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에 매달려 있던 내게 아들러가 찾아왔다
열등감에 매달려 있던 내게 아들러가 찾아왔다
  • 김지윤 기자
  • 승인 2015.04.05 0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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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이론

입시를 준비해본 학생이라면 한 번쯤 먼저 합격한 친구를 축하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 한켠에 묘한 질투가 돋아나곤 한다. ‘왜 나는 아직도 해내지 못한 걸까?’ 물론 사람들 틈바구니에 살다보면 누구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스스로에게 다그치게 된다.

100년 전에 살았던 의사 알프레드 아들러도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세상과 공존하면서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열등감을 느낀 개인이 남들과 자신을 지나치게 비교할 경우 일그러진 자화상을 가질 수 있다고 여겼다. 이를 무조건 개선해야 한다는 강박은 현대인을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곤 한다.

경쟁 일변도의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다시금 아들러 심리학에 주목하고 있다. 그의 이론을 다룬 도서가 근 1년간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포함해 10여권 출간됐다. 이 중에서 특히『미움 받을 용기』는 교보문고, 예스24 등 전국 8개 서점에서 9주 연속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했다. 대중은 여러 매체를 통해 아들러의 ‘오래된’ 위로를 접하면서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내 삶으로 사회에 스민다

 

아들러는 개개인이 삶을 인식하고 판단해 행동할 수 있는 주체라고 본다. 이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다른 시각이었다. 프로이트는 본능을 억압당했던 과거의 경험이 무의식에 내재돼 현재 행동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들러의 이론에서 개인은 현재 자신의 모습, 앞으로 적응해야 할 환경을 주체적으로 인지하는 존재다. 더 나아가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목표를 설정하고 행동을 하는 주인공이 된다. 물론 유전, 환경, 과거 경험 등의 영향도 있지만 개인의 목표에 마지막 인준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것이다.

아들러는 개인의 목표 중 대부분이 사회에 온전히 소속되려는 노력으로 수렴한다고 생각했다. 전종국 교수(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는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부터 본인은 선험적으로 세상과 공유된 느낌, 함께 있으려는 본능”이 있고 “마음 전체는 세상 속에 의미 있는 존재로 포함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 개인이 사회에 소속됐다고 느끼려면 각자가 세상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고유한 방식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아들러는 세상에 대해 갖는 인식을 기준으로 개인이 행동을 취하는 독특한 방식을 ‘생활양식’(life style)이라 칭했으며 우열을 떠나 각자의 생활양식이 사회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만들 수 있을 때 한 개인이 사회에 궁극적인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고 주장했다.

 

부족함을 받아들여
나아가는 용기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에서 각자의 고유한 생활양식은 과도한 경쟁에 밀려 존중받지 못한다는 의식이 많다. 이런 상황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함을 용납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시달리도록 만든다. 현재 아들러의 조언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도 입시부터 취업까지 과도하게 이어지는 경쟁 속 개인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박선웅 교수(고려대 심리학과)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기준 속에서 경쟁해야 할 때 실상 1등을 제외한 누구든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전종국 교수 또한 “사회가 한 방향으로 흐르며 각자의 생활양식이 존중받지 못하면 좌절감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이 경우 사람은 공동체로부터 유대감을 얻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 삶에 자신의 생활양식을 맞추게 된다.

이 때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열등감을 객관적인 현실이라고 받아들여 더욱 낙담하게 되는데, 아들러의 주장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실제와 관계 없이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간단한 예로 많은 명문대생들이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여기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나아가 자신이 느낀 열등감에 반응하는 실제 행동도 각양각색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난 상황에서 이로 인해 좌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를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추켜세워 자신이 느낀 열등감을 숨기는 사람도 있다. 아들러는 열등감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이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려고 하는 방어적 행동을 ‘열등감 콤플렉스’라고 정의했다. 열등감 콤플렉스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하기보다는 회피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혹은 열등감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등의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한 개인의 열등감이 바로 열등감 콤플렉스로 이어지진 않지만, 여러 차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없거나 사회적 의미를 도출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자신을 지키고자 열등감을 숨기려 한다. 전종국 교수는 “사람은 세상에 무시당하지 않고 온전하게 있기 위해 자기만 잘나야 한다는 이기주의를 형성”하거나 “전체적, 실존적으로 무능력한 상태”에 접어든다고 봤다. 자신의 생활양식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할 때 사람은 소속감을 얻지 못하며, 이로 인해 어떤 목표도 무의미하다고 느끼면 스스로를 과잉보호하다가 오히려 자기중심성, 우울증, 무력감 등의 정신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자아가 휘둘리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아들러는 열등감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해석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개인이 느끼는 열등감은 결국 사회 속에서 사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갖는 무력함이며 이를 자신의 모자람으로 치부하지 않을 때 오히려 사람들은 각자의 열등감을 자신의 목표에 다다르는 추진력으로 전환한다. 아들러의 이론에서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역으로 ‘우월성’의 추구로 이어지는 길인 것이다. 박선웅 교수는 “아들러가 말하는 열등감이란 자신의 완성, 혹은 자아실현을 추구하게 하는 원동력”이며 “남의 길과 나의 길을 구분하고, 자신의 길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경쟁 자체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생활양식을 가꾸고, 미움 받아도 흔들리지 않는 넉넉함이 생기는 셈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이 여타 힐링 열풍처럼 그저 ‘좋은 말’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선 이를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해야 한다. 김창대 교수(교육학과)는 아들러의 이론에 있어 “위로로 시작해서 격려하고 내적인 힘을 발굴하여 그 힘을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박선웅 교수 또한 “누군가에게 미움 받을 준비가 됐다는 것은 한편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말로 그치지 않고
섣불리 강요하지 않는

 

아들러 심리학을 따르는 상담이론을 참고한다면 자신의 열등감을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들러의 상담이론은 대부분 개인의 생활양식을 먼저 이해한 후에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묻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하게 다투는 부부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상담사는 대화를 통해 각자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확인하도록 돕는다. 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내담자는 배우자에게 기대해온 바를 자세히 적고 두 사람의 관계에 어떤 목표를 정할지 의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내담자는 상대방과 자신의 생활양식을 돌아보게 되고 잘잘못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친다. 또 자기수용을 우선하기 때문에 내담자가 상담가의 권유를 수용하지 않을 권리가 주어지며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하도록 독려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전종국 교수는 “치료라는 행위는 내담자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만나야” 하며 “스스로 의미 있는 것을 찾도록 동반자로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들러의 이론이 개인에게 단순한 자기 계발을 종용하는 데서 그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아실현에 앞서 각 개인의 고유한 모습이 온전히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아들러의 조언에 주목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라는 그의 주장이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할 염려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아들러가 각 개인의 열등감이 하나의 모습으로 존중받고, 각자의 생활양식이 자연히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꿈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들러의 이론이 그저그런 구호 중 하나로 머무르지 않으려면 사회 전반의 차원에서 구성원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

 

그 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 (중략) /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중에서)

 

사람은 자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으로 인해 열등감을 얻곤 한다. 하지만 알프레드 아들러는 그저 자신을, 자신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포용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추구하는 존엄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려 애쓰면서 사람은 비로소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아들러 열풍이 위로로 그치지 않고 많은 이들의 삶을, 더불어 경쟁을 재촉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삽화: 정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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