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이 배려가 되는 순간
통찰이 배려가 되는 순간
  • 대학신문
  • 승인 2015.03.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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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하나 박사과정
사회학과

어느 오후 비교적 붐비는 커피숍,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여자가 들어와 빈자리를 찾는다. 1층의 모든 테이블은 이미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고 계단으로 2층에 가기엔 유모차가 버겁다. 20대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있는 4인석으로 가 자리를 나눠쓰자고 말하자 20대 여자는 입술만 삐죽이며 가만히 있다가 내키지 않는 듯 안쪽 의자로 몸을 옮겼다. 부탁을 했던 여자는 별로 미안한 기색 없이 유모차를 테이블 옆에 놓고 커피를 주문하러 가고 그사이에 20대 여성은 가방을 챙겨 커피숍을 나가버렸다. 20대 여자는 ‘왜 하필 나한테 자리를 비켜달라는 거지?’라는 생각에 입술을 삐죽였을지 모르겠다. 그걸 보면서 아이와 동행한 여자는 ‘나중에 너는 안 겪을 일 같니?’라며 속으로 받아쳤을지도.

20대 여자는 어쩌면 정말로 출산과 육아를 자신의 미래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청년실업이니 삼포세대니 하는 말들로 표현되는 사회경제적 상황을 직접 몸으로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청년들에게 갈수록 더 무거운 사회부양의무를 지울 거라는 말이 현실적인 공포로 느껴질 것이다. 저출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여자도 마음이 무겁다. 대중매체에서는 자녀를 셋, 넷씩 둔 연예인들이 나와 ‘애국’을 실천하고 있다는데, 한 명 키우기도 버거운 그에게는 자녀 수 자체가 사회계층을 드러내는 것 같다. 정부에서 시행 중인 육아지원사업은 맞벌이 부부, 즉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에게 해당하는 일일 뿐이다. 정부의 한정된 자원은 경제 논리에 의해 효율적으로 쓰여야 하기 때문에 전업주부에게 배분되는 일은 별로 없다. 바람 좀 쐴 겸 아이를 데리고 나왔지만, 발전논리에 맞춰 성장한 도시에서 갈 곳은 딱히 없다. 키즈카페에서 몇 시간짜리 놀이 공간을 사거나 다국적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잠시 쉴 공간을 사는 것 외에는.

두 사람에게 오늘 커피숍에서 있었던 마주침은 잠깐 불쾌했던 감정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사소한 일로 남았다가 곧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바라보던 사회학도는 순식간에 지나간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의 원인이 궁금했고 이러저러한 가설을 세워봤다. 머릿속으로 긴장의 이면을 계속 들추다 보니 두 사람이 모두 이해. 우리가 일상에서 사적 관계를 맺고 만나는 소수의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개인사나 심리적인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과는 공적인 관계나 익명의 상태에서 마주친다. 따라서 그들을 이해하는 일은 그 개인이 대표하는 어떤 사회적 정체성과 그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구조를 꿰뚫어보는 일의 연장선에 있다.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L. Berger)는 사회학적 의식 중 하나로 ‘상대화’를 말한다. 이념과 정체성을 포함하는 어떠한 현상도 특정 사회적 위치, 사회적 배경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주치는 익명의 존재에게서 어떤 사회적 위치나 배경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의 행동이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닐 것이다. 그 순간, 구조를 읽어낸 사회학적 통찰력이 배려라는 시빌리떼(civilite)가 되는 것이다. 요즘 한 방송국에서 ‘배려가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는 캠페인을 하던데, 배려의 원동력으로 사회학적 통찰력, 혹은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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