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학과 조은별 강사

나의 전공은 교육학이다. 그런데 최근 참여하고 있는 연구의 주된 키워드는 ‘예술경험’이다. 예술에 대한 개인적 흥미도 영향을 줬겠지만, 예술경험이 다른 분야의 수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흐름이 연구문제에 반영된 것이다.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예술경험이 교육학이라는 나의 공부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연구문제를 나의 경험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 싶어진 것이다. 마침 그 즈음 동양화과에서 개설한 교직원 수묵화반의 안내문을 접했다. 품위 있는 취미생활이라는 명분도 좋았다. 그렇게 시작한 수묵화 강좌에서 봄에는 싱그러운 생명을 품은 매화를, 여름에는 기품 있게 뻗은 난초를, 가을에는 우아한 국화를, 겨울에는 강인하면서 부드럽게 솟은 대나무를 만났다. 이렇게 예술경험과 사계절을 보낸 것이 두 해를 훌쩍 넘어가고 있다. 그 결과 예술경험과 교육학 공부와의 관계에 대한 이 개인적인 연구로 나는 몇 가지의 결과를 확인했다. 물론 예술경험의 수준이 일주일에 한 번, 두어 시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논의의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힌다.

우선, 예술경험이 즐거움, 행복감과 같은 긍정 정서를 유발해 공부에 적합한 심리적 조건을 제공할 것이라는 가설은 기각됐다. 대부분의 시간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누가 먹의 번짐과 여백의 아름다움이 수묵화의 매력이라고 했던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붓 때문에 종이엔 여백이 모호한 검은 덩어리와 번짐만이 남기 일쑤였다. 짜증이 났다. 좀처럼 그림이 나아지지 않자 분노까지 일어났다. 이전에는 없던 부정 정서가 오히려 예술경험으로 인해 발생했다. 배울수록 부정 정서는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수묵화반 선생님은 그림에 대한 안목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붓 사용이 숙련되지 않으니 그렇다고 하셨다. 이제 그 안목을 바탕으로 진득하게 연습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이 감정은 공부를 하면서 내 능력의 한계를 더욱 절감하게 되는 상황과 교차됐다. 매우 닮았다. 그래서 이 답답함은 공부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아는 안목으로 생긴 것이니, 이제 숙련으로 채워나가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봤다. 조금 괜찮아졌다. 예술경험이 공부에서의 심리적 어려움을 새롭게 바라보고 다룰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예상했던 긍정 정서의 유발은 아니었으나, 예술경험이 공부를 위한 심리적 조건 형성에 긍정적인 것은 분명했다.

한편, 예술경험이 인지적 활동을 활성화해 공부를 촉진할 것이라는 가설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 같다. 화선지에는 선이 하나 그어질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매순간 각각의 선과 공간들이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구도가 식상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몇 단계 이후의 장면을 미리 상상하면서 붓의 거취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교육학 공부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연구를 설계하고, 그 결과가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적어도 체계적 의사결정을 연습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예술경험은 교육학 공부에 인지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개인적인 연구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검증해야 할 가설이 아직 몇 개 더 남았다. 붓과 친해지면서 예술경험의 질적 수준이 깊어진다면 그 효과에도 차이가 나타날 것이라는 가설이 추가되기도 했다. 연구의 결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사실 당장 내가 바라는 것은 올 가을에 탐스런 국화 한 송이를 그럴 듯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짜증은 덜 느끼면서.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