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왜 안 가니?"라는 질문이 사라지는 날까지
"대학 왜 안 가니?"라는 질문이 사라지는 날까지
  • 대학신문
  • 승인 2015.11.2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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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사회를 거부하는 '투명가방끈 모임'

지난 12일(목) 63만명의 수험생이 12년간의 공부에 마침표를 찍으러 수험장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열아홉살 학생들이 수능을 치르는 동안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청년들이 있다. 같은 날 시청역 파이낸셜센터 앞에서 수능과 대학을 거부하는 선언을 한 ‘대학 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투명가방끈)이다.

이날 선언은 투명가방끈이 2011년 집단적으로 대학 거부선언을 한 이래 다섯 번째 움직임이었다. 투명가방끈의 호야 씨(23)는 “매년 대학 거부하는 1인 시위자가 있었는데 반짝 기사화되고 끝났다”며 “조금 더 본격적인 운동 흐름을 만들어 이슈화시키자는 취지에서 사람을 모았다”고 투명가방끈이 결성된 배경을 설명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것을 청년의 온전한 선택지로 만들기 위해 대학 거부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대학 설명회를 패러디한 대학 거부 설명회를 열고 회원의 사연을 담은 책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를 출판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대학신문』은 이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어보고자 입시에 실패한 뒤 대학 거부를 선택한 호야 씨와 2011년 대학 거부운동에 참여하고자 서울대를 자퇴해 이목을 끈 공현 씨(23), 개인적 사정상 대학에 진학했으나 대학 거부운동의 취지에 찬성하는 쥬리 씨(21)를 만났다.

 

▲ 투명가방끈의 쥬리 씨와 호야 씨가 대학 거부와 학벌사회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노동과 교육 현장에서 드러나는 학벌사회의 단면

학벌사회의 민낯은 한국의 노동현장에서 나타난다. 학벌을 잣대로 사람을 재단하는 일이 다반사기 때문이다. 학벌사회는 대학을 서열화하며, 출신 대학이라는 꼬리표는 취업시장, 일상생활 등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가 된다. 이때 낮은 서열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은 학력과 학벌을 이유로 차별받는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의 박고형준 상임활동가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되는 ‘학력이나 출신 학교에 기인한 차별을 받았다’는 진정이 매년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력에 따른 고용차별도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교육문화관광체육위원회 소속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전문대교육협의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문대교협 사무처 직원 26명 중 순수 전문대 졸업자는 한 명도 없었다. 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당해 전체 공공기관 303곳 가운데 237곳이 고졸학력을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공현 씨는 “자격증 수료를 위해 대졸학력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회원 중에 실제로 불이익을 당한 분이 있어서 문제제기를 하는 활동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성이나 장애인 등 다른 분야에 비해 덜 이슈화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학벌에 의한 차별을 나타내는 통계조사부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고형준 상임활동가는 “(국가인권위원회에 학력차별의 진정을 요구하는) 접수는 늘어났는데 판단이나 조치를 취하는 것을 보기 어렵다”며 “학력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벌사회의 흔적은 청소년의 교육현장에까지 스며들어 있다. 투명가방끈은 대학입시 전까지의 교육과정이 청소년을 억압하는 구조에 주목한다. 중고등학교의 교육내용은 획일화됐으며 교과과정은 대학진학이라는 단일 목표를 향해 있다. 호야 씨는 “입시를 거부할 때 억압과 걱정, 잔소리를 마주하며 일탈이나 비행을 하는 청소년으로 규정된다”며 “대학을 거부할 때의 어려움은 대학에 안 가는 것이 온전한 선택지로 보장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획일화된 교육과정 내에서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교육을 받는 학생의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이런 교육구조 하에서 입시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또래 친구와 경쟁해야 하고 하위권과 낙오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쥬리 씨는 올해 대학 거부를 선언한 한 학생을 인용해 입시 과정을 ‘치킨게임’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는 “청소년기에 대학 입시에 전념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고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실패자로 여기는 사회”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학벌사회를 거부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이들

투명가방끈은 교육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지역편중 등 여러 분야에 얽힌 사회문제를 연쇄적으로 풀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고등학생 대다수가 대학입시를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자 하는 현상은 지역편중의 시발점이다. 대학교육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보니 일자리도 서울에 몰리는 현상이 빚어진다. 호야 씨는 “대학의 서열화와 지역 불균형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대학을 평준화해서 모든 지역에 흩어놓으면 수도권에 인프라가 집중된 불균형 현상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미래 교육시스템의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투명가방끈은 이런 주장에 회의적이다. 2011년부터 집회와 캠페인을 열어도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명가방끈이 교육현장을 개선할 대안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매년 11월마다 대학 거부자에게 돌아오는 반복되는 질문에 씁쓸함을 표했다. 호야 씨는 “사회는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지만 대학 거부자에게는 왜 거부했느냐는 질문을 한다”며 “학벌이 없으니까 인생의 가치와 노력을 구구절절 증명해야 하고 본의 아니게 삶을 전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맘때 몰리는)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문제를 가시화하는 방법이니 어쩔 수 없지만 사회가 대안만 궁금해하고 방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고형준 상임활동가 역시 “우선 서열화된 대학체제를 개편하고 가방끈이 짧다고 편견을 갖는 인식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벌사회를 개혁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대학 진학·졸업을 거부한 이들은 살아가면서 개인적인 대안을 만들어가야만 하는 과제에 당면했다. 활동비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이들의 생활은 대학을 거부했음에도 극적으로 성공하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대학 거부자가 홀로 일어서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공현 씨는 “인권교육 단체에서 일주일에 2, 3일 일해 월 60만원을 벌고 여타 활동에서 오는 원고료와 부수입으로 생활한다”며 “활동가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면서 월세를 내기도 하고 정당 당직자나 환경단체 상근자로, 공장에 취직해서 일하는 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어려움을 덜기 위해 투명가방끈의 일차적인 활동 목표는 대학을 거부한 청년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의 틀을 다져나가는 것이다. 호야 씨는 “차별이 있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가지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다”며 “대학 진학을 거부한 이들의 막막한 생활 중에 (투명가방끈이) 비빌 언덕이 됐으면 좋겠다”고 투명가방끈의 방향을 제시했다.

떳떳하지 않은 경쟁적 입시체제에서 떳떳하기 위해 대학을 거부한 이들은 성공신화를 보여주기보다 작은 움직임들을 펼쳐 나간다. 이로써 이들은 대학에 가지 않는 이유를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향해 첫발을 내디디고 있다.

 

 

사진: 김여경 기자 kimyk37@snu.kr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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