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nu.kr

 “자네는 몇 대손인가?” 연구실로 들어온 기자에게 권태억 교수가 건넨 첫마디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사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는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며 지난 인생의 절반을 보냈다. 그는 “훌륭한 연구 공간에서 훌륭한 학생들, 동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 행복했다”고 교수로서의 삶을 회고했다.

많은 열정을 쏟은 연구 인생인 만큼 아쉬움도 크게 남았다. “젊었을 때 한국사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동양사, 서양사와 연계해 폭넓게 연구하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고 전한 그는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하지 말라”는 주희의 시구를 읊고서 “백번을 들어도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라며 미소 지었다.

권 교수는 한국 근대사를 바라보는 상이한 두 관점에 대해 양쪽 모두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객관적인 관점을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가 연구 인생을 시작한 1980년대 신보수주의 학자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수탈로만 파악하는 기존 관점을 비판하며 일제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식민지 근대화론에 매료되거나 이를 타성적으로 거부한 반면 권 교수는 냉철함을 유지했다.

연구 끝에 권 교수는 식민 지배가 가져온 객관적인 변화는 인정하되 근대화론의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근대화론의 문제점은 일제가 한국 사회에 남긴 것들 가운데 긍정적인 것만을 본 것”이라며 “근대적 제도와 경제 발전의 연원이 일제의 식민 지배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민주적 요소, 봉건적 요소 역시 식민 지배에서 비롯됐다”고 역설했다.

권 교수의 비판적 지성은 한국 사회의 문제로 향하기도 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일부 지식인들은 근대화만 쫓다 보니 주체성을 잃고 말았는데, 지금도 미국의 영향 아래 비슷한 정서가 존재한다”며 “다문화 사회에서 혈연 중심의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지만 독립된 국가로서의 자존심과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건전한 민족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모교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권 교수는 후학에게 당부의 말을 건네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며 “어떤 학문을 하든 한국의 문제를 고민하고 한국 사회에 도움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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