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수원 문화부장

정치 이슈 둘러싼 언론사의 특종 경쟁

불법 입수 녹음파일 ‘알 권리’라 공개돼

넘치는 단독 속 희석된 사건의 중대함

닳고 헤진 보도윤리, 1년 전과 그대로

자원외교 관련 비리 의혹으로 수사대상이 됐던 성완종 전 회장이 지난달 9일 숨진 채 발견됐다. 전 정부의 굵직한 사업의 핵심으로 지목된 인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도 잠시, 고인이 입고 있던 옷에서 실체가 파악되지 않은 금액과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이 함께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이어 성 전 회장이 죽기 직전 50분가량 인터뷰를 진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든 이의 이목이 단독 인터뷰를 따낸 「경향신문」에 쏠렸다. 소문만 무성하던 검은 돈으로 얼룩진 정계의 도덕성에 의문을 던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메모는 언론계의 보도윤리에도 비슷한 의문을 던지게 됐다. 거대한 사건에서 특종을 차지하고자 각 언론들이 벌인 경쟁 때문이었다.「경향신문」은 검찰의 요청에 따라 15일 녹음파일을 제출했고 이튿날 신문에 인터뷰 전문을 보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JTBC가 <뉴스룸> 2부에서 녹음파일을 먼저 공개해버렸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대의와 온전한 진실에 보다 다가가겠다는 명분을 보도담당 사장의 ‘육성’으로 전하면서. 또 「경향신문」과 다른 경로로 파일을 입수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유가족의 반대도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의 육성이 담겼다고 떠들썩하던 특종 잔치에서는 먹을 게 없었다. JTBC의 녹음파일 공개 내용은 이미 경향신문이 검찰에 파일을 제출하기까지 5일간 보도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공언했던 ‘온전한 진실’을 시간 사정상 30분가량으로 반 토막 낸 것이 무색하게 말이다. 심지어 「경향신문」에 분석을 자청한 디지털복원전문가 김 모 소장에 의해 녹음파일이 불법으로 JTBC 기자에게 넘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진짜로 특종을 잡았던 언론사에 의해 다음날이면 모두가 알게 될 사실을 불완전하게 무단으로 보도한 조급함으로부터 <뉴스룸>은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 아, 평소보다 2배나 오른 역대 최고 시청률? 물론 이는 시청자가 얻은 영예는 결코 아니다. 굳이 시청자로서 본인이 얻은 것을 찾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촉망받는 언론인이 저지른 특종 가로채기로 인해 더해진 불필요한 혼란과 거기서 비롯된 불쾌함 정도가 있겠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호 참사 1주기,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 성완종 리스트, 자원외교 수사, 4.29 재보선 등으로 이미 4월의 정국은 혼란으로 차고 넘쳤는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성완종 리스트를 놓고 특종기사를 내보내는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은 딱히 없는 것 같다. 검찰에 제일 먼저 직접 연락했다는 이유만으로 [단독] 타이틀을 붙이는 것은 애교다. 성 전 회장 동생의 자택서 뭉칫돈이 발견되고, 검찰 조사가 임박하고, 소환 조치가 이뤄지는 하나의 과정을 굳이 각각 보도하는 인해전술도 있다. 취재 대상의 식습관 보도는 이제 기본 소양이다. 특종을 위해 극한으로 치달은 창의력은 이름궁합을 낳기에 이르렀다.

물론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모두가 함께 취재하는 거대한 이벤트를 다른 언론과 차별화해서 보도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특종을 빙자한 무수히 많은 단독보도 끝에 남는 것은 중대함이 희석된 사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 배제된 취재원의 의사, 의미 없는 가십 등으로 닳고 헤진 언론의 보도윤리뿐이다. 이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당연한 지출이라는 식의 구태의연으로 그득한 변명은 덤이다.

성완종 리스트가 한창 언론을 오르내리던 시기는 얄궂게도 세월호 참사 1주기와 겹쳤다. 생각난 김에 수많은 ‘기레기’가 양산되던 1년 전 이맘때 한국언론협회가 낸 공식 성명을 다시 살펴봤다. 대형 사고에 눈이 멀어 섣부르고 경솔했던 보도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단독 타이틀을 달고 ‘1억 전달책’ 윤 모 씨가 검찰에 소환됐다는 비슷한 기사가 몇 개씩 올라오고 있다. 반성은 애초에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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