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학과 최화선 강사

어찌된 일인지 나는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종교와 ‘무엇’”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주로 맡아왔다. ‘종교와 문학’ ‘종교와 영화’ ‘종교와 예술’ 등등. 그런데 이런 제목의 강의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무엇이 종교적인 영화, 혹은 종교적인 예술인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얼핏 보기에는 종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한 영화나 예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약간 당황스러워한다. 나아가 ‘종교’라는 개념이 그렇게 명확하고 깔끔하게 정리돼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면 더 혼란스러워 한다. “종교와 ‘무엇’”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는데, ‘종교’ 자체가 뭔지도 확실지 않다니.

‘종교’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아는 말인 동시에, 저마다 그 말을 사용할 때 다른 의미를 지니는 말이다. 이는 종교인의 맥락에서도 그렇고, 학자들의 맥락에서도 그렇다. 종교인들은 저마다 자신의 종교를 기준으로 종교라는 말을 사용하며, 학자들은 자신들의 특정한 관심사와 학문적 배경에서 종교를 정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종교학자들은 ‘종교 그 자체’라는 것은 차라리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것들을 종교라 불렀는지, 그렇게 불린 종교는 한 공동체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연구들은 종교라는 말을 둘러싸고 형성돼 온 다양한 의미의 층위들을 보여준다.

사실 “종교와 ‘무엇’”이라는 강의의 프레임은, 이렇게 복잡한 종교 개념사를 살펴 볼 기회를 별로 제공하지 않은 채, 고정된 범주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년동안 “종교와 ‘무엇’”을 강의해오며, 나는 오히려 이러한 프레임을 통해 고정된 종교 개념을 재고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의 전반부에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확정적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다소 실망스런 전제를 일단 풀어놓아야 하며, 오히려 ‘영화’나 ‘예술’ 등 다른 ‘무엇’을 통해 종교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제안을 해야 한다. 물론 한 학기가 끝나도 이렇게 다시 생각해본 종교 개념이 말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으며, 다양한 종교의 측면들 중 학생들 저마다 가장 인상 깊게 포착해서 기억하는 부분도 다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소한 틀에 박힌 ‘종교적인 영화’나 ‘종교적인 예술’이 아닌, 그 어떤 영화도 그 어떤 예술도 누군가에게 ‘종교’라 불리는 무엇과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 만큼 ‘종교’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확장된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초창기, 어떤 학자는 영화가 종교의 언어 혹은 신비주의의 언어로 해석되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마침내 종교적 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예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이를 종교의 언어로 포장하는 것은 또다시 반동적인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종교는, 사람들의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흔적들로 이루어진 종교, 즉 거칠고 조잡하게 만들어진 봉헌물이나 특정 성인의 축일에 거리로 뛰쳐나온 여인들의 춤, 마을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쇠붙이를 녹여 만든 제의도구 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영화나 예술을 종교처럼 이해하는 것보다는, 종교를 영화나 예술처럼 이해하는 것, 거기에 종교에 대한 희망이 놓여있는지도 모르겠다.

 

최화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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