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킹
히치하이킹
  • 대학신문
  • 승인 2015.09.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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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까지 가나? 김제? 그래, 가는 데까지는 태워줄 테니 타게. 이 더운 날씨에 거기까지는 무슨 일인가?
- 무전여행 중입니다. 서울서 김제까지요.

 

차 주인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우리 여행은 시작부터가 엉망진창이었으니 누가 비웃더라도 할 말은 없었다. 옆자리에서 태연한 표정으로 땀을 닦고 있는 이 녀석이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며 꼬시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지금쯤 팔자 좋게 드러누워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있었겠다.

‘생각을 해 봐. 서울에서 김제까지가 대략 200킬로미터 정도 돼. 마라토너가 42킬로미터를 두 시간 만에 뛰지? 우리가 네 시간 정도 걸으면 아마 그만큼 갈 거야. 여덟 시간이면 80킬로미터, 하루에 열 시간만 걸으면 100킬로미터는 너끈하다 그 말이지. 김제까지는 충분히 가고 남는다니깐!’

미친놈. 듣고 있던 선배는 헛웃음을 쳤다. 이래서 대학이라는 게 쓸모가 없어. 모아놓고 기껏 가르쳐놨더니 이따위 발상이나 나오고 말이지. 다 때려치우고 공장이나 보내는 게 훨씬 생산적이겠어. 애당초 요즘 같은 시대에 무전여행을 가겠다는 발상은 누가 한 거야? 룸메이트? 아니지. 거기에 동참을 하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이미 나사가 반쯤 빠졌다는 증거라고. 원, 무슨 인생의 깨달음을 얻겠답시고 이런 생고생을 하겠다는 건지.

지하철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 지 반나절 만에 우리는 첫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마라토너의 또 다른 이름은 초인이다. 40여 킬로미터를 세 시간 안에 주파하는 사람들은 이미 일상의 영역 따위는 아득히 초월해버린 이들임에 틀림없었다. 보통 사람이 쉬지 않고 한 시간을 바짝 걸어봤자 5킬로미터도 못 간다는 건 두 번째 깨달음이었다. 녀석의 계산대로라면 지금쯤 공주를 지나 부여를 향하고 있어야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천안 어딘가에서 표류 중이었다. 그것도 대낮에 차가 쌩쌩 달리는 국도변에서.

가지고온 물이 다 떨어졌을 때, 나와 녀석은 걸음을 멈췄다. 때마침 국가재난문자가 도착한 참이었다.

 

<폭염특보> 야외활동 자제 요망. 아이와 노인은 특히 주의바람.

차를 타야했다. 택시건 구급차건 남의 차건, 앉아만 갈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제발 좀 밖에 싸돌아다니지 말라고 나라님이 문자까지 해주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선크림만 믿고 걷다가는 김제는커녕 전라도 발치에도 못 가 쓰러질 판이었다. 너 그러다 진짜 골로 간다며 심각한 표정으로 뜯어말리던 친구 놈 얼굴이 스쳐갔다. 제길, 나쁜 놈.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못 가게 했어야지.

팔 뻗고 엄지 척. TV에서 연예인들은 이렇게 차를 잡았더랬다. 지금까지는 나와 다른 세계 이야기인 양 무심하게 지켜봤지만 돌이켜보면 그들에겐 엄지만 가지고도 길에 다니는 모든 승용차를 자가용으로 만드는 특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연예인에게만 그런 특권이 있는 건 아니었나보다. 뭣도 모르는 두 얼간이가 히치하이킹에 성공한 걸 보니. 훗날 누군가가 내 생에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지금이라고 고백할 것이다. 트럭 뒷자리에만 타게 해주십사 속으로 기도하면서 서 있던 우리 앞에, 스르륵 다가와 멈춘 벤츠. 그리고 여름하늘 아래 두둥실 떠오르는 환호성.

 
- 것 봐. 우리같이 이상한 놈들 태워보려는 사람이 있다니깐.

 

룸메이트는 국도에 대한 환상 아닌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히치하이킹이 되겠냐며 툴툴거리던 내게 녀석은 대뜸 국도를 다니는 차와 히치하이킹의 상관관계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갈 길이 바쁘다면 얼마든지 고속도로를 탈 수 있는데 뭐 때문에 일부러 국도로 달리겠어? 결국 둘 중 하나라니깐. 로망을 아는 사람이거나, 남모를 사연이 있거나. 룸메이트는 그러고 나선 ‘로망을 아는 사람은 우리를 태워준다’로 결론을 내버렸다. 글쎄. 지금 차를 몰고 있는 이 아저씨는 어떤 쪽일까. 딱히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은 아니니 로망을 아는 사람이라고 해두자. 롤렉스를 차고 벤츠를 모는 삶도 로망이라는 전제 하에서.

 
- 하, 요즘에도 무전여행을 하는 청년들이 있단 말이지. 내가 싸인이라도 받아놔야겠어!
-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어르신 싸인을 받아야 하는 걸요.

 

역시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었다. 벤츠에 히치하이킹을 하고도 저렇게 태연하게 말을 섞다니. 녀석이 내 몫까지 말동무를 할 동안 나는 녀석의 몫까지 창 밖 경치를 봐두어야겠다.
 
- 아니, 아니야. 지금 같은 세상에선 오히려 연예인들보다 무전여행하는 대학생 보기가 더 힘들어, 허허.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게 아주 모험심도 있고 깡도 있구먼. 우리 아들놈도 자네들처럼 좀 밖으로 다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놈이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가지곤....... 우리 아들이 유복하게 자라서 돈 귀한 줄을 몰라. 넓은 세상도 보고, 힘든 경험도 해봐야 사람구실을 할 텐데 말이지. 아무튼 요즘 젊은 세대는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서 큰일이야. 맨손으로도 내가 뭔가를 이뤄내고 말겠다는 각오나 오기, 응? 성공하려면 그런 게 필요한 법이라고.
- 어휴, 그러게요. 요즘은 전부 남들 하는 대로, 안정적으로만 살려고 하니까요.

 

비싼 차는 역시 에어컨 성능도 다른 모양이었다. 온몸의 땀구멍이 한꺼번에 열린 마냥 쏟아지던 땀줄기는 벌써 흔적도 없이 말라버렸다. 이런 차 주인이라면 지난여름도 지지난여름도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지내진 않았을까. 배배 꼬인 생각을 하고 있자니 돌연 엉뚱한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혹시 지금 밖이 몇 도인지는 아시나요? 물론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없었다. 차 안이 이렇게나 시원한데 무엇 하러.

 
- 너무 풍족하게 자란 거지. 우리세대야 어릴 때부터 가진 게 없으니 뭐가 아쉽겠어. 그저 삼시세끼 배부르게 먹고 내 가족 시원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집 한 채 있는 게 소원이었으니. 없는 형편에서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했지만 그 덕분에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랄까, 오기랄까. 그런 것들은 얻었는데. 지금 세대들도 어찌 보면 안타깝지. 너무 온실 속에서만 자라서 정작 중요한 걸 잃은 거니까. 이런 때일수록 부모들이 잘 해야 하는데. 부모들 잘못도 적다고는 할 수 없어.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 시켰어야했는데, 그렇지? 그래도 요즘 사람들이 자꾸 남의 탓, 사회 탓하는 건 보기가 좋지만은 않아. 주변상황이 좀 열악해도 끈기 있게 해쳐나가려는 생각을 해야지, 공부하기 힘들다 뛰어내리고, 취업 안 된다 목매고, 일 힘들다 뛰쳐나가고........ 세상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말이야. 안 그래?

- 어휴, 그러게요. 힘들다, 힘들다 하소연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말이죠.

 

벤츠라는 차를 처음 봤던 건 중학교 1학년 때 일이었다. 좋은 차, 보통 차 그리고 구린 차에 대한 기준이 아직 흐릿했을 그 무렵, 우리 반에는 벤츠를 타고 오는 여자애가 있었다. 딱히 티내거나 숨기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뻔한 전개. 쟤네 집이 어쩌니, 입고 다니는 옷이 어떻다, 친해지고 싶다, 재수 없다, 부럽고 부럽다 뭐가 어찌됐든 부럽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부럽다. 아직 세상 때가 덜 묻었던 나는 집에 가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벤츠가 뭐야? 우리 집안 대들보라며 나를 업어 키웠던 엄마는 유난히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벤츠는 엄청 비싼 찬데, 우리 현수도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되면 꼭 타렴. 아빠에게 물어봤을 땐, 너희 학교에 벤츠 타는 애 있냐? 형에게 물어봤을 땐, 아빠 차 열 대 팔아도 못 사는 차지.

부모님, 제가 드디어 벤츠를 타 봅니다. 그리고 형, 벤츠를 굳이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이렇게 얻어 타면 되는 걸 무엇 하러 비싼 돈 주고 사겠어.

 
-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젊은 사람이라면, 응? 청춘이라면 뭔가 좀 열정적으로 살아야한다는 거지. 자네들처럼 말이야. 내 아는 후배 중에도.......
- 어, 잠시만요. 죄송한데 저기 앞에 세워주실 수 있나요?

 

아저씨는 우리와 함께한 시간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보다. 허, 이것 참.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라며 아쉬워하는 아저씨를 겨우 보내고 룸메이트는 한숨을 쉬었다. 좌회전 대신 직진을 해버린 벤츠가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많이 했냐? 약간 빈정거림을 섞어 던졌더니 녀석은 얼굴을 구기며 말을 뱉었다.

 

- 아, 몰라. 꼰대가 말이 많아! 무슨 놈의 훈장질을 그렇게 해대는지.

 

이런. 결국 아저씨 이야기를 듣던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들 어떠랴. 정작 당신은 간만에 보기 드문 청년들을 만나 소통했다는 기쁨에 젖어있을 테니. 요즘 같은 세상에 무전여행을 하는, 열정적인 청년들을 내 차에 태워주고 인생의 교훈까지 전한 오늘의 십여 분은 아마 술자리에 두고두고 안줏거리로 올라갈 것이었다. 아저씨나 우리나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걸 두고 윈윈이라 하는 건가. 아무튼.

룸메이트는 기분전환이 빨랐다. 폭염주의보면 어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따위 희망찬 말을 내뱉으며 휴대폰을 챙겨들고 도로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차 주인이 어쨌든 히치하이킹에 성공한 게 아무래도 신나는 모양이었다. 음악을 세게 틀고, 고개를 흔들어대며 리듬까지 타가면서 지나가는 차들이 다 들으라는 듯 녀석은 외쳤다. 우리는 차가 없을 뿐이고! 목적지까지 가고 싶을 뿐이고! 날씨는 너무 더울 뿐이고! 그러니까 우린 뭘 해야 된다고?

차를 잡아야지. 몸뚱이밖에 없는 우리를 태워줄 멋진 어른을 잡아야지. 우리는 어차피 그런 처지니까. 아아. 이왕 잡을 거면 다음에는 아우디가 왔으면 좋겠네. 형이 TV를 볼 때마다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대던 그 아우디.

멀리서 차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뒤돌아서서 애달픈 표정으로 팔을 뻗었다. 그리곤 엄지를 척, 세웠다. 세상 모든 벤츠와 아우디를 위해. 그리고 멋진 어른들을 위해.

 

김제훈 (국어국문학과·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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