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와 통제를 넘어, 평등한 교실의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분리와 통제를 넘어, 평등한 교실의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 최예린 기자
  • 승인 2015.11.15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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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캡션: 광화문의 한 카페, 이형빈 교수의 목소리에서 간절함을 엿볼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컴퓨터만 쳐다보며 각자 행정 처리만 하는 지금의 교무실이, 모두가 동그랗게 모여 앉아 수업에 대한 토론을 하는 교무실로 바뀌어야 한다.” 그가 꿈꾸는 교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 삶과 교육 사이의 ‘섞임’을 담고 있다.

지난 12일, 63만명의 수험생이 수능을 치렀다. 수능이 전 국민의 주요한 관심사인 우리나라에서는 올해도 ‘수능 진풍경’이 벌어졌다. 경찰은 지각한 수험생을 시험장에 데려다줬고 전국 회사의 출근 시간은 늦춰졌으며 비행기 이륙도 통제됐다. 이처럼 시험 하나에 매년 전국이 떠들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수능이라는 시험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하루의 시험으로 12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가,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이 송두리째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의 경직된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형빈 교수(광주여대 교양교직과정부)는 그의 저서 『교육과정-수업-평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를 통해 이러한 교육 현실을 비판하며 ‘분리와 통제’가 가득한 학교 질서 자체의 변화를 촉구했다. “모든 학생이 학교생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그를 만나 한국 공교육 현황에 대한 진단과 구체적인 타개책을 들어봤다.

◇섞여야 교육이다=“교수님께서는 특목고, 자사고 등의 영재교육을 비판하셨다”는 기자의 말에 이 교수는 “영재교육을 비판한 적이 없고, 특권교육을 비판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교육이란 본질적으로 섞이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특목고와 자사고로 표상되는 특권교육은 학생들 간의 분리를 촉진해 ‘섞임’의 교육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사회학자 번스타인이 제시한 개념을 차용해 이러한 교육 현실에 존재하는 강력한 ‘분리와 통제’의 코드를 짚어냈다. 우선 오늘날 학교에는 학생들을 특정한 기준에 따라 등급화하는 ‘분리’의 질서가 강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학생을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구분하는 것,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눠 수준별 이동 수업을 진행하는 것 등이 ‘분리’의 전형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현재의 교과과정 또한 ‘국어 따로, 수학 따로, 음악 따로’인 채 한 교과 내에서도 지식이 탐구로, 나아가 실천으로 이어지는 유기성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마찬가지로 이 교수는 경직된 틀 안에 의사소통 방식을 가두려는 ‘통제’의 질서 역시 교육현장에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교사 회의에서 의견 교환 없이 지시사항만 전달되는 분위기, 수업 시간에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방식, 정답의 개방성이 보장되지 않는 객관식·선다형 방식이 채택되는 평가 등이 모두 통제의 질서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같이 분리와 통제가 강력한 교육 구조는 서로 다른 집단들이 소통할 기회를 차단해 궁극적으로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설명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공부 못 하는 학생을, 비장애학생이 장애학생을, 도시 학생이 산골 학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수준별 이동 수업이나 특목고, 자사고로 비슷한 아이들끼리만 모아놓으면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기회가 없다”는 게 ‘섞임’의 교육이 시급한 까닭으로 제시됐다.

◇원래 학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이같이 분리와 통제가 지배하는 기존의 학교 질서를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 바로 혁신학교 운동이다. 2009년 경기도에서 처음 등장한 혁신학교는 교장과 교사들에게 학교 운영과 교과과정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교과과정의 다양화·특성화를 목표로 삼았다. 혁신학교 운동 초창기에 서울시교육청에서 직접 혁신학교 구성에 참여한 이 교수는 “혁신학교가 완전히 새로운 학교는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원래 학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혁신학교”라며 “소수의 엘리트를 위한 경쟁적 입시 교육의 형태를 띠던 기존의 교육을 ‘마땅한 학교의 모습’으로 바꾸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유형들이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관찰하고자 이 교수가 택한 방법은 혁신학교와 일반학교에 대한 비교 관찰이었다. 그는 각각 일반학교, 혁신학교 2년 차, 혁신학교 5년 차인 세 곳의 중학교에서 참여관찰 연구를 수행했다. 관찰 결과 교과과정 면에서 혁신학교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실시한 학교일수록 교과 내부, 교과와 학생, 교과와 교과, 교과와 사회의 분리가 적게 나타났다.

예컨대 혁신학교 5년 차에 접어든 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진행된 ‘위안부 할머니 수요 집회 참가’ 프로그램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위안부 문제의 역사를 알아보고 이를 학생들의 일상과 연결 짓는 한편, 실제로 위안부 집회에 참가해 사회적 실천을 하도록 구성돼있다. 교과 내 단계별 과정이 유기적이며, 교과가 학생 경험과 밀접히 관련돼있고, 교과 내용이 사회적 실천과 연관돼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 활동을 통해 수업 시간에 배우는 역사와 자신의 삶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역사 선생님이라는 꿈을 갖게 된 학생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학교 밖에서도 행복하려면=하지만 여전히 혁신학교 운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입시제도와 경쟁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일방적인 진도빼기 수업은 지식 암기 위주의 오지선다형 평가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평가 방식은 경쟁적인 대학 입시로 인해 빚어진다. 다시 그러한 입시 제도는 완벽히 서열화된 대학 문화, 나아가 똑같이 경쟁이 팽배한 사회 구조 자체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학생 개개인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수업과 평등한 문화가 학교에 정착되더라도 입시제도, 대학 문화, 나아가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는 행복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이 교수 역시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행복하다고 학교를 나가서까지 행복한 것은 아니다”며 학교 현장의 변화만으로는 교육 현실과 관련된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그는 거시적 제도 변화뿐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미시적 실천 역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 학교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문화를 어떻게 제도적, 구조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에 “감시하는 학교 구조가 지원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해법이 제시됐다. 이 교수는 “이미 교사 개인들의 역량은 충분히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현재 이 같은 적극적인 교과 재구성이 어려운 이유는 학교 제도가 이를 충분히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교사가 있으면 학교나 학부모 측에서 ‘입시 공부하기도 부족하다’고 질타하기 바쁘고, 수많은 행정 업무에 파묻혀 교사의 연구시간이 부족하다. 그는 교사를 지원하는 학교 제도의 보조가 뒤따른다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는 협력적인 교사 공동체가 정착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교육과정-수업-평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이형빈 저|맘에드림|

351쪽|1만 5천5백원

그럼에도 여전히 우려는 끊이지 않는다. 특별한 인센티브 없이도 ‘모든’ 교사들의 연구를 장려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입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초중등학교에 비해 본격적 입시가 시작되는 고등학교에서는 위와 같은 변화가 철저히 외면받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혁신학교와 같은 현장으로부터의 변화와 함께 수반돼야 할 거시적인 변화는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

실현 가능성을 묻는 질문들에 이 교수는 “연구하는 사람들은 현장의 변화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많이 하고, 또 교육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은 현장에서 느낀 것을 바탕으로 책을 많이 쓰셨으면 좋겠다”며 학교 안과 밖의 교류를 강조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곧 학교가 표상하는 커다란 사회를 바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이해가 조금 느리다는 이유로 소외되는 학생이 없는 학교를 향한 이 교수의 바람은 곧 사회를 바꿔나가는 일인 만큼 더 많은 고민과 끈기 있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사진: 장유진 기자 jinyoojang0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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