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하루가 거의 끝나갈 오후 무렵 중앙도서관 매점 앞 『대학신문』 가판대에는 여전히 신문지가 한 묶음 묵직하게 남아 있었다. 행여 날아가지나 않을까, 고정시킬 요량으로 돌 하나가 어색하게 얹혀 있었다. 한때는 남아 있는 신문들을 볼 때마다 억울했다. 학생 사회와 학내 언론에 무관심한 세태가 억울했고, 기사를 쓰기 위해 밤 지샌 시간들이 억울했고, 이번 호에 담긴 좋은 글들이 읽히지 못한 채 나뒹구는 게 억울했다. 차라리 돌을 치우고 바람에 날려 보내서라도 홀쭉해진 가판대가 보고 싶었다.

그 동안 많은 분들이 『대학신문』만의 가치, 『대학신문』만의 정체성을 바라는 리뷰들을 남겨주셨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다루면 독자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해주셨다. 구구절절 옳은 글이다. 『대학신문』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표방한다면 결국 그 가치란 독자들과 만나야 완성된다. 그리고 아마 그 완성이란 『대학신문』만이 다룰 수 있는 내용들이 기사에 담길 때, 빈번하고 수월하게 이뤄질 것이다. 좋은 글이 지면에 실린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야속하리만큼 냉정한 다수의 독자들에게 좋은 글은 읽을 만한 글이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읽히지 않으면 결국 그 기사는 자위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대학신문』만이 다룰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대학신문』이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다른 리뷰들 이상으로 말할 능력이 없다. 사실 지금 『대학신문』의 모습만으로도 고맙다. 그리고 주변의 기대만큼이나, 『대학신문』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들을 진행하고 해결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칭찬하고 싶다.

가령 이번 호 학술면에 실린 기초학문 진흥 좌담회 기사는, 대학사회 전반의 고민에 대한 서울대 교수들의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대학신문』 학술면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과 잘 어울렸다. 자칫 추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논의가 법인화와 관련되어 다뤄질 뿐만 아니라, 제시된 해결책들도 상당히 구체적이라 인상적이었다.

잊히는 듯했던 법인화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룬 취재부 연재기사, 마냥 어둡고 묵직할 것만 같은 홈리스들의 삶을 재활의 관점에서 산뜻하게 그려낸 사진부 기획, 문법 형식을 꽤나 포기(?)했지만 그만큼 재밌게 묘사된 축제 기사(그런데 사회자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취재는 없었는지?) 등, 모두 외부 언론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대학신문』만의 모습이다. 하던 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고, 냉정한 피드백은 이어질 것이며, 고민도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충분하다. 『대학신문』만의 정체성, 『대학신문』만의 목소리를 요청할 때 독자들이 원하는 그림은,『대학신문』이 어떤 특별한 ‘차별화 전략’을 짜내서 하나의 브랜드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닐 터다. 가판대에 얹혀 있던 돌처럼 묵묵히, 약간은 어색하게, 지금의 자리를 지키며 고민을 이어가길 바란다. 돌이 치워지지 않으면 좋겠다.

 

나영인

철학과·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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