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들은 영웅이었다. 배가 가라앉은 날, 그들은 그 바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계를 놓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떤 체계도 지원도 없던 그곳, 오직 혼란과 구설만 있던 그곳에서, 그들은 당장 눈앞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류에 몸을 던졌다. 혹자들이 그때 그들을 일러 영웅이라고도 성인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아니, 정말 그렇게 말했었나. 만일 그렇다면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저 민간잠수부들에게 돌아온 것은 박수와 월계관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후유증을 얻었다. 당시의 무리한 작업 때문에 디스크에 걸리고 뼈가 썩어 들어갔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으며, 시시때때로 검은 물의 악몽이 밀려왔지만 어떤 심리치료도 지원받지 못했다. 그뿐인가. 그들의 이름은 명예의 전당에 걸리지 않았다. 대신 해경은 동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물었다. 업무상 과실치사, 그것은 그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유일한 공로패였다.

저들은 영웅이라기엔 너무나도 참담했고 전설이라기엔 너무나도 빨리 잊혔다. 대체 영웅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사실 영웅이란 애초부터 인간이 아닌 허구에 붙이는 이름이 아니었나. 신화학자 캠벨이 “상징화되고 보편화된 꿈”이라고 설명하듯, 영웅 신화는 인간이 자신들의 한계 너머를 상상하는 데서 창조된 까닭이다. 그것은 지상에 발 딛고도 현실의 부박함을 뚫고오르는 신인류에 대한 바람 그 자체여서, 영웅은 반드시 인간적 결핍을 결여해야 했고 다만 불멸해야 했다. 영웅 신화는 초인 바깥쪽의 서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누군가는 신성이 사라진 오늘날에 걸맞은 보다 ‘인간적인’ 영웅도 있지 않겠나 물을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현대인들은 슈퍼맨을 만들었다. 그 역시 허구일 뿐이었지만, 그는 신화 속 영웅에 비하면 제법 인간적이었던 것 같다. 그에게는 치명적 약점도 있었으며, 그의 적들은 다행히도(?) 나날이 다채롭게 강해졌다. 그런데 그가 결핍을 갖는 인간이라면, 그리하여 그 역시 삶과 죽음의 시간 위에 놓여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영웅의 슬픈 말로를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움베르토 에코는『대중의 영웅』에서, 슈퍼맨 시리즈의 작가들이 이러한 결말을 교묘히 피해간 방법을 설명해낸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들 간의 모든 인과적이고 선후적인 관계를 없애는 것이었다. 뒤엉키고 반복되는 슈퍼맨 시리즈의 이야기 구조 속에서, 슈퍼맨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의 늙음을 도무지 인지할 수 없다. 그렇게 영웅은 다시 초인이며 불멸이 되었다.

곧 영웅 신화부터 슈퍼맨 이야기까지, 거개의 영웅 전설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그것들이 한 인간의 온전한 서사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하니 우리가 현실에서 영웅담을 구한다는 것이, 사실은 어느 누군가의 서사를 잘라내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만 할 것 같다. 우리는 그들을 신인류라고 칭찬하고 그들의 어깨에 망토를 두르는 것으로, 아직은 세상이 살만하다 스스로를 쉽게 위로하며 자신의 죄책감을 더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저들에 대한 얼마나 많은 오인과 망각이 일어날 것인지.

그러므로 드물게 일어나는 선량한 일들이, 우리와는 다른 초인에게서가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아픔을 갖는 한 인간에게서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읽어내야만 할 무수한 이야기들은 어떤 영웅적인 행적보다는 “정말 수차례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던 그들의 고백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려버리는 것이라면 차라리, 영웅은 없다. 영웅은 그저 전설일 뿐이다.


백수향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