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캡틴 플래닛이 나타난다. 어린 시절, 만화 주인공들이 위기에 빠져도 걱정하지 않았다. 힘을 합치기만 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약간의 의문이 들기는 했다. 합체하는 데에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왜 악당들은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까? 아무리 악당이래도 그걸 방해하는 건 너무 치사하기 때문일까.

예전, 중앙도서관 벽면은 학생들의 대자보로 가득했다. 중도 통로를 둘러보기만 해도, 학교에 어떤 일이 있는지 사회적 쟁점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어떤 자보에 사람들이 많이 서있는지, 여백에 펜글씨가 많이 쓰여 있는지를 보면, 주위 반응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누군가의 의견을 비판하며, 중도 벽은 학생들의 소중한 소통 공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보들이 없어졌다. 벽면에는 대자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도서관장 명의의 팻말이 부착되었고, 반대편에 부착을 허용해주는 게시판이 몇 개 생겨났다. 그렇게 간단히, 그 공간은 그 시간은, 사라졌다.

오늘날 개인들은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정보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지적 불평등이 완화되고, 개인들의 힘이 강해지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쏟아지는 정보 앞에서 개인들이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진실을 고민할 여유란 없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선택한 정보 제공자를 믿고 따르게 된다.

언론은 정보를 전달하고 사실을 검증한다. 그렇게, 언론은 사회적 소통과 논쟁을 이끌어나가는 공론장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언론에게 그런 기대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 포탈이 등장하면서, 종편이 영향력을 가지면서, 언론의 모습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언론은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보를 생산하고, 개인들은 주어진 정보만으로 세상을 완벽하게 재구성한다. 이미 충분할 정도로 많이 알고 있는 이들에게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모든 것이 당연한 이들에게 더 이상 진실에 대한 고민은, 소통과 대화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이것이 87년 민주화 이후 30여년간 언론의 자유를 누린 결과라면, 지금의 세상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문치사 사건 조작의 검사가 대법관이 되고, 유서대필 사건 조작의 법무부장관이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는 세상에서, 주어진 것을 따져 묻고 진실을 추적하는 것은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에 반하는 이들은 불순한 세력이라고 칭하는 대통령 앞에서 사회적 공론장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소통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일지도, 진실을 묻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름 사이의 소통을 위해, 합리적 의사 결정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중한 결실들이 있다. 주어진 법률 이행의 당연한 절차로 여겨졌던 법인화를 대학의 책무에 대한 뜨거운 논쟁의 자리로 만든 이들, 그들이 힘들여 만들어낸 공론장 속에서, 미래는 주어진 것에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바뀔 수 있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대학에서, 다만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 뿐임을 알려준 이들,누구도 관심가지지 않던 대학원생 인권을 말하는 그들의 노력에 뒤이어, 인권 센터가 만들어졌음을 기억해본다.

이런 세상임에도, 여전히 ‘올바른 가치’를 꿈꾸는, 그러면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는, 그대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행운이었다. 그대들의 열정이 언제나 계속되기를, 그 열정이 더 넓은 세상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김경근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