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개천절이었다. 기원전 2333년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라는 고조선을 건국한 날을 기리는 국경일이다. 그 당시에는 음력을 사용했으므로 추석이나 설과 같이 지낼 법도 한데 편의상 양력으로 바꿔 기념하며, 제천의식은 전통에 따라 음력 10월 3일에 행한다고 한다. 양력환산기에 넣어 변환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너무 너무 먼 옛날 일이라 정확한 계산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한글날의 경우, 훈민정음 반포일인 1446년 음력 9월 10일이 비교적 최근이라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됐다.

우리나라가 양력을 도입한 것은 고종 32년 1896년 1월 1일부터였고,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1873년부터, 중국은 중화민국이 건립된 후인 1912년부터였다. 그 이전까지는 달의 차고 기욺을 기준으로 한 음력을 사용했는데,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태양의 움직임을 고려해 윤달을 둔 태음태양력을 사용했다. 달을 기준으로 한 1년은 354.36707일, 태양을 기준으로 한 1년은 365.242196일이어서 1년에 11일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를 보정하기 위해 19년에 7회 윤달을 두는 방법이 정착됐다. 과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 문명이 가장 발달했고 권력도 가장 강했으므로 주변 국가들은 중국의 역법을 들여와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인덕력, 대연력, 선명력, 수시력, 시헌력 등을 2천년 가까이 사용하다가 서양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자 태양력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아는 게 힘이고 지식이 권력인 것은 마찬가지. 고대 로마의 사제들도 태음력의 일년과 태양년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시도하다가 2년마다 윤달을 끼워넣었다. 그런데 윤달의 길이를 넣는 절차를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제들이 정치적·재정적 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그 길이를 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윤달의 날수를 조정함으로써 공직의 임기를 늘리기도 하고 선거일자를 앞당기기도 했으며,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달력을 조작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에 와서는 역년과 천문의 차이가 3개월에 이르게 됐다. 로마 제국의 주춧돌을 놓은 카이사르는 이러한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양한 민족들로 이루어진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서 통일적인 달력 제작에 착수했다. 이집트인 및 그리스인 천문학자들과 수학자들의 작업을 거쳐 오늘날 양력의 기원인 ‘율리우스력’이 기원전 46년에 만들어졌다. 이후 서기 1582년 지구의 공전주기를 더 엄밀히 측정한 새로운 역법을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가 반포했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 ‘그레고리우스력’이다.

‘상상력에 권력을’이란 슬로건도 있듯이, 태양력이 대세인 현대에 좀 더 나아가보면 어떨까.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가들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들은 절대권력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달의 이름(July는 율리우스를, August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의미) 대신 꽃, 안개, 바람, 서리 등 자연의 여러 현상들에서 따온 이름을 붙이고, 기독교 관점의 연도 표시도 프랑스공화국 수립을 기준으로 공화력 1년, 2년 등으로 바꿨다. 게다가 주 7일제도 폐지한 후 10일을 나타내는 ‘데카드’를 한 주로 삼고 한 달을 3데카드로 만들었다. 12개월이 360일이 됐고 남는 5일은 국민적 축일로 삼았다. 너무 급격한 변화였든지 아니면 한 주가 너무 지루했든지, 나폴레옹은 혁명기의 달력을 폐지하고 예전의 달력을 재확립했다고 한다. 만약 주 7일제를 그대로 두고 5개 주 35일을 한 달로 삼아 10개월을 1년으로 하고 나머지 15일을 축제일로 정하면 어떨까.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매달 1일을 늘 같은 요일에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장준영 간사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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