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화)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와 합동으로 ‘정부 연구개발(R&D)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혁신안은 정부 R&D 지원체계를 중소기업 중심으로 개편하고,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인 행정체계를 간소화하며, 부처 간 활동을 조정하는 R&D 컨트롤타워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일부 정부 출연연구기관을 실용연구 중심의 ‘한국형 프라운호퍼 연구소’로 혁신하고, 국무 총리 산하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 사무국 기능을 미래부 산하의 ‘과학기술전략본부’로 재편하며, 이를 지원하기 위해 ‘과학기술정책원’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국가 R&D는 어느 분야보다도 장기적인 안목의 제도와 정책이 필수적이다. 과학기술 혁신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며, 새로운 것은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국가 R&D 활동은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강조할 필요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연구자들이 의욕적으로 창의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자율성과 안정성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벨 연구소와 영국의 캐번디시 연구소 등 세계 과학기술의 역사 속에 찾아볼 수 있는 성공 사례들은 R&D 활동에 있어서 ‘규율된 인내’(disciplined patience)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1967년 과학기술처가 설립된 이래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한 번도 참을성을 보이지 않았다. 정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빠른 추격자형’ 전략을 채택했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과학기술은 경제발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의미를 지녔으며, 그 와중에 과학기술처는 과학기술부로 승격되기도 했지만 폐지되기도 했다. 부처간 정책 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1999년 대통령 산하로 설치된 후 부침을 거듭하다 결국 2013년에 국무 총리 산하의 국가과학기술심의회로 격하됐다. 이번 혁신방안의 중요한 축인 과학기술전략본부 역시 2004년에 유사한 형태로 설치됐다 불과 몇 년 후 폐지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미래부의 R&D 혁신방안은 여전히 추격자형 과학기술정책에 머물러 있다. 널뛰기하듯 제도적 틀을 뜯어 고치는 것도 그렇지만, R&D의 경제적 성과와 그것을 측정하기 위한 평가 체계를 고안하는 것에 몰두한다는 점, 그리고 연구자들의 자율성과 안정성에 대한 고려가 부재하다는 점이 그렇다. 이번 혁신방안에서 주요 키워드로 떠오른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들은 기관장의 평균 임기가 20년이 넘을 정도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제는 탈(脫)추격형 혁신체제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