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연유에서인지 공휴일이 하루도 없어 모두를 좌절하게 만드는 11월이다. 잠시 생업을 멈추면서까지 기념할 만한 날을 갖지 못한 까닭일까. 일년 열두달 중에서도 자못 어중간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11월은, 그러나 마치 그걸 보상받기라도 하듯, 꺼지지 않는 불꽃 하나를 상징으로 지니게 됐다. 45년 전, 이 춥고 어두운 계절에 자기 몸을 불사른 이. 언제고 그의 이름이 호명될 때면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사가 뒤따르는 평화시장의 재단사. 11월이면 우리는 그를 생각한다.

그이를 생각함은 대체로 그의 생애를 완결시킨 선택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수월하게 답할 수는 없는 물음, 그러니까 ‘그는 어째서 스스로 불꽃이 되려는 선택을 한 것일까’에 대해 고민하는 일. 여기에 절망 또는 절박함과 같은 상투어를 섣부른 해답으로 제출하지 말기로 하자. 그는 죽음을 ‘선택’한 것이지 ‘자살’의 패배주의적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니므로. 분명하게 말하건대 그에게는 사는 것보다 더 긴요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선택을 과도하게 미화하는 일, 종종 독재자를 신화화 또는 우상화하곤 하는 이들이 저지르는 것과 같은 우(愚) 또한 범하지 말기로 하자. 다시 말하지만 그에게는 그저 그렇게 참고 살아가는 것보다 더 절실한 일이 있었고, 그는 마침내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화염에 휩싸인 채 그는 거듭 ‘말’했다. 그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 마치 ‘말’에 대한 열망이 번져 스스로 불꽃이 돼버리기라도 한 듯, 그것은 실로 붉고 서러웠다. 그러나 그의 ‘말’은 노동청과 사용자와 언론에 의해 묵살되거나 배반당했고, 그러므로 그것은 끝내 언표되지 못했다. 오래 전 바슐라르는 말하려는 의지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의지라고 말한 적 있다. 그 원초적인 의지는 평화시장의 청년 재단사에게로 와서 불꽃이 됐다. 언표되지 못한 ‘말’은 그에게로 와 붉고 서러운 것이 돼 타올랐다. 그러니 어쩌면 그이를 생각함은 그가 삶 대신 선택한 이 ‘말’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근래에 서울시장이 몇 차례 바뀌어감에 따라 평화시장 앞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되고 지극히 21세기적인 건축물이 동대문 곁에 들어서는 일련의 과정을 목도했다. 그렇게 그이가 서있던 자리의 풍경은 시절을 좇아 거듭 바뀌어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이의 ‘말’은 여전히 그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45년 하고도 하루가 지난 11월의 어느 토요일, 사람들은 ‘말’하기 위해 광장에 모여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자취를 감췄고, 그들과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공권력 사이를 어지럽게 할퀸 폭력만 남았다. ‘말’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그의 선택이 어떤 무게와 고통을 지탱하는 것이었는지 새삼 다시 깨닫는다.

이 계절의 초입, 덕수궁 석조전을 막 나서던 찰나였다. 가지런히 정돈된 서울의 스카이라인 한 구석에 무언가 붉고 서러운 것이 나부끼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사나간 건물 옥상에 어느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면당한 ‘말’이 위태롭게 걸려있었다. 그것으로부터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실로 붉고 서럽게 타오르고 있었다.

배하은 간사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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