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한국인은 김치를 먹는다.’ 틀린 명제다. ‘김치를 먹으면 한국인이다.’ 역시 틀린 명제다. 그런데 늘 그렇듯이 논리와 현실은 다르다. 혼혈인 초등학생에게 담임교사가 “넌 반(半) 한국인인데 왜 김치를 못 먹니. 이러면 나중에 시어머니가 좋아하겠니?”라고 꾸중을 하는 등 부적절한 발언을 수 차례 거듭 했다. 그전까지 발랄하고 붙임성도 좋았던 그 학생은 선생님의 질책과 아이들의 따돌림으로 인해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얼마 전 법원은 아이에 대한 정서학대를 인정해 이 교사에게 벌금 300만원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요즘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의 푸념이 흘러나온다. 어디 변변한 일자리 하나 구하기 힘들며, 증세는 없다는데 연말정산 환급금은 줄었고,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느라 전전긍긍하며, 아기를 보육시설에 믿고 맡길 수 있겠냐는 내용이다. 국민들의 이런 불편한 심기가 걱정됐는지 대통령이 나섰다.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배례를 하고…, 그렇게 해야 이 나라라는 소중한 우리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구성원인 우리 국민들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할 때 나라가 발전할 거라 생각하고…” 이 말씀을 받아 적은 행정자치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태극기 게양률을 높이겠다며 아파트에 국기꽂이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거나 학교에서 국기 게양·하강식을 진행하고 학생들에게 ‘인증샷’을 찍어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 말의 행간을 읽은(제발!) 국토교통부와 교육부는 각각 규제 완화 흐름에 역행, 휴대폰이 없는 학생들도 많다는 점을 들어 이에 반대했다.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과 애국심 고취가 무슨 상관이 있으며, 나라 사랑을 위해서는 다른 방안들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리라.


국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하면 없던 애국심이 솟아나기라도 하는 걸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그건 둘째 치고, 이런 국가 정책이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을 애국자, 비애국자로 구분해 괜한 갈등을 불러일으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한국인이니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아야지’ 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시키는 국가주의를 경계해 머뭇거릴 것이다. 이를 두고 아파트 주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할 것이고, 학교 교사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논란이 발생할 것이다. ‘종북’ 꼬리표로 국민을 나누고, ‘세월호 사건’을 두고 순수-비순수를 분리하더니, 이제는 ‘애국’이란 깃발로 편을 가를 셈인가 보다.


다시 명제로 돌아가 본다. ‘모든 애국자는 태극기를 게양한다.’ 맞는 명제인가? ‘태극기를 게양하면 애국자다.’ 참인가, 거짓인가? 나는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으며, ‘종북’세력의 주장에 동의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불순한’ 시각으로 ‘세월호 사건’에 접근하기도 한다. 또한 이 땅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노력하며, 우리 공동체의 문제가 무엇이고 대안은 뭔지 이따금 고민하기도 한다. 나는 한국인인가, 애국자인가, 그렇지 않은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안 그래도 살아가기가 팍팍한데 나의 정서를 학대하는 일만큼은 삼가 주시길.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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