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떠오른 생각들로 무작정 채우는 창작공간
무심코 떠오른 생각들로 무작정 채우는 창작공간
  • 조수지 기자
  • 승인 2015.11.22 0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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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미술 프로젝트팀 ‘무심코 지나치는 무수한 것들을 위한 이야기’

오늘도 작업실에서 떠오르는 해를 퀭한 눈으로 바라보는 미대생 K씨. 하고 싶은 작업을 하겠다는 꿈을 꾸며 입시미술의 지옥을 뚫고 왔건만 웬걸, 무심코 떠오른 영감은 과제에 치여 금세 잊고 만다. 여기 이런 일상을 깨고 진정 하고 싶은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 직접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하는 작업을 하면 될 뿐 거창한 사명감이나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자유로운 미술 기획을 위해 모여든 아홉 명의 디자인학부 친구들의 이야기를 엿보았다.

 

‘장난’치기 위해 모인 미대생들

이들은 올해 2월 ‘종이벽 프로젝트’를 위해 처음 모였다. 커다란 종이로 된 벽을 세우면 그곳이 곧 전시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김성준 씨(디자인학부·14)는 세 친구를 불러 모았다. 이들은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종이로 만든 게릴라 전시장을 조립했다 해체해가며 텅 빈 캠퍼스를 전전했다. 푸른색 계열로 색상을 맞춘 타자기, 도자, 실크스크린, 엽서책 네 작품을 내놓았지만 밤늦게 열린 전시에 관객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일부러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이 희한한 전시에 대해 김성준 씨는 “아무도 없는 캠퍼스에서 우리끼리 즐거워하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방학이 끝날 즈음 이들은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이어가고자 아예 미술 프로젝트팀 ‘무심코 지나치는 무수한 것들을 위한 이야기’(무심코)를 꾸렸다. 프로젝트 이름에는 종이 전시장과 같이 무심코 지나칠만한 사소한 생각까지 실현하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같이 재밌는 것들을 하기 위해 사람을 모은다’는 두루뭉술한 내용의 모집공고를 붙여 참여자를 모았다. 이 문구에 이끌려 참여했다는 나원호 씨(디자인학부·15)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자체가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동아리도 학회도 아닌, 정체성이 모호한 무심코는 일단 ‘장난’을 치는 것으로 자신들의 콘셉트를 정했다. ‘장난 같은 아이디어를 모으고 사람들을 모으면 그럴싸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구호를 내건 이들은 팀원 중 한 명이라도 장난처럼 아이디어를 던지면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여럿이 붙어 애쓰겠다는 활동의 틀을 정했다.

 

맹랑한 상상을 현실로

올해 4월 예술관(49동)에서 열린 전시 ‘나에서 너까지’는 무심코 팀이 창작자이자 기획자로 활약한 ‘통 큰’ 미술 전시다. 임시 조명으로 밝힌 전시장 벽에는 작가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은 가로 세로 20cm 크기의 그림 100점이 두 줄로 나란히 걸렸다. 이 작품들은 무심코가 인맥을 총동원해 모은 미술 전공자 100명에게 한 점씩 기증받은 것으로, 철판을 용접해 만든 입체형 그림부터 발가락 사이에 펜을 끼워 그린 그림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뽐냈다. 김성준 씨는 “순수하게 100명이 모여 전시를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며 “똑같은 규격의 정사각형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채워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전시 막바지에는 기부금을 낸 관람객들이 제비를 뽑아 작품 한 점씩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고 수익금은 네팔 지진 피해자들에게 전달했다.

▲ 전시 '100'이 열린 갤러리엔 다양한 작가와 관객들이 찾아왔다. 관객들은 전시장에서 드로잉이나 사진을 비롯해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구경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구매할 수 있었다.

이어 지난 9월 무심코는 폐공장을 개조한 갤러리 ‘인디아트홀 공’에서 ‘나에서 너까지’와 닮은 듯 다른 전시 ‘100’을 열었다. 이번엔 작품을 무료로 기증 받는 대신 작가가 적당한 가격을 매겨 작품을 판매하도록 했다. 창작자에게 정당한 창작의 대가를 부여한다는 전시의 취지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로 전시장이 북적였다. 손범준 씨(수리과학부·14)는 각기 다른 색의 LED를 설치한 작은 상자 두 개를 붙인 작품 ‘양안 경쟁’을 출품했다. 각 상자에 뚫린 구멍을 통해 작품 안을 바라보면 두 눈으로 들어온 상이 뇌의 주의를 끌기 위해 경쟁하는 ‘양안 경쟁’ 현상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작품 활동을 해오던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뜻깊었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한 무심코는 매 학기 다양한 방식의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오로지 학부생들의 힘으로 전시를 기획하다 보니 100점이나 되는 작품을 받으러 분주하게 뛰어다니거나 대관료를 감당하지 못해 적자에 허덕이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시를 기획하고 자신의 생각을 실현해가는 것에 무심코의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서영 씨(디자인학부·14)는 “해내야 하는 과제에만 치여 사는 미대생들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작업을 스스로 찾아 하게 되는 것”이 무심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전시 공백기에는 딱지도 치고

무심코는 정기적으로 여는 전시 사이사이를 여러 작은 프로젝트로 채워나간다. ‘딱지치기 놀이’는 서너 명의 참가자가 벌이는 조촐한 딱지치기 대회다. 김완수 씨(디자인학부·14)는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려 즐겁게 노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는데 팀원들이 동의해 대회를 급조하게 됐다”고 밝혔다.

근래에는 마블링 작품만을 엮은 ‘마블링 책’을 만들고 있다. 마블링은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한 기법으로 매번 찍을 때마다 모양이 달라져 즉흥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전수빈 씨(디자인학부·15)는 “마블링을 200장이나 찍었는데 만들 수 있는 건 딱 책 한 권이었다”고 이야기했다.

▲ 무심코 팀이 엮은 '마블링 책'엔 별다른 부가 설명 없이

오로지 이지러진 물감 자국만 가득하다.

“작업 많이 안 할 거면 미대 왜 왔어!” 김성준 씨의 웃음 섞인 말은 무심코 떠오르는 생각까지 실제 작업으로 이어가려는 무심코 팀의 철학에 닿아 있다. 쏟아지는 과제 때문에 날밤을 새면서도 짬짬이 모여 사소한 아이디어까지 공유하는 무심코 팀원들. 달밤에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전시기획과 프로젝트 작업을 쉬지 않는 이들은 앞으로도 더 많은 친구들과 창작의 판을 키워나갈 상상을 품고 있다.

 

사진제공: 무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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