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선 노동자들, “자본 위주의 노동개혁 이제는 멈춰야”
길 위에 선 노동자들, “자본 위주의 노동개혁 이제는 멈춰야”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5.09.13 0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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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민주노총 2박 3일 철야농성
▲ 10일(목) 정부서울청사 앞 인도에 농성장을 만든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현 정부의 노동개혁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박근혜 정부가 집권 하반기 최우선 국정과제로 노동개혁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4일 국무회의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이어 6일에는 대국민담화에서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승부수를 띄웠다. 4월 결렬됐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대화 테이블도 다시 차려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목)을 넘기면 정부 단독으로 개혁법안을 내겠다”며 노사정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정부는 기득권을 가진 노동자들이 특권을 내려놔야 고용을 유지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다시 ‘정규직 과보호론’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노사정위가 열리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2박 3일 동안 현 정부의 노동개혁을 규탄하는 농성을 열었다. 퇴근 시간인 6시가 지날 무렵 민주노총 공공운수지부 소속 노동자들이 속속 농성장으로 모여들었다. ‘쉬운 해고 낮은 임금 노동개혁 박살내자’ ‘비정규직 학살하는 노동개혁 박살내자’라는 문구가 앞뒤로 써진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은 “투쟁!”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인디계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가수 임정득 씨도 농성장을 찾아 이 땅의 노동운동을 응원하는 내용의 자작곡 「이제 우리 차례야」 「아스팔트 위 작은 깃발」 등의 노래를 부르며 투쟁 분위기에 불을 지폈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노동조합 간부들의 발제가 이어졌다.

이번 노동개혁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이슈는 임금피크제 시행과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이다. 임금피크제는 노동자의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특정 시점부터 임금을 점차 삭감하는 제도다. 따라서 임금피크제의 대상은 정년이 보장되고 특정 연령까지는 연차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상승하는 노동자다. 정년은커녕 임금상승조차도 경험해본 적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와 닿지 않는 이야기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임금피크제 시행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다.

정·재계는 바로 이 온도 차를 공략했다.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임금피크제만 시행되면 정규직 고용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당장 7월 7일 고용노동부가 시행한 ‘임금피크제 인지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이상 노동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2.8%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찬성했다. 7월 30일에는 보수 성향의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이 민주노총 앞에서 “형님들! 삼촌들! 노동개혁 동참해 청년 일자리 많이 만들어주세요”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농성장에서 민주노총 최종진 수석부위원장은 임금피크제가 정부의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임금피크제가 시행돼도 경영계가 청년고용을 늘릴 보장이 없는데다 이미 임금피크제가 시행되고 있는 공기업 사업장에선 오히려 신규고용이 줄어들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 9일 새정치민주연합 박완주 의원이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임금피크제 도입기관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5년 임금피크제를 실시한 96개 공기업 중에서 36곳은 내년 신규 채용인원이 1명도 없었다. 96개 공기업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늘어난 일자리를 다 합쳐도 전체 정원 대비 1.8%에 불과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시 전체 공기업 정원 대비 3%의 인원을 신규 채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보통신노조 정춘홍 위원장 역시 임금피크제는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고 단언했다. 정 위원장은 “이미 LG, SK, 삼성 등 대부분의 민간 기업에서 임금피크제가 시행됐는데 신규 채용확대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민간기업의 임금피크제는 임금이 삭감되는 시기가 돼도 가장 많이 받던 연도의 80% 수준까지만 연봉을 줄이지만 공기업은 50%까지 깎는다”며 “월급 50%를 삭감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그냥 죽으라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앉아있던 노동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임금피크제는 생존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지난 4월 노사정위 협상 결렬의 원인이었던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 역시 노동계와 정·재계가 부딪치는 핵심 쟁점이다. 이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해고할 수 없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23조와 연관된 사안이다. 근로기준법에서 해고를 허용하는 경우는 징계해고와 정리해고뿐이다. 기업은 허울뿐인 징계위원회를 열어 노동자를 징계해고하거나 경영실적을 조작해 노동자를 단체로 정리해고하는 식으로 법망을 피해왔다.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으로 노동자를 압박해 퇴출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정부는 현행법에 업무 성과가 낮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일반해고 요건을 추가하거나 혹은 같은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나섰다. 차라리 일반해고 기준을 명확히 해 암암리에 시행되는 억울한 해고를 막겠다는 것이다. 7일 노사정위 주최로 열렸던 노동시장 구조개선 관련 쟁점 토론회에서 권혁 교수(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정확히 명시되지 않은 법안으로 인해 발생하는 해고기준의 모호성이 해소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농성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민주노총 전원일 충북지역본부장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은 ‘쉬운 해고’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고 반발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기타회사인 콜텍의 사례를 들어 이미 심각할 정도로 불안정한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을 꼬집었다. 전원일 위원장은 “우리는 매년 흑자를 기록하면서도 미래에 생길지도 모르는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콜텍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사회에 산다”며 “이미 이 땅의 노동자들은 사실상 언제든지 해고의 위협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상황에 일반해고까지 도입된다면 기업은 그야말로 손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이 노조탄압의 수단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공공기관사업본부장은 “노사관계에선 노동자가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노동자들이 사용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사용자가 노동자를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면 이것이 곧 노조 무력화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노총 한상규 위원장 또한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은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뿐 아니라 노조가 없어 단체협약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절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과도 직결된 문제”라며 “자본이 원하는 것들을 다 내준 후엔 결국 찾아올 노동자 탄압을 막기 위해서라도 단결하자”고 외쳤다. 한 위원장의 외침에 노동자들은 촛불을 흔들며 서로를 독려했다. 최경환 장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위는 시한 내에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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