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부 이설 기자

「작은책」을 방문한 것은 취재차 간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를 낯설게 여기는 듯했던 직원들의 표정이 아버지의 이름을 듣더니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아버지는 「작은책」 창간부터 함께 해온 100여명의 정기구독자 중 한 명으로 종종 사무실을 찾아왔다고 한다. 기자 역시 「작은책」을 오랫동안 봐왔고 유이분 편집장과 안건모 대표의 글도 재밌게 읽은 터라 대화가 술술 풀렸다. 책에서만 본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설렘과 오랫동안 알아온 공간에 있는 듯한 아늑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청소년기에 아버지가 구독했던 잡지들을 읽고 시간을 보낸 기억이 많다. 「말」「한겨레21」「인물과 사상」…. 「작은책」은 그 중 내가 가장 어릴 적부터 부담 없이 즐겨봤던 잡지였다. 「작은책」에 실렸던 글은 대개 노동자나 주부, 학생들이 쓴 진솔한 생활글이었다. 멋들어진 문장도 현란한 지식도 없이 입말에 가깝게 쓰였다. 다들 자기가 겪거나 들은 일을 들려주듯 쉽게 써서 친숙하고 재미가 있었다. 나중에는 「작은책」에 실린 언론인 홍세화, 노동운동가 하종강, 경제학자 정태인 등 진보적 지식인의 글을 읽게 됐다. 그 시절, 고등학생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만큼 사회문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그들의 글은 세상을 보는 창이었다.

요즘 어딜 가나 사람들은 화면을 들여다본다. 보고 있는 것이 웹툰이든 SNS 타임라인이든 프리젠테이션 자료든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매체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이다. 종이로 된 매체를 잡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은 편이다. 책은 무겁고 두껍고 돈 주고 사야한다. 좀더 가벼운 신문, 잡지도 다양한 종류를 쉽게 골라볼 수 있는 웹에 비해 편리성이 떨어진다. 컷툰, 피키캐스트, 유튜브 동영상처럼 가볍고 얕게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스낵컬쳐’ 콘텐츠가 각광받는 시대에 글을 읽는 시간과 글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종이매체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지만 나름대로 「작은책」의 오랜 독자로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작은책」은 20년 전 ‘노동자 글쓰기 운동’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출현한 잡지다. 당시의 지향을 지금까지 지켜왔다는 점은 놀랍지만 잡지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종이매체도 노동운동도 점차 낡은 것이 되는 가운데, 「작은책」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취재를 준비하면서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 질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작은책」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은 무의미해보였다. 취재를 하는 와중에도 편집자들은 글을 청탁하고 독자의 전화를 받고 책을 포장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안 대표는 노동자들이 받은 경제적 타격이 고스란히 「작은책」으로 돌아온다고 토로하면서도 목소리에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그래도 망하진 않을 거 같아. 독자가 여전히 5천명인데 사실 작은 건 아니지. 요즘 천 권 이상 팔리는 책 잘 없어요.” 「작은책」을 계속 만드는 이유는 단순하고 구체적이었다. 「작은책」을 재미있게 읽고 감동을 느끼는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도 지금도 사람들은 「작은책」이 망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작은책」은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는 대신 지금 여기의 구체적인 희망을 보며 한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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