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관'했다고?
내가 '달관'했다고?
  • 김지윤 학술부장
  • 승인 2015.09.1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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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윤 학술부장

정치 참여에 무심하던 일본의 사토리(さとり, 득도) 세대가 일본 집단 자위권 법안(안보 법안) 반대 시위의 중심에 서 있다. 6명의 대학생으로 시작한 ‘실즈’(SEALDs)는 집회를 열고, 공청회에 참석하는 등 기성 시스템에 순응하는 사토리 세대의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학생들을 필두로 고등학생, 주부, 노년층까지 합류해 12만명이 안보 법안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필자 또한 90년대 생, 사토리 세대와 비슷한 시대를 살기에 그들의 상황에 십분 공감한다. 일본처럼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매번 최고치를 경신하고, 청년들에겐 이것저것 포기하는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그럼에도 살기 힘들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학생들이 먼저 나설 때라고말하는 여러 ‘어른’들의 칼럼과 강연을 접하며 이마저 ‘노오력’해야 하는 어린 것들의 처지에 옅은 슬픔을 느끼던 찰나였다.

하지만 이 땅에서 ‘먹고사니즘’의 횡포는 실로 막강하다. 그나마 일본 청년층은 사토리 프리터, 즉 아르바이트만 하고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구조망에 속한 계층이다. 반면 한국 청년은 최소한의 생활을 지탱하기도 힘겹다. 통계청에 따르면 ‘미혼단신근로자 1인 생계비’는 한 달 155만3,390원. 6,030원으로 오른 내년 아르바이트 최저 시급으로도 등록금은커녕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빠듯한 게 우리의 현주소다.

이에 더해 이 땅의 청년은 말을 사릴 수밖에 없는 시절을 살고 있다. 광장에 나가는 건 고사하고 면접 때 지원자가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까지 조사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에서조차 말을 조심해야 ‘먹고사니즘’을 이룩할 수 있는 사회에서청년은 그나마 쥔 자유로움도 담보해야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감수할 게 많은 현실이니 이미 불편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학생운동이 학생들을 다시 불러 세울 길은 요원하다. 민주화 물결의 중심에서 사회적 공감을 끌어냈던 청년연대의 계보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이적단체로 규정되며 끊겼고, IMF의 망치질에 청년들은 더는 정치적 활동에서 사회적 의의를 찾지 않게 됐다. 이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 시기를 일컫는 전학공투회의가 그 끝자락에서 살인, 납치 사건 등으로 인해 사회적 지지를 잃고 사그라진 것, 결국 이로부터 사토리 세대의 침묵이 유래했던 것과 닮은 행보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 다시금 학생운동이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해봄 직하다. 현재 실즈는 ‘우리는 하나’를 강하게 붙잡던 이전 운동과 차별화를 일궈 거부감을 덜어내고 있다. 이들은 SNS를 통해 소통하며, 시위 현장에서 아베를 비판하는 랩을 하고, 다 같이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에서 강한 에너지를 빚어낸다. 뉴스 영상 너머에서 자기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아는 듯한 그 능동성은 분명 청년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한 단초를 던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개인에게 상식을 먼저 구한다. 국회평화안전 공청회에서 실즈의 대표격인 오쿠다 아키(23·메이지가쿠인대)는 “집단, 당, 파벌을 떠나 오로지 ‘개인’으로 이 법안을 다시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소신껏 행동해달라”는 마지막 발언을 했다. 전경과 학생, 보수나 진보,세대갈등 등의 구도에 뭉뚱그려질 수 없는 ‘개인’을 포착하고, 지금의 움직임이 각자의 생각이자 너와 나의 생각, 말 그대로 상식이라는 점을 강하게 심어주는 것이 새로운 일본 학생운동의 강점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일본 청년들은 안보 법안을 자기 삶의 문제로 인식했다. 이 ‘거지 같은 상황’이 저들의 싸움이 아닌 내 삶의 문제라는 공감에서 비로소 ‘상식’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개혁안이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보다는 쉽게, 금방 해고되는 미래를 보장하는, 불필요한 대결 프레임이 판치는 ‘헬조선’에서 그들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바다 건너편 청년들의 발소리는 청년을 다그치거나 훈계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한 뼘’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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