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문화의 씨앗, 문화특화지역
도시문화의 씨앗, 문화특화지역
  • 이석현 기자
  • 승인 2015.03.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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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특화지역은 도시 거주자들에게 독특한 문화적 경험을 선사하고 지속적인 문화자원을 공급함으로써 도시를 문화도시로 꽃피우는 씨앗 역할을 한다. 문화특화지역이 성장해 대중의 관심을 받으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 시설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새로 들어선 상업 시설은 문화특화지역에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지만, 지나친 상업화는 문화특화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나아가 문화특화지역의 소멸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특화지역들은 과도한 상업화로 위기에 처해있다. 문화특화지역은 어떤 장소이며 어떻게 형성되는지, 지나친 상업화가 진행되지 않도록 고유의 문화적 요소들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본다.

“여기 홍대 앞에서 거리의 불빛보다 더 많은 눈이 음악처럼 내리면 네게 전활 걸 거야” “음악이 있어, 사랑이 있어… 이태원 프리덤, 젊음이 가득한 세상” 홍대 앞이나 이태원처럼 대중가요 가사에 종종 등장하는 동네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 특유의 문화적 감수성과 아우라를 바탕으로 도시 주민들에게 창조적인 경험과 다양한 문화활동을 제공하는 지역들, 이른바 ‘문화특화지역’이라고 불리는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1. 문화가 머무는 안식처

독특한 문화를 찾는다면 여기로

문화특화지역은 한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그곳만의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다. 인사동이 전통문화의 거리로 불리고 홍대가 클럽문화와 갤러리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것은 각각의 독특한 지역문화가 그 지역 전체를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연구원 라도삼 연구위원은 “문화특화지역이란 지역 전체를 지배하며 정체성을 부여하는 지역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문화가 존재하기 위해선 문화요소가 필수적이다. 문화요소란 지역의 독특한 문화자원을 생산하고, 대중들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를 뜻한다. 인사동의 경우 전통 필기구와 고미술품, 한복이 대중에 의해 소비되면서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멋을 지역문화로 표방하는 독특한 문화공간으로 부상했다. 당연히 문화요소가 풍부할수록 지역문화의 개성이 뚜렷해지고 문화특화지역의 문화가 융성한다. 또한 문화요소는 문화특화지역의 성격을 규정하므로, 어떤 문화요소가 들어오는지에 따라 인사동처럼 전통문화가 발전할 수도 있고 홍대 앞처럼 예술가 중심의 전시문화 혹은 클럽문화의 성격을 띨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에 문화요소가 갑자기 투입된다고 반드시 그 지역이 문화특화지역이 되진 않는다. 문화요소가 지역에 뿌리내리고, 생산된 문화들이 지역을 대표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화특화지역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문화특화지역은 형성기, 성장기, 성숙기, 진화기 4단계에 걸쳐 형성된다. 막 형성되기 시작한 문화특화지역은 문화요소의 발전 정도, 지역문화의 형성 여부, 대중의 관심 정도에 따라 형성기와 성장기로 구분된다.

형성기는 지역 이곳저곳에 생긴 문화요소가 조금씩 밀집하는 시기다. 이 시기를 거쳐 여러 유형의 문화요소가 점차 하나의 유형으로 재편되고, 지역 전체를 대표할 지역문화의 윤곽이 드러난다. 형성기의 예로 1980년대 홍대 앞을 들 수 있다. 이곳은 학생들이 창작 활동을 할 작업실을 내는 동안 이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갤러리가 모여들면서 전시문화가 점차 지역문화로 발전했다.

이후 문화특화지역은 성장기에 접어들며 더 많은 문화요소가 들어온다. 우선 문화요소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문화가 강화돼 점차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각각의 문화요소도 점차 확장돼 큰 규모의 갤러리, 라이브카페, 전통상점과 공방 등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이전 시기와 구별되는 성장기의 특징은 지역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방문객들이 점차 증가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홍대에는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방문객용 주차장이 들어섰으며, 미대생들 중심의 거리미술제와 독립예술제가 시행되면서 대중의 홍대 앞 문화 소비가 많이 늘어났다.

성장기 이후 문화특화지역은 상업화의 진행과 정책 개입의 정도에 따라 성숙기와 진화기로 나뉜다. 성장기의 문화특화지역엔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를 비롯해 일반 상업지역에서 볼 수 있는 상점들과 관광 업종이 진출한다. 문화특화지역을 둘러보다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카페나 관광호텔은 수많은 사람을 수용하며 큰 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문화요소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상점이 계속 들어오며 결국 문화특화지역은 문화 요소도, 상업 시설도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포화 상태에 이르는데, 이 시기를 진화기라고 한다. 인사동에서 17년째 전통염색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 모 씨는 “예전엔 골동품점과 화방으로 가득했던 인사동길에 지금은 화장품매장과 카페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이 시기에는 더이상 지역 내에 문화요소나 상업 시설 모두 추가로 진출할 곳이 없어져 둘 사이에 경쟁이 일어난다. 무분별한 경쟁은 문화특화지역에 문화소실 등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문화요소의 보호를 위한 정책이 시행된다. 한편 진화기에 문화요소들은 문화특화지역 주변에 새롭게 진출하는데 이때 문화특화지구의 확장과 분리가 일어난다. 문화특화지역이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분화되면서 도시 내 문화를 공급하는 지역이 확대되며, 이는 한 도시가 문화도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안진근 교수(백석대 디자인영상학부)는 “문화특화지역은 인사동, 홍대 등을 중심으로 점점 퍼져나가고 있다”며 “그 결과 도시의 문화화를 촉진해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도시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말했다.

2. 벼랑 끝에 선 문화특화지역

대표적인 문화특화지역인 인사동과 홍대, 이태원 일대는 현재 진화기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문화요소와 일반 상점이 서로 포화상태에 이르러 경쟁하고 있고 문화요소의 보호를 위해 정책 개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기에 들어선 문화특화지역은 발전 확대와 소멸의 기로에 서 있다. 서울 대부분의 문화특화지역은 후자에 속한다. 상업시설과의 경쟁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안진근 교수는 “현재 문화특화지구에선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그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왜 문화특화지역은 소멸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일까?

지나친 상업화가 일으킨 변화

문화특화지역이 소멸한다는 것은 지역 내의 독특한 문화를 가진 장소들이 일반 상업과의 경쟁에서 밀려 모두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특화지역의 갤러리나 작업실, 전통공방 등이 사라지는 주된 이유는 자꾸만 높아지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홍대의 갤러리나 라이브카페는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그 대신 홍대의 중심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관광업종과 화장품점, 프렌차이즈 커피숍 등 일반적인 상업지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게들이다. 2011년 「한경BUSINESS」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서교동 일대의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 수는 약 100여개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도시구역 분류상 일반 상업지역인 강남구 역삼동의 86개보다 높다.

15년 동안 홍대 앞에서 ‘그문화 갤러리’를 운영해 온 김남균 씨는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까지 열 번 넘게 이전해야 했다”며 “결국 5년 전 지금의 홍대 앞으로 불리는 지역 중에서도 변두리에 옮기고서야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홍대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특화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박 모 씨는 “17년 전보다 임대료는 올랐지만 수익은 그만큼 떨어져 임대료 내기가 힘에 부치다”며 “가게를 언제 접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가전문정보업체 에프알인베스트먼트가 실시한 인사동 월세 변화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5년 399만원이던 월세는 2013년 820만원으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이와 같이 김남균 씨의 갤러리와 박 모 씨의 가게처럼 지역문화를 형성하는 문화요소들이 비싼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문화특화지역에서 내쫓기고 있다.

버팀목이 되지 못한 정책들

문화특화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줘야 할 정책들인 서울시의 ‘문화지구관리계획’과 ‘관광특구지정제도’마저도 현재 방향을 잃은 채 오히려 문화특화지역의 몰락을 부추기고 있다. 진화기에 접어든 문화특화지역의 문화요소들은 상업시설과의 경쟁을 거친다. 이때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여러 정책이 지나친 상업화를 막고 문화요소가 안정적으로 문화특화지역 내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현행 정책들은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서울시에서 ‘문화예술진흥법’ 제8조에 따라 시행하는 ‘문화지구관리제도’의 일환인 ‘문화권장시설 인증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권장시설 인증제는 서울시에서 문화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문화와 관련된 상점과 시설을 인증해주고 지원금 혜택 등을 주는 제도다. 현재 서울시는 인사동에 한해 고미술품점, 표구사, 필방 및 지업사, 공예품점 등을 권장시설로 규정하고 이들 업체에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다. 문화요소들을 지원함으로써 더이상의 상업화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박 모 씨는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초점을 두지 않고 만들어진 상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중국산 제품을 취급하는 전통공예품점이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고 인증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전통 옷감과 염색 방식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한복이 아닌 기성복을 만든다는 이유로 인증에 실패한 사례도 있었다.

한편 문화지구관리계획은 화장품 업체 등을 금지업종으로 지정해 더이상의 입점을 막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이미 발생한 지나친 상업화를 줄일 순 없다. 조례대로라면 새로 가게를 낼 수 없을 뿐 이익만을 목적으로 이미 입점한 가게들에는 어떤 제재도 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화지구관리계획과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관광특구지정제도 또한 문화요소 보호에는 소극적이며, 오히려 지나친 상업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다. 이태원은 다문화적 가치를 보호하고 관광산업을 활성화한다는 이유로 지난 2000년 관광특구로 선정됐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 유치 명분으로 문화요소 대신 기념품점을 비롯한 관광업종이 들어오면서 문화요소의 소멸을 가속시켰다. 이태원 우사단 마을 동동도시연구소의 이영동 씨는 관광특구로 인해 예술인과 토착 주민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0년대 후반부터 이태원 상권이 확대돼 현재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며 “상업화의 여파로 임대료가 올라 많은 예술가가 떠났다”고 이야기했다.

문화가 몰락하고 상권이 무너지고

▲ 인사동에 위치한 한 전통염색점. 각양각색으로 물들인 옷이 제모습을 뽐내는 곳이지만 높아지는 임대료 속에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이러한 현실 속에 지나친 상업화가 계속되고 정책조차 이를 막지 못한다면 결국 문화특화지역은 소멸되고 나아가선 상권 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 김남균 대표는 “현재 프렌차이즈업체들을 비롯한 문화특화지구의 지나친 상업화는 ‘문화백화현상’ 진행 과정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문화백화현상이란 예술가의 유입으로 유동인구가 증가한 문화특화지역에 이해관계가 얽히며 결국 문화특화지역의 문화 정체성이 완전히 파괴되는 현상이다. 지나친 상업화로 인한 임대료 상승으로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반 상업시설은 남고, 문화적 정체성을 띠는 가게들은 몰락한다.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고유의 색을 잃고 하얗게 변하는 것처럼, 문화백화현상이 상당히 진행된 문화특화지역들은 결국 문화적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문화특화지역이 사라지면 궁극적으로 문화도시로의 발전이 어려워질 수 있다. 안진근 교수는 “문화특화지역이 정체성을 상실한 채 몰락하게 된다면 서울시는 문화도시로의 발전이 지체된다”며 “서울이 문화도시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요소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문화특화지역의 몰락을 우려했다. 김남균 대표는 “문화백화현상이 계속된다면 지역이 문화적 특색이 사라지고 결국 관광객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며 “결국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곳에는 상업시설마저 몰락해 지역경제 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3. 문화의 씨앗을 어떻게 틔울 수 있을까

주민들의 합심, 지역문화 강화로 이어져

스스로 임대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문화특화지역의 예술가들은 자생을 위한 방안들을 찾아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민연합체가 탄생했다. 주민연합체의 대표적인 예로 이태원 우사단 지역의 ‘우사단단’을 들 수 있다. 우사단단 관계자는 “처음에는 그저 쓰레기나 주차 문제 같은 사소한 문제들을 이야기하곤 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매력적인 동네를 만들어 마을을 사랑하는 지역주민을 많이 만드는 것임을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한 임대료 문제에 매달리기보다 우선 주민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들에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우사단단은 홍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문화의 매력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있다. 우사단 마을 걷기 여행인 ‘동동투어’는 마을 청년 이영동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태원 우사단 마을 일대를 거닐며 골목 투어를 한다. 마을 주민들에게 마을 이야기를 듣고 골목을 구석구석 다니며 공방과 작업실을 구경한다. 이영동 씨는 “동동투어는 우사단 마을이 겉보기와 달리 지켜야 할 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며 “지난 2년 동안 계단장과 동동투어를 운영하며 이태원 거리가 ‘위험한 곳’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인식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이태원뿐만 아니라 홍대에서도 지역문화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홍대는 2000년 초반부터 홍대 앞 ‘놀이터’에서 프리마켓을 열고 있다. 사람들은 프리마켓에서 홍대 거주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구매할 수 있고 작가들 또한 경직된 갤러리를 벗어나 활동적인 야외에서 대중과 직접 소통이 가능하다. 김남균 씨는 “프리마켓 전후로 홍익대학교 근처에 홍대 미대생 이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냈고, 홍대 앞의 문화적 정체성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문화특화지역에서 주민연합체가 안정적인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인사동은 요식업체가 모인 연합과 전통상인이 모인 연합체가 따로 구성돼 있다. 박 모 씨는 “통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안진근 교수는 “문화특화지역의 지역주민과 상인이 문화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문화특화지역의 문화정체성을 확립을 위해선 주민연합체를 통한 문화요소의 강화가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했다.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 할 때

그러나 근본적 원인인 제도적 문제와 임대료 상승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결국 문화특화지구가 소멸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선 정책 문제의 해결을 위해 문화특화지역의 발전 단계와 특성에 맞춘 제도의 확립이 필요하다. 문화특화지역의 형성기 상태인 지역들은 정책의 과도한 개입보다는 관련 자원이 어떻게 지역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관찰이 필요하다. 성장기에는 문화특화요소의 집중에 주목하고, 어떤 유형의 문화가 뿌리내리는지 파악한 뒤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초정책이 필요하다. 성숙기와 진화기에는 문화특화지역이 급격한 상업화가 이뤄지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제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서울시의 문화지구조례는 대학로와 인사동에만 적용되고 있을 뿐 다른 문화특화지역은 관리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설령 관리지역이라 하더라도 상업화를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라도삼 연구위원은 “정부의 최소한의 관리조차 이뤄지지 않은 문화특화지역들은 무분별한 상업화에 노출되고 문화정체성이 소멸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 상승 문제는 문화특화지역의 예술가들과 건물주, 정책 전문가가 모두 나서야 하는 문제다. 김남균 씨는 “건물주부터 예술가까지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임대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민협의체의 주체는 문화 생산자인 예술가와 문화요소에 해당되는 가게 주인들, 장소 제공자인 건물주와 일반 주민들, 그리고 정책 담당자다. 이 셋의 일정한 합의가 있어야만 주민협의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그는 “예술가들이 과연 주민들의 정서나 동네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접근했는가에 대해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며 예술가들과 일반 주민들의 공유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건물주 등 일반 주민들 입장에선 문화백화현상으로 인한 상권 전체의 몰락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임대료를 계속 올려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지역의 문화요소는 물론, 그것을 찾아오던 유동인구까지 줄어 결국 몰락하기 때문이다. 정책 담당자들은 세입자와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듣고 문화특화지역의 문화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안진근 교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가진 문화특화지역이 유지되고 점차 도시 내로 확산된다면 자연스럽게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밝혔다.

문화특화지역은 주변지역에 문화자원을 공급하는 도시문화의 씨앗이자, 예술가들이 밀집한 문화 생태계이다. 상업화로 인한 문제가 계속된다면 우린 더 이상 인디밴드의 음악을 들을 곳도, 개성 있는 미술품을 구경할 곳도 없이 텅 빈 거리를 헤매게 되지 않을까.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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