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의 안방극장을 터치하다
내 손안의 안방극장을 터치하다
  • 고유리 기자
  • 승인 2016.03.06 0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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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짧게 즐기는 웹드라마의 등장과 전망

만년 연습생 여주인공 경주는 두고 온 여권을 찾아 헤어진 남자친구의 ‘썸녀’ 집에 들어간다. 얼떨결에 들어간 화장실에서 목욕 중인 한 여자를 보고 깜짝 놀라는 것도 잠시, 둘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윤성호 감독의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은 여성 동성애를 다루는 ‘백합물’ 장르 가운데서도 신선한 전개로 주목을 받았다. 기존 방송에서 잘 다루지 않던 새로운 주제에 인터넷 매체의 강점이 더해진 웹드라마는 웹 콘텐츠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인디 드라마’로 시작해 영역을 넓혀 가다

과거 인터넷에 영상물은 넘쳐났지만 전문 감독이 비교적 체계적인 제작 환경에서 회차를 나눠 찍는 드라마는 없었다. 이 같은 드라마가 생겨난 것은 기존 매체로는 자신이 만든 영상작품이 대중에게 전달되기 어렵다고 느낀 창작자들이 인터넷을 창구로 택했기 때문이다. 웹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려는 감독들이 늘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독립영화를 찍던 윤성호 감독은 2010년 가볍고 일상적인 코미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웹에 맞는 짧은 영상으로 공개해 열풍을 일으켰다. 윤 감독은 “인간 관계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코미디 영화를 주로 연출하는데 극장에서는 사람들이 소소한 이야기를 잘 찾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며 자신이 제작한 영상을 웹으로 공개한 이유를 밝혔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단순히 ‘인터넷이 편하니까 올린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웹과 모바일 환경에 걸맞는 형식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웹드라마의 시초로 꼽힌다.

이후 대규모 자본을 가진 방송사와 연예기획사가 새로운 문화콘텐츠로서 웹드라마의 가능성을 보고 웹드라마 제작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2월 MBC ‘퐁당퐁당 LOVE’는 고등학생이 조선시대로 돌아가 왕과 연애한다는 줄거리로 인기를 얻어 누적 재생수 천만 건을 넘어섰다. 대형 연예기획사는 소속 신인배우나 신인가수가 연기에 도전하고 대중에게 다가가는 길로 비교적 부담이 적은 웹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YG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한 뮤직 웹드라마 ‘우리 헤어졌어요’에서는 소속 가수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면서도 삽입곡까지 직접 작곡했다.

한편 대기업들은 마케팅의 한 수단으로서 웹드라마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회차별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웹드라마는 지속적으로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웹에서 쉽게 공유하고 퍼뜨릴 수 있어 바이럴 마케팅*에도 적합하다. 가령 삼성은 ‘최고의 미래’ ‘도전에 반하다’ 등의 작품에서 아이돌 스타를 캐스팅해 대중의 주목을 끌면서도 기업의 실제 서비스나 사업을 드라마 내용 중간중간에 삽입해 기업을 홍보했다.

독립영화 제작사에서부터 콘텐츠 제작사, 일반 대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면서 웹드라마의 영역은 넓어지고 있다. 인디 감성이 묻어나는 코미디부터 아이돌이 등장하는 하이틴 로맨스, 대기업의 사업 내용을 틈틈이 보여주는 청춘 드라마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웹드라마를 채웠다. 출연자 역시 인지도가 낮은 배우들이나 연기가 미숙한 아마추어, 모두가 알 만한 배우들까지 다양해졌다. 제공 플랫폼의 종류도 늘어나 네이버, 다음 등 대형 포털이 제공하는 동영상 플랫폼뿐만 아니라 ‘비퍼니스튜디오’ 등 웹드라마 전용 플랫폼도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웹드라마는 많은 생산자를 끌어들이면서 생겨난 지 얼마 안 된 콘텐츠임에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가장 큰 플랫폼인 네이버 티비캐스트에서 2014년 21편이 공개됐고, 다음 해 60편이 공개돼 양적 성장을 보여줬다. 인기도 늘어 누적 재생수가 약 7배 증가했다. ‘후유증’ ‘연애세포’ ‘인형의 집’ 등은 일본, 중국, 미국 등 해외에 판권을 수출하기도 했다. 기린제작사 박관수 대표는 “웹드라마는 초기 단계지만 웹툰만큼 발전 가능성이 있는 콘텐츠”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5분만에 펼쳐진 신세계가 마음을 사로잡다

웹드라마가 떠오른 배경에는 웹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10대~30대 층의 영상 소비 성향이 자리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대는 하루 평균 3시간 44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그 중 모바일 동영상 시청 시간은 4분의 1이 넘는다. 하지만 짤막한 SNS 글이나 1〜2분짜리 동영상 등 ‘스낵 컬쳐’를 즐기는 모바일 유저들은 영상이 길어지거나 지루해지면 금방 영상을 넘기거나 끈다. ‘연애세포’ ‘우리 헤어졌어요’를 연출한 김용완 감독은 “내용이 끝날 때까지 극장에 앉아서 보는 영화 감상 환경과 달리 모바일 환경은 시청자가 언제든 끌 수 있어 소극적인 매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소비 성향에 맞춤형으로 영상을 제작했기 때문에 웹드라마는 유행할 수 있었다. 홍석경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짧은 시간 동안만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웹드라마는 모바일에 최적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부분의 웹드라마는 한 회의 러닝타임이 10분을 넘기지 않으며, 회차도 10회 미만으로 잠깐씩 보기에 부담이 없다. 짧고 빠른 호흡에 걸맞는 위트 있는 연출도 돋보인다. ‘연애세포’ 김용완 감독은 “시청자를 잡아끌 무언가를 계속 주기 위해 자막이나 특수효과도 사용했다”고 말했다. 아이돌 가수 ‘서린’을 좋아하는 주인공이 체념하며 “서린이 뭐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냐?”며 투덜거리면 서린의 화보가 쿵 하고 떨어지는 식이다. 시청자 박승혜 씨(22)는 “전개가 빠르고 연출과 스토리가 귀여워서 좋았다”고 감상평을 전했다.

기성 방송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재가 적어 시도할 수 있는 장르의 폭이 넓다는 것도 웹드라마의 인기 요인이다. 시청 연령 등 기본적인 심의는 있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가 없기 때문에 웹드라마는 기성 방송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대세는 백합’은 여성 동성애를 웹드라마 최초로 다뤘고, 몇몇 드라마는 얼마 전까지 비주류 장르였던 판타지, SF 드라마에 과감히 도전했다. 추락사고를 겪은 고등학생이 곧 죽을 사람과 누군가를 죽일 사람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하이틴 판타지 스릴러 ‘후유증’은 한국 콘텐츠에 없는 신선한 장르를 시도해 호평을 받았다. 시청자 이가희 씨(22)는 “웹드라마는 스토리나 대사의 제약이 적고 더 신선하고 독특한 소재가 많은 것 같다”고 감상을 밝히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연예기획사가 제작에까지 나서면서 소속 아이돌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웹드라마는 아이돌 팬덤까지 시청층으로 포괄할 수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우리 옆집에 엑소가 산다’는 여주인공의 옆집에 아이돌그룹 엑소가 이사 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팬심을 저격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공개 한 달만에 웹드라마 최초로 재생 수 천만 건을 돌파한 ‘우리 옆집에 엑소가 산다’는 중국에서도 동시 공개됐다.

 

웹드라마의 미래엔 버퍼링이 없을까?

여러 인터넷 플랫폼에 자리잡고 있는 만큼 웹드라마는 계속해서 제작·방영될 가능성이 높지만, 상업성에서 오는 한계도 있다. 웹드라마 제작에 들어가는 자본은 주로 외부에서 오기 때문에 웹드라마는 여느 문화콘텐츠보다 상업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PPL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파격적인 전개가 대중의 흥미를 끄는 일도 있지만, 문화콘텐츠로서 인정받기 힘들 가능성도 있다. 김용완 감독은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자본의 힘을 얻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상업적인 성격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웹드라마가 여전히 바이럴 마케팅 광고와 드라마의 중간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고 광고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무료로 공개되는 한국 웹드라마 특성상 광고와 홍보를 통해 얻는 제작비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일부 제작사들은 이를 헤쳐나가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당장 마땅한 수익 모델은 없는 상태다. ‘출출한 여자’를 제작한 기린제작사는 드라마를 원천 콘텐츠로 삼아 속편과 책을 출판했으며 웹툰도 계획해 차기작을 위한 수익을 내고자 한다. 박관수 대표는 “웹드라마는 현재 손익분기점은 못 넘겼지만 사람이 바글바글한 시장에 자리잡은 가게와 같다”고 설명하면서도 “사용자가 많아지면 수익모델이 점차 확립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과 5〜6년만에 웹드라마는 많은 제작주체들과 함께 젊은 층의 영상 소비에 발맞춰 신선함을 더해가고 있다. 여전히 상업성, 한정된 수익모델 등의 한계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아직 사로잡지 못한 소비층도 많은 웹드라마. 이 차세대 웹 콘텐츠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지켜보자.

 

*바이럴 마케팅: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인터넷 매체를 통해 자발적으로 퍼져나가도록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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