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 창작소모임 '창문' 기고 - 3월 9일자
인문대 창작소모임 '창문' 기고 - 3월 9일자
  • 대학신문
  • 승인 2015.03.0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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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 양술이 당길 때

강민호(국어국문학과·12)

자유로에서 희고 작은 차가 달려온다 두물머리라는 표지판이 번쩍, 대가리가 둘로 갈라진 사내 여럿이 선뜻 스친다

여보세요 아 어머니 아 예 흰 정장을 입고 갈 겁니다 아 예 드라이클리닝에다 다림질까지 … 할 수 있는 모든 미백을 다 했습니다 아 예 구름은 적고 미세먼지농도도 말짱합니다 아 어머니 어련하시겠어요 비계가 잔뜩 낀 삼겹살만 차질 없이 준비해놓으세요 예? 뱀술이요?

대가리는 둘에서 셋으로 증식하는 중이다 뱀술? 이라는 말에 그만 휴대전화를 놓치고 말았다 양수 터지듯 터지는 전화요금

흰 옷을 입고 뱀술을 먹을 수 있는가?

양이 돼지우리에서 진흙으로 뒤덮일 수 있는가?

사내 여럿이 나선으로 줄지어 선다 그것이 꼭 짐승의 뿔 같다 자유로가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안쪽으로 휘어졌다 어머니께서 다시 어디냐고 물으신다 어머니께서는 말을 두 번씩 듣는 재주가 있다

아 예 여기는

하다가 그런데 뱀술이라뇨? 거꾸로 물었다 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다가, 뱀처럼 쉬익쉬익 지껄이시다가, 전화가 끊어졌고 삼겹살은 두 번씩 구워졌다 여기는 양수리니깐 무엇이든 두 배가 마땅하지 맛도 두 배 양도 두 배 갈라진 혓바닥

아 예 여기는

하다가 말인데, 예컨대 이렇게 길이 꼬부라지는 와중에는 뱀술보다는 양술이 딱이다 스물넷이 넘도록 늘어난 대가리들이 양술을 병째로 들이키고 있다 별안간 자유로가 한 점으로 모아지며 사내 여럿이 뒤엉킨다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양의 모가지며, 앞발이며, 눈깔이며, 드라이클리닝이 덜 된 털이며 온갖 흰 것들이

근데 어머니 뱀술은 … 뱀술은 영 아닙니다 아 예 아직도 양수리입니다그려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귀양歸羊

조준하(국어국문학과·13)

첫 해가 뜨던 날에 들은 말
양은 양털이라도 만들지
양띠인 넌 뭘 만드니
떡국을 넘기다 목이 메었다
신선한 레퍼토리네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방전된 배터리마냥
침대로 증발해버렸다

goat인지 sheep인지도 모를 털복숭이 때문에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구박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달빛 드리운 북한강이 파랗다
늘 받고 사는 달빛 문득 그리운데
백미러를 보면 새까만 나뿐
양도 없고 털도 없고
지는 노을에 해묵은 말뿐

돌아오는 목요일에는
양꼬치를 먹어야겠다
매운 고추 소스를 담뿍
나를 침대에서 걷어차고
희망찬 양의 해를 시작하자

 

매일의 날씨

최경민(국어국문학과·14)

햇빛을 뚫고,
날씨가 가려진 거리로 나왔다
이곳에선 눈빛조차 조심해야 한다
거리에는 하얀 상자들이 몰려있고,
상자 안에는 공포심이 깃든다
기상캐스터는 도시 전체에 밀담을 전하고 있다

오늘의 날씨는 어떻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보편적인 사고가 아닙니까
해가 아주 빨갛습니다, 얼굴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요

너는 날씨를 건네고, 나는 내비게이션의 채널을 돌리고 있다
햇빛이 차창을 통해 들어올 때,
너의 얼굴에서 날씨를 읽을 수 있다
이 날은 먼지 없이 깨끗한 날이로군
커피를 흘리는 청년들이 잘 보인다
남편이 없다고 구박하는 당숙들도.
지금은 터널처럼 조용하다.
너는 기상캐스터처럼 얼굴을 구긴다
당신은 건조물 침입죄를 압니까?
어제의 날씨는 어떻습니까?
오래된 침묵을 뚫고
신호등이 명멸한다
이럴 때는, 너의 하반신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너를 잘 보려고
고개를 숙일 수도 없다
감출 수도 없는
자동차를 타고 간다
그것은 이제 막 회기역을 지나치고 있다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창작 의도: ‘새로움’이란 것이 우리에게 당도하기까지의 자취를 살펴보면, 수많은 변화 혹은 망각의 과정들로 얼룩져 있다. 이 지저분한 자국을 포착하게 되는 순간 비로소 새로움의 본질에 대하여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기고는 개강 시즌을 맞아, ‘2015년’을 맞이하는 몇 가지 자세들에 관한 시들로 구성하여 보았다. 새로움의 본질에 닿으려는 미숙하지만 당찬 시도인 셈이다.

「매일의 날씨」는 유독 다사다난했던 2014년을 돌아보며, 짧은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 희석됐는지를 건조하게 짚어낸다. ‘얼굴에서 읽히는 날씨’와 여기에 수반되는 추상적인 기분들이 ‘매일’ 반복된다는 것은 슬프고도 답답한 일이 아닐까. 반면 「귀양歸羊」과 「양수리, 양술이 당길 때」는 2015년이 청양(靑羊)의 해라는 ‘세간의 말’을 패러디하여 냉소적인 위트가 두드러지는 시다. 새해를 대표하던 짐승인 양은 ‘나’를 ‘해묵은’ 존재이자 자취에 불과하게 만들고선 ‘희망찬 양의 해를 시작하자’고 천연덕스럽게 웃어 보인다. 때론 그저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양수리라는 지역과 모종의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 관계 속에서 기묘한 환각에 침잠되는 화자의 모습은 비틀거리는 우리 청춘을 닮았다.

어떤 자세이건, 세 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

“새해, 아니, 새 학기 복 많이 받으세요!”

창문: 인문대 학부생으로 구성된 창작 소모임이다. 2013년 국어국문학과 내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시와 소설 부문에서 많은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밖에 발제, 토론, 예술작품 연계 감상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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