라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왜 마을을 살려야 하냐구요?예술적 영감이 가득한 곳이니까요!”

▲ 사진③ HERE 프로젝트의 기획자 로사 씨. 그는 도시 생활에 회의를 느낀 뒤 귀향해 예술로 마을을 되살리고자 했으며 이는 HERE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됐다.

로사 발팅고저 씨(30)는 공예가이자 스토바피요르드의 초등학교 교사인 부모님 아래 자랐다. 레이캬비크에서 도예를 전공한 그는 도시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체코 출신 그래픽 아티스트인 남편 즈데넥 빠닥 씨(34)을 설득해 2007년 귀향하게 된다. 그는 “예술을 통해 마을을 되살리기 위한 구체적 시도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10년 시청은 5년째 사용되지 않는 생선 공장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했다. 로사 씨는 “어떻게든 의미있는 공간으로 바꿔볼테니 철거를 번복하고 건물을 우리에게 팔라고 설득하는 데 1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로사 씨의 남편 즈데넥 씨는 생선 공장이 마을의 성장과 퇴보의 역사를 모두 담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이 생선 공장은 마을 사람들의 수많은 기억이 얽힌 마을의 ‘심장’과도 같은 곳입니다.”


시청으로부터 싼 값에 공장을 사들인 부부는 녹슨 거대한 철제 상자와도 같은 이 곳을 창작예술공간으로 변신시키겠다는 ‘HERE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로사 씨는 “꼭 도시가 아니라도 젊은이들이 살기에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7월부터 재건축을 시작한 공장은 현재 미술 워크샵, 갤러리, 지역 가내 수공업 상품 판매공간, 문화행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12월부터는 4명의 예술가들을 비롯해 가족들까지 수용할 수 있는 레지던시를 열어 다양한 국적과 예술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을 모집하고 있다. 로사 씨는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아이슬란드의 자연 속에서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공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은 정부의 지원없이 예술가들이 후원과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이뤄낸 것이다. 로사 씨는 “정부에 보조금을 요청하기 위해선 사업 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반면에 우리는 보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공장의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강렬한 그래피티 벽화들은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디자인학교 학생들의 작품이다. 2011년 2월 로사 부부가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특별강연을 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17명의 학생들이 4개월 동안 HERE 프로젝트를 돕는 것에 지원했다. 벽화를 그리는 것 외에도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해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공장을 재건축해가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촬영했다. 이는 스토바피요르드라는 작은 마을을 세계에 알리고 지역 정부에서도 프로젝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생선 공장 안에 음악가들을 위한 녹음실을 만들기 위한 또 다른 프로젝트인 ‘STUDIO SILO’도 소액 기부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90제곱미터 크기의 녹음실은 원래 냉동실로 사용되던 공간이라 방음 기능이 뛰어나다. 녹음실을 제작하고 있는 우나 시구르다도띠르 씨(31)는 레이캬비크 출신의 설치예술가로 아일랜드에서 만난 음악가 남편과 스토바피요르드에 자리를 잡았다. 녹음실에서 직접 시멘트를 부어 바닥작업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우나 씨는 “녹음부터 CD 제작까지 음악가들이 창작 과정을 끝마칠 수 있다”며 “레지던시에 거주하는 다른 예술가들로부터 포스터나 뮤직비디오 제작에 관한 조언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 사진② STUDIO SILO를 만들고 있는 작업 중의 우나 씨와 그의 남편 비니 씨. 이들은 모든 작업을 스스로 한다.

사진제공: Studio Silo 페이스북 페이지


변화는 여기(HERE)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HERE 프로젝트가 실행된 이후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로사 씨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과 워크샵에 참가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더 개방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홈스쿨링을 하며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올라푸르 브린디사손 씨(17)는 “다소 폐쇄적이었던 마을에 갈수록 활기가 살아난다”며 외부인들이 유입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제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이 곳은 생선 공장이 문을 닫았을 당시 그 여파로 일자리를 잃었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생선 공장의 전기 기술자였던 포제일 에릭슨 씨(75)는 40년 넘게 일하던 직장을 잃었다가 목공예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친환경 목재 완구 회사인 STUBBUR에서 HERE 프로젝트에 대해 듣고선 주민들 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목재 완구 워크샵을 무상으로 진행했다. 그는 “기계를 다루는 일을 했던 경험 덕분에 장남감을 만드는 것도 쉽게 익힐 수 있었다”며 “새 삶을 찾은 것 같아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미소지었다.

▲ 사진④ 완구회사의 교육을 받은 후 마을 주민들이 만든 장난감. 소, 양, 사슴, 닭, 개 등 아이슬란드 자연 속 다양한 동물의 모습을 나무로 표현했다.

사진제공: here-creative-centre

마을 내부의 분위기도 달라졌지만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변화를 겪는다고 말한다. HERE 프로젝트에선 청소년 단체와 협력을 맺어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에게 재생 미술에 대한 워크샵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출신의 자원봉사자 노아 서산 씨(18)는 “복잡한 도시 생활과 다른 환경에서 좀 더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삶의 방식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텅 빈 공장에서 시작하여 죽어가는 마을이 회복되기까지, 로사 씨는 그 동력을 ‘마을을 진정으로 살리고 싶은 마음’이라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무엇이 정말 필요하고 바뀌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슬란드의 버려진 마을들,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죽어가는 마을들이 회생할 수 있는 모델이 되고 싶다는 그들. 변화는 스토바피요르드뿐만이 아니라 당신이 있는 그곳, 여기(HERE)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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