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훈 부편집장

소통의 장 되지 못한 대화협의체의 한계

뒤에는 학생은 오로지 ‘수혜자’라는 인식

이를 극복하고 학생 의견 적극 수렴해

받고 싶은 시흥캠퍼스 함께 만들어야

살면서 받아본 선물 중 가장 애물단지였던 선물은 예전에 고등학교 동문회에 나가고 받았던 다용도 설탕세트였다. 10kg이나 나갔던 설탕세트는 동문회 장소에서 기숙사로 들고 오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그 설탕세트는 매일 밥에 곁들여 먹지 않는 한 도저히 모두 사용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이었다. 결국 나는 그 설탕세트를 고향에 들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그 선물이 가장 황당한 선물일 것이라 믿었지만 지금 보면 그 생각이 틀릴지도 모르겠다.

지난달 26일 본부는 총학생회와의 간담회에서 새로운 기구를 통해 시흥캠퍼스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본부 측은 새로 만들어질 기구가 기존에 존재하던 기구들을 흡수 통합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동안 사업의 진전이 알려지지 않아 학내외의 걱정과 의구심을 키워왔던 시흥캠퍼스 추진 계획에 본부가 조직 개편으로 팔을 걷어붙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기존의 기구들이 학내 구성원이 서로가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시흥캠퍼스 대화협의체는 학내 구성원과의 대화 없이 사업을 추진하려던 것에 반대한 학생들이 100일이 넘는 천막 농성을 진행하는 우여곡절 끝에 끝에 본부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흥캠퍼스 대화협의체는 태생적으로 본부의 의사 결정 기구의 하부조직이었다는 한계가 있었고, 시흥캠퍼스 대화협의체는 본래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는 데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시흥캠퍼스 대화협의체는 사업 실시협약 체결, 시흥캠퍼스 입주 시설 구상 등 어떤 부분에서도 시흥캠퍼스 사업 추진의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지 못했다. 또한 가장 큰 성과인 시흥캠퍼스 학생 설문조사마저도 문항 설계에서 시작해 설문조사 자료 제공 및 분석에 이르기까지 논란으로 점철됐다.

이제 새로 발을 내딛는 시흥캠퍼스 추진단이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거 시흥캠퍼스 대화협의체의 실패 요인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시흥캠퍼스 대화협의체의 실패 요인 중 가장 큰 요인은 대학이 학생을 교육 및 행정 서비스의 수혜자라고만 생각하는 인식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그동안 서울대가 학생을 서비스의 수혜자로만 바라보는 것은 예전부터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법인화 추진 과정에서의 모습도 그랬고, 법인화 이후 첫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의 모습도 그랬고, 지금 시흥캠퍼스를 추진하면서 보여주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학생에 대한 서비스 의식도 이번 수강신청 서버 문제를 보면 그렇게 철저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학생이 더 학교 운영 과정에 더 자주 참여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사실이다. 그리고 법인화 이후 대학은 국립대 시절과는 다른 위상과 권한, 그리고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대외 사업에 대해서는 학교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흥캠퍼스는 학생들이 직접 생활해야 하는 장소고, 시흥캠퍼스가 서울대의 경쟁력이나 학생들의 대학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때문에 시흥캠퍼스 사업은 더더욱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진행돼야 한다.

살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을 줘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 없다. 그리고 선물을 받은 사람이 기뻐하고 고마워해서 흐뭇했던 경험을 한 적도 있을 것이고 필요로 하지 않는 선물을 받은 사람이 별로 내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아 무안했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시흥캠퍼스는 원치 않는 선물을 받게 되는 학내 구성원에게는 단지 애물단지로 남겨지는 것이 아닌 크나큰 불편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물릴 수 없다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받는 사람도 만족할 수 있는 선물을 건네주는 것이야말로 본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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