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관성 속에 숨은 변화의 씨앗을 발견하다
정치의 관성 속에 숨은 변화의 씨앗을 발견하다
  • 이승엽 기자
  • 승인 2015.05.24 0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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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

로베르토 M. 웅거 저/

추이 즈위안 엮음/

김정오 역/

창비

정치혐오증의 원인은 복잡하다. 그것은 정치와 일상을 묘하게 분리하는 이데올로기의 현현이자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체념의 표현이기도 하다. 보수든 진보든, 자유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사회의 부조리들이 고쳐지지 않는 현실은 국민들을 낙담하게 한다. 사람들은 정치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낼 힘마저 잃고 투표를 하지 않으며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 냉소적인 정치 풍자에서나 위안을 얻는다. 정치는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가장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대중과 유리되고 있다.

이에 대해 브라질 출신 한 법학자가 사회의 근간이 되는 정치사상의 틀을 깨는 사회이론을 제안한다. 그 학자는 바로 로베르토 M. 웅거 교수(미국 하버드대 로스쿨)다. 웅거는 1970년대 29세의 나이로 하버드대 종신교수가 된 인물로, 당대 주류였던 보수 법학계에 반기를 든 비판법 운동의 선두주자다. 웅거는 자신의 급진적 사회이론의 정수를 『정치』 3부작에 담았으며, 이것이 한 권으로 엮여 『정치: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으로 한국에 출간됐다. 이 책에서 웅거는 근대 서구사회를 지배하는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등 정치사상을 근본적으로 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또 그는 정치, 경제, 법학을 넘나들며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수정가능한 인공물로서의 사회

웅거가 가지고 있는 사회이론의 출발점이자 핵심은 ‘인공물로서의 사회’(Society as Artifact)다. 그에 따르면 근대 사회이론은 사회가 저변에 놓인 자연 질서의 표현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상상되고 만들어진 인공물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됐다. 홉스와 베버 등의 사회계약론은 모든 것이 이미 자연에 의해 정해졌다는 중세의 필연적 종교 관념에서 벗어나 인공물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사회를 설명한다.

그러나 웅거는 근대 사회사상이 중세 기독교적 사고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인공물로서의 사회를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그가 보는 현대사회는 종교에 대한 숭배가 제도에 대한 숭배로 대체된 제도적 물신주의 사회다. 대의제와 시장경제에 결함이 없다고 맹신하는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운명론적 유토피아를 믿는 마르크스주의처럼 인간은 사회구조가 수정 가능한 인공물임에도 불구하고 제도와 이데올로기를 거부할 수 없는 법칙으로 인식함으로써 폐쇄적 사고의 틀에 갇혀버린다.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고자 웅거는 개방적인 인공물로서의 사회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형성적 맥락’(Formative Context)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형성적 맥락은 구조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사회구조’와 유사한 의미로, 제도와 이데올로기의 집합체로서 사회자원을 분배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체계를 말한다. 웅거의 이론은 형성적 맥락이 우리의 일상을 규제하지만, 그 자체로 폐쇄적이거나 고착화돼 있지는 않다고 본다. 그는 사회구조가 오히려 개방적이며 인간의 도전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고 본다.

필연적이라고 보이는 것에 의문을 갖는 힘

형성적 맥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힘으로 웅거는 ‘부정능력’을 제시한다. 그는 부정능력을 발휘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맥락을 처음부터 다시 분석하고 통찰함으로써 기존의 구조와 제도를 숭배하는 사고방식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작인 『주체의 각성』에서도 웅거는 인간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돼 모든 일상을 정치로 만들고, 일상의 작은 변화를 실천에 옮겨 점진적으로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웅거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들은 여러 결함을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되는 심층구조 사회이론은 사회체계를 일상으로부터 분리하고 구조화해 필연적 법칙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유럽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에서 보듯 완전무결한 사회구조는 존재하지 않음이 증명됐다. 모든 사회구조에는 결함이 있으며, 이에 따라 변화 가능성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론은 사회 혁신을 막는 걸림돌일 뿐이라고 웅거는 말한다.

심층구조 사회이론에 반대편에 있는 실증주의적 사회과학 또한 웅거의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실증주의적 사회과학은 구조와 일상의 구분을 해체해 개별적 현상으로 사회를 설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그 구분을 부정한다면 인간은 현존하는 제도 내부의 갈등과 타협의 문제에만 몰두하게 된다. 웅거는 이로 인해 우리는 ‘체념적 내부자’로 머물게 돼 진정한 변혁의 전망을 갖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초자유주의와 프로그램적 대안

이 비판에 근거해 웅거는 두 사상 모두에 저항하면서 인공물로서의 사회라는 관념을 확장해 새로운 대안이론인 ‘초자유주의’(Superliberalism)를 제시한다. 초자유주의는 사회 속에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 구조의 필연성이나 법칙성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이 이를 계속해서 변화시키고 개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즉, 현재 사회구조에 대한 부정능력을 통해 제도적 맥락을 변화시킴으로써 기존 사회이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초자유주의의 실현을 위해 웅거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대안은 ‘권한 부여적 민주주의’인데, 이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최대한 부여하고 사회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을 활성화해 자기 교정적 메커니즘을 가진 사회를 말한다. 웅거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처럼 하나의 거대한 사건을 통해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지속적인 교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이에 책에서는 근대 자유주의와 그 근간인 소유권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인간의 부정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적 대안’(Programmatic Alternative)을 제시한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적 정부조직을 분권화하고 중간급의 기구를 설치하며,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대안으로 국가의 자본기금, 다양한 투자기금, 노사협력의 투자기금 등 자본의 3층 소유구조를 제안하기도 한다. 또한 웅거는 사회적 진입장벽을 낮춰 유연성을 확보하고, 아동교육 강화와 보통 사람들에 대한 평생교육을 주장하며 변혁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자고 말한다. 분할된 소유권과 개방 구조를 통해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강화된 민주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웅거의 이론에도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점이 존재한다. 웅거의 사회이론은 여지껏 서구사회의 핵심으로 군림한 사상들을 뒤흔드는 것이기에 자본 소유권을 분할하자는 주장도 일반 시민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웅거의 프로그램적 대안의 방법이 현실에 구체적으로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 연금개혁이나 복지제도 확대에 있어서도 자유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인데 웅거는 어떻게 사회인식을 바꿔나가야 하는지, 초자유주의의 권리 개념을 어떻게 구체화할지에 대한 고민을 다루지 않는다.

또한 웅거의 저술 속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이론가들이 언급되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의 사회이론이 필연적인 법칙성에 매몰돼 있거나 변화에 무관심해 그런 이론들을 뛰어넘고자 하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을 대안이론으로 취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는 그의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없도록 하는 중대한 요인이다. 진보 법학자 데이비드 트루벡 또한 웅거의 이론은 학계 및 정치세력과의 연계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웅거의 주장이 대안이론으로서 매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타 이론과의 연계를 통해 설득력을 높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비록 이와 같이 웅거의 사회이론은 구체화 과정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존의 사회이론을 되짚어보고 이를 초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됐던 신자유주의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한계에 직면하면서, 사람들은 웅거의 이론을 통해 정치에 있어 제3의 길도 존재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한국사회에 웅거가 제시하는 비전

서문에서 웅거는 “한국 역시 브라질처럼 미국식 사회과학을 복제하거나 위축된 마르크스주의에 다가가는 등 두 가지 학문적 문화가 지식인들을 인도하고 있는데, 이 두 종류의 학문적 문화의 평화적 공존은 지적인 삶에서 극복해야할 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정치체계는 서구에서 유입된 자유민주주의라는 기본적 틀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 안에서 사회민주주의와 타협을 모색하는 데 급급하다. 이 타협의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 증가해 혐오와 무관심으로 확장됐다. 모든 것이 정치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모든 것을 정치에서 분리하게 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려면 우리는 폐쇄적인 양당정치체제에 대안 세력이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고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잡기 위해 부정능력을 끊임없이 사용해야 한다. 한국사회를 향해 웅거는 서구사상의 기본이 되는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틀릴 수 있음을, 그리고 진정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부정할 수 있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막스 베버는 “여러 결정적인 문화적 성취에 관련된 영감은 문명의 주변부로부터 유래한다”고 얘기했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고 자란 에드워드 사이드는 주변부의 시각으로 쓴 『오리엔탈리즘』으로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의 전환점을 열었다. 브라질에서 자라 미국에서 교육받은 로베르토 웅거 역시 기존과 전혀 다른 시각을 던져준다. 서구사회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자유민주주의의 틀에 갇혀 처음부터 되짚어 보는 방법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면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을 편견 없이 제3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의 부제처럼 웅거는 우리에게 운명처럼 보이는 것을 부정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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