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의 정원사 초록빛 도시를 꿈꾸다
빌딩 숲의 정원사 초록빛 도시를 꿈꾸다
  • 유승의 기자
  • 승인 2015.09.06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쓰레기로 가득했던 도심 속 버려진 땅이 하룻밤 만에 정원으로 바뀌었다. 회색빛 칙칙한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는 두 눈 가득 푸른빛으로 치장한 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의 도심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정원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진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원을 통해 사회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서 저마다의 색다른 방식으로 정원을 가꾼다. 이제 정원은 더욱 다채로운 빛깔들로 채워져 간다. 혼잡한 명동 거리의 빌딩 옥상에서,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옆에서, 시청과 구청 안에서, 빽빽하게 들어선 도심의 무채색 빌딩 숲 사이에서, 바로 우리 곁에서 지금 다양한 정원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글·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snu.kr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도심 속에서의 벌들의 비행 
- 어반비즈 서울

보통 빽빽한 빌딩 숲 속에서 벌들이 날아다니는 풍경이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도 명동 거리의 한복판에서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명동 유네스코회관의 옥상정원에서는 오늘도 수천 마리의 벌들이 힘찬 날갯짓을 치고 있다. 도시양봉을 기획하는 ‘어반비즈 서울’의 박찬 팀장은 도심 속에서 양봉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히며 “오히려 도시일수록 꿀벌이 좋아하는 고온 건조한 기후를 갖춰 양봉에 더 적합하고, 영등포구를 제외한 서울의 24개구가 모두 산을 끼고 있어 꿀벌이 자라기 적합한 환경을 갖췄다”고 말했다. 도시양봉을 통해 어반비즈 서울이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은 도시생태계의 다양성 확보다. 벌들이 꿀을 모으는 과정에서 수분이 매개되고, 결국 자연스럽게 다양한 생물들이 벌집 주변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기자님도 지금 벌써 ‘벌’하면 ‘무섭다’라던가, ‘꿀’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먼저 떠올리시잖아요. 사실 중요한 건 생물의 다양성이에요. 실제로 저희가 숭실대 옥상에서 하는 양봉 덕분에 건물 주변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까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도심 속에서의 벌들의 비행을 지휘하는 박 팀장의 얼굴에는 어느덧 웃음기가 가득했다.

꽃과 함께하는 캠페인 
- 게릴라 가드닝

 
▲ 사진제공: 에코프렌즈 환경대통령 팀

“사실 이런 캠페인이 생겨났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에요. 애초에 이렇게 버려지고 황폐해진 땅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겠어요?”

에코프렌즈 환경대통령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보림 씨(전남대 환경에너지공학과·14)의 생각이다. 1970년 뉴욕 휴스턴 지구에서 예술가 리즈 크리스티(Liz Christy)에 의해 소규모로 시작된 게릴라 가드닝은 버려지고 더러워진 땅에 몰래 들어가 정원을 가꾸고 나오는 행위를 일컫는다. 땅이 방치 또는 오용되고 있음을 인식하도록 촉구하는 목적을 지닌 이 캠페인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지만 국내에는 아직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보림 씨와 같은 팀 소속의 김강산 씨(전남대 환경에너지공학과·11)도 “한국의 토지관련 법들이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진정한 의미의 ‘게릴라’ 가드닝이 국내에서는 아직 힘들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더군다나 철저한 사후관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실패하기도 쉬워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 또한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내 곧 두 사람은 입을 모아 게릴라 가드닝이 여러 환경 관련 활동들 중에서도 제일 만족스럽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던 활동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들 중에서 ‘와, 우리 정말 잘했어!’라는 말이 나왔던 건 이 게릴라 가드닝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틀에 갇힌 활동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환경을 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거든요.” 오는 10월에 다시 한 번 동기들과 자발적인 게릴라 가드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는 두 사람의 뒤편으로, 한때는 쓰레기로 가득했던 전남대의 독서실 앞마당에서 주황색 메리골드가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공연이 열리다
- 마이크임팩트 스퀘어

종각역 ‘젊음의 거리’를 거닐다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곳에서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 옥상을 우리 직원들이 담배나 피면서 쉬는 그저 그런 곳이 아닌, 색다르고 자유로운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해보고 싶었어요.” 각종 강연 및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기업인 ‘마이크임팩트’의 이슬기 매니저는 회사의 옥상에 자리한 ‘마이크임팩트 스퀘어’를 만들게 된 취지를 밝혔다. 마이크임팩트 스퀘어는 독립영화 상영회, 인디밴드 공연, 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되는 이색 옥상정원이다. 특히 이곳은 일반적인 나무와 꽃이 아닌 재활용 소품들을 활용해 더욱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슬기 매니저는 “처음에는 사내 기획을 미리 시연해보는 곳으로 쓰였는데, 온라인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나중에는 행사에 백 명 이상의 관객 분들이 참여하실 정도로 바쁜 몸이 됐다”며 기쁘게 웃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앞으로도 겨울이라는 계절의 특색을 살린 캠핑 페스티벌을 비롯한 색다른 문화행사들을 다수 기획하고 있으니 마이크임팩트 스퀘어는 또 한동안 발 디딜 틈 없이 붐빌 예정이다. 이슬기 매니저는 “최근 들어 대학생 분이 행사나 공연 등을 많이 기획하시는데, 장소가 여의치 않을 때 이곳 옥상정원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문화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 사진제공: 마이크임팩트

벽을 타고 자리를 잡은 시민들의 쉼터
- 서울특별시청 수직정원

협소한 건물 안에 정원이 가꾸어질 수 있을까? 그것도 세계 최대 규모로서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말이다. 천만 서울시민들의 행정을 담당하는 서울특별시청의 내부는 온통 녹색 빛으로 가득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닥이 아닌 벽면이 온통 그렇다는 점이다. 지난 2013년 3월 세계 최대 크기의 수직정원으로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된 수직정원답게 건물의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도심 속에서는 좀처럼 맡을 수 없었던 풀내음이 주위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이 정원은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실내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가진 아이비, 스킨답서스, 호야 등 다양한 식물들로 조성돼있다. 덕분에 서울시청의 수직정원은 더운 날씨에 잠시 머물 곳을 찾는 시민들에게는 편안한 휴식공간을, 건물 내에서 바쁘게 근무하는 공무원들에게는 쾌적한 근무환경을 제공하는 안식처 역할을 오늘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오염된 빗물을 정화하면서 재활용하다
- 광화문 레인가든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리다가 그치면 도심 속에서 빗물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사이의 배수로로 사라져 이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광화문 거리 한복판에 자리한 레인가든에는 계속 빗물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빗물이 땅에 스며들면 진흙을 통과하거나 식물에 흡수되면서 정화작용이 일어난다. 하지만 빌딩 숲속으로 떨어지는 빗물에는 흙과 식물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 결국 오염된 채 주변 강줄기로 흘러가 수질오염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레인가든은 오염된 빗줄기가 흙과 식물 위로 떨어지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정화작용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열섬현상을 해소시키면서 도시의 미관까지도 달라지게 만드는 등의 긍정적인 역할들을 수행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국내에서 레인가든은 아직 활성화돼있지 않아 광화문 거리와 수원시 등지에 자그마하게 가꾸어져 있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앞으로 도심 일대에서 우리가 레인가든을 조금 더 자주 마주칠 수 있게 된다면 지구상의 물이 오염된 채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악순환의 고리가 조금은 느슨해지지 않을까.

 

빗물 저류와 직원들의 휴식공간 마련을 함께
- 수원시 장안구청 빗물저류정원

“나는 화면에 안 잡히게 찍어야 혀, 알았제?” 옥상정원 옆에 놓인 테이블에서 휴식을 취하며 기자를 바라보고 계시던 흰색 와이셔츠 차림의 직원 분은 멋쩍게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수원시 장안구청 빗물정원의 어느 비 개인 날의 풍경이다. 최근 장안구청은 물주머니 기술을 이용해 빗물을 저류하여 물 순환 구조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둔 정원을 옥상에 가꾸었다. 수량과 수질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어 기존에 낭비되던 수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옥상에 뭐시기를 해놓으니까 밑에서 일하다가 몸이 찌뿌드드해지면 올라와서 기지개도 좀 펴고 할 수 있어서 좋제.” 세덤블록과 빗물받이트레이를 적용해 유출저감에 효과적이라는 정원 표지판의 교과서적인 설명도 나쁘지 않지만, 업무에 지친 구청 직원들의 느긋한 휴식공간이라는 뜻이 담긴 직원 분의 정겨운 한마디가 더 인상 깊게 느껴졌다.

 

도심 속에서 즐기는 자연으로의 일탈
- 유니스의 정원

마당으로 들어서자 향긋한 풀내음으로 가득한 정원 옆으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의 한 끼 식사를 즐긴 뒤 정원을 걷다보면 어느새 해가 저문다. 조명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야경이 색다르게 다가와 기분이 들뜬다. ‘이로운 풀’이라는 뜻을 담은 ‘이풀실내정원’ 안으로 들어가 보면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린다. ‘걷는 정원’을 거닐다가 ‘피톤치드 체험실’에 들러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베이커리와 카페에서 후식을 사서 ‘읽는 정원’에서 책을 한 권 펼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안산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 ‘유니스의 정원’은 오늘도 도심 속에서의 자연을 즐기고자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단순한 과수원에 불과했지만 유니스의 정원은 이내 곧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아늑한 휴식처를 제공하겠다는 이경진 실장의일념 하에 아름다운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고, 이곳을 방문해주시는 분들이 그냥 잠시 편하게 쉬다 가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바쁜 와중에도 살갑게 웃으며 인터뷰에 응했던 유니스의 정원의 박민경 차장의 마지막 말에서 이 도심 속 휴양지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