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통합체육회의 등장과 한국 스포츠 선진화

지난 3월 한국 체육의 양대산맥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생활체육진흥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오랫동안 분리된 채 각각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이끌어 온 두 단체는 원칙적으로 다음해 3월까지 통합을 완료해야 한다. 두 단체의 통합은 단순한 구조조정 이상으로 우리나라 스포츠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 단체가 통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한국 스포츠는 어떤 모습을 향해 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스포츠 강국’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온 길

한국 스포츠는 경기력을 인정받은 소수의 체육, 이른바 엘리트체육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국민의 체육 능력에 주목한 한국 정부가 1960년대 수출 위주 성장을 위해 한국 브랜드를 세계에 알릴 목적으로 체육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 최종준 전 사무총장은 “정부는 체육 고등학교, 체육 대학교를 세워 특기자를 기르고 태릉선수촌을 지어 선수를 관리하며 병역 면제와 연금을 동기로 제공했다”고 정부가 행한 체육사업을 요약했다. 이때 정부의 예산을 받아 스포츠 강국으로 가는 길을 주도해온 단체가 한국 체육 단체의 ‘큰집’인 대한체육회(체육회)다.

한편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국민들은 스포츠를 관람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즐기길 원했다. ‘생활체육’이 화두로 떠오르자 정부가 산이나 공원 곳곳에 운동기구를 세운 것도 이즈음이다. 1991년에는 정부가 늘어난 체육 인구를 관리할 필요성을 내세워 ‘작은집’인 국민생활체육회(생체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후 체육회와 생체회는 각각 수많은 산하단체를 거느리며 한국 체육사업을 수행하는 본산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생체회가 여러 생활체육대회를 열고 시설을 관리했음에도 국민들은 승승장구하는 엘리트 선수들에 열광할 뿐 생활 속에서 체육 활동을 누리진 못했다. 교육 3대 강령의 하나로서 중시되던 체육교육은 국가가 별도의 체육 학교로 눈을 돌리면서 축소됐고, ‘1인 1기’는 다른 나라 말이 됐다. 1982년부터 프로스포츠가 본격화되면서 참가에 의의를 두고 스포츠를 즐기는 정신은 사라져갔다.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으로 떠오른 한국은 계속해서 엘리트체육 육성에만 집중했다.

 

선수들에게 외길을 걷게 한 스포츠 강국, 그 폐해는?

스포츠 강국의 거침없는 질주는 극소수의 성공한 스타를 만들었지만 수많은 선수의 삶을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지도자의 눈에 들어 ‘사다리’로 끌어올려진 많은 학생 선수들은 학습권을 박탈당했고 짧은 선수 기간을 끝마친 뒤엔 진로가 막혔다. 홍차옥 전 탁구 국가대표선수는 “지도자의 경우 특별히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한정돼 있다”며 “나머지 선수들은 일반 직업으로 가는데 대부분 계약직”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한국 엘리트체육은 선수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통합추진위원회 임번장 위원장은 “비인기 종목의 경우 선수를 하겠다는 학생이 없어 코치가 새터민이나 결손가정 학생들을 찾아가 스카우트를 하고 있으며, 축구나 농구 같은 인기종목마저도 선수 수급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교에 다니며 스포츠클럽에서 활동하던 중 실력을 인정받은 청소년 선수들이 미래가 불투명한 태릉선수촌 티켓을 거부하는 것이다.

선수 수급이 어려워 경기력을 보장할 수 없게 되자 체육계는 부랴부랴 엘리트 선수에게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2009년 대한축구협회는 엘리트 선수들이 주중에 학교 수업을 받고 주말에 경기를 뛰는 ‘초중고 축구 주말리그’를 열었다. 첫 해에는 선수들에게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지만 올해 대한축구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주말리그에 참여한 선수들의 만족도가 96.1%로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수들은 특히 ‘경기력 향상’과 ‘운동과 학업 병행 가능’ 측면에서 큰 만족감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운동선수들의 학업 결손 문제를 막기 위한 여러 제도가 임시방편으로 마련됐지만 엘리트 선수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3년 ‘학교체육진흥법’의 한 항목으로 최저학력제도가 도입됐으나 학교마다 변칙을 두면서 정착되지 않고 있다. 최근 선진국형 시즌제 리그도 늘리고 있지만 기존의 경기가 그대로 진행돼 오히려 선수들이 혹사당하는 일도 있다. 정철수 퇴임교수(체육교육과)는 “대학 축구의 경우 U리그를 만들었지만 축구연맹이 주최하던 전국대학연맹전이 그대로 열리고, 초중고 축구 주말리그가 시작됐지만 다른 전국시합에도 그대로 참가해야 한다”고 현 상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가가 많은 운동팀을 기르기보다 소수의 팀에만 집중하는 가운데 지역에서 자생하던 일반인 운동팀들이 도태되기도 했다. 임 위원장은 “일반인 팀에게 공부까지 포기하며 길러진 엘리트 팀과의 경기는 질 게 뻔한 게임이 됐다”며 “결과적으로 종목마다 팀 수가 줄게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과도한 엘리트 중심 스포츠 문화가 소수의 스타 선수를 제외하고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두 갈래로 나뉜 체육 구조

갈 길을 잃은 엘리트체육과 죽은 생활 스포츠 문화를 살리기 위해선 보다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해졌다. 이에 지역주민과 일반 학생들의 체육 활동을 늘려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의 선수 선발 과정을 보면 주거지역에 가까운 작은 지역사회에서 여러 팀이 서로 리그나 대회를 해 우승팀을 가린 뒤, 더 큰 지방자치 단위의 대회를 거쳐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면 국가대표 선수로 해외 무대에 서게 된다. 지역의 스포츠클럽은 성인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낸 회비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부가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임 위원장은 “우리나라로 치면 읍면동 동호인대회에서 시군구 대회, 그리고 전국체전 세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 피라미드 구조에서는 한국의 사다리 구조와 달리 튼튼한 뿌리를 가진 엘리트체육이 자라게 된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소수 엘리트 중심의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운동선수를 공부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모두가 생활 속에서 체육 활동을 즐기고 그 중 몇몇이 승부를 겨루며 올라가는 피라미드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한국은 애당초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분리해 뒀기 때문에 두 체육 간의 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뒤늦게나마 2012년 문체부와 교육부는 일반 학생들이 참여하는 ‘학교 스포츠클럽 리그’를 시작했고 올해 문체부는 지역사회에서 체육 프로그램과 지도자 수업을 제공하는 마을 스포츠클럽을 19곳에서 29곳으로 늘렸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 국민의 체육 활동을 늘려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는 생활체육의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나온 것이다.

선진화된 구조에서는 선수를 자연스럽게 양성할 수 있고 선수들의 은퇴 후 진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선수들이 은퇴 후에는 생활체육의 현장으로 돌아가 일반 체육인을 가르치는 순환 구조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은퇴 후 2004년 생활체육지도자의 길을 택한 홍 전 국가대표선수는 “주민자치센터가 한창 생겨날 당시 직접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제안했다”며 “올림픽 때마다 응원했던 선수가 지도자로 왔다며 학생들이 기억해주고 좋아해줘서 감사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더불어 현재 절반에 못 미치는 생활체육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임 위원장은 “(생활체육의 확대는) 모든 국민이 체육 활동을 통해 행복한 맛을 볼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독일은 일반 국민이 7명 이상이면 만들 수 있는 스포츠클럽을 통해 싼 가격으로 체조, 사격, 육상 등 다양한 종목의 훈련을 받으며 독일의 분데스리가와 다름없는 연중 리그에도 참가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체육회와 생체회의 통합은 한국 체육 시스템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히고 있다. 두 단체의 분리는 그동안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선순환하는 데 걸림돌이 돼왔다. 현재 체육회가 기한 연기를 요구하며 늦장을 부리고 있지만 통합이 무산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중론이다. 임 위원장은 “이번 통합은 문체부가 아니라 국회에서 법으로 제정했고 양 단체 모두 입법 당시 (통합을) 합의했다”며 “위반 시 예산 삭감 등 제재가 가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모두의 체육으로 가는 길은 험하다

물론 두 단체의 통합이 반드시 한국 스포츠의 선진화를 이끄는 것은 아니다. 최 전 사무총장은 “별도로 키워온 엘리트체육의 비중을 점차 줄이고 생활체육 속에서 좋은 선수가 나오는 토양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다”고 말했다. 새로운 스포츠 문화가 등장하려면 여러 세대를 지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학교에서 공부와 체육을 모두 열심히 하는 스포츠 꿈나무들이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그들이 은퇴한 뒤 다시 자녀들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체육을 지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체육시설이 부족한 상황도 생활체육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우리나라 체육시설 하나당 인구수는 3,500명이 넘는다. 배기수 관악구민체육센터 주임은 “기존회원을 미리 받은 뒤 신규회원을 받는데 수영이나 농구 등 인기 프로그램은 매번 신규 회원에게 돌아가는 자리가 없다”며 “관악구 내 체육시설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과도한 근로 시간과 부족한 여가 시간이라는 팍팍한 현실도 체육 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문화는 천 년의 나무에 달리는 열매다. 스포츠 문화를 가꿔야 할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좇아왔다. 군사정권은 청소년들을 학교로부터 격리한 채 군사 훈련을 하듯 선수로 길러냈고,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단절된 전대미문의 체계를 만들었다. 다시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선 지금, 다가올 통합체육회가 이미 양성된 엘리트 선수들의 삶을 보장하면서도 모두가 체육을 즐길 수 있는 미래상을 그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