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람입니다” UN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50돌 맞아
“우리도 사람입니다” UN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50돌 맞아
  • 대학신문
  • 승인 2016.03.27 0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스케치]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자회견

지난달 25일,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날라끄 씨(35)는 비자 연장을 위해 출입국 관리소를 찾았다가 강제 구금됐다. 2009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그는 같은 지역에서 대마를 닭죽에 넣어 먹어 구속된 스리랑카인과 국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소환됐다. 마약류 검사 결과 이상 반응이 나오진 않았지만 검찰은 그에게 무죄가 아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7년이 지난 올해 기소유예 기록이 문제가 돼 강제 추방의 위기에 처했던 그는 구금된 지 21일이 지나서야 항의 끝에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이번 일로 스리랑카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사회의 관심 밖에 놓여있는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은 심각한 상황이다.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결혼이주여성, 최근 화제가 된 난민 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이에 21일(월) 광화문 광장 앞에서 UN이 지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주노조), 공익법센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의 사회단체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회를 맡은 이주노조 박진우 사무차장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이주민들이 어떠한 인종차별을 겪고 있는지 생생히 증언 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밝혔다.

▲ 지난 21일(월) 광화문 광장 앞에서 열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자회견에서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이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제일 먼저 고용허가제가 오히려 노동자들의 인권에 역행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고용허가제는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이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가하는 제도로 2004년부터 시행됐다. (『대학신문』 2015년 3월 23일 자) 이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장과 계약할 경우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근무 여건이 열악하거나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도 이직할 수 없다.

고용허가제 시행 전부터 이주노동자 인권 관련 단체들이 줄곧 이 부분을 지적해왔지만 현재까지 개선된 것은 없었다. 오히려 2014년 외국인 노동자가 출국 후에 퇴직금을 받도록 법이 개정돼 퇴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등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법은 근로 조건을 더욱 악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우리는 노동자로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꼬집었다.

이주아동과 결혼이주여성의 처우 개선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주노동희망센터 안은주 실장은 “현재 한국에선 통계로 잡히지 않는 수치까지 합쳐서 18세 미만 미등록 아동이 약 2만명”이라며 “이들은 모든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은 채 살아간다”고 발언했다. 1991년 정부는 UN의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으나 이주아동의 현실은 개선되지 않았다. 2014년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이 발의됐으나 논의에 진전이 이뤄지지 않아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해서도 제도적 보호는 요원한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결혼이주여성은 2년의 체류 비자를 발급받은 뒤 귀화 신청을 한다. 이때 남편의 인터뷰가 귀화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피해를 당해도 제대로 항의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레티미아투(한가은) 인권팀장은 “결혼이주여성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참고 살아야만 하고 이를 벗어나면 다문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민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매년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열리는 기자회견이지만 특히 올해는 난민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난민 신청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난민법이 제정됐지만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2014년 기준 5.3%로 OECD 가입국 중 26위에 머물렀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신청자들은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는데, 송환되기 전까진 외국인 보호소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외국인 보호소의 시설은 창문도 없이 쇠창살로 막혀있고 한 방에 15명이 생활해야 하는 등 매우 열악한 형편이다. 보호소에 있는 외국인은 외부로 나갈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해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전체 환자에 대해 외래진료서비스를 받은 환자의 비율은 지난해 기준 1.1%에 불과했다. 공익법센터 ̒어필̓ 김세진 변호사는 “정부는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른 권리를 난민이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달 초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테러방지법과, 이와 함께 통과됐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노동자연대 임준형 활동가는 “지난해 파리 테러 참사 이후 정부가 내놓은 특별 대책이 미등록 이주 노동자 밀집지역 조사 강화였다”며 특별 대책의 사례로 볼 때 테러방지법의 주 표적이 이주노동자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고 우려했다.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과도하게 남용될 소지에 대한 비판도 이뤄졌다.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은 강제 추방 요건이 확대되고 처벌 기준이 강화되는 내용을 담아 발의된 시점부터 관련 단체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이번 날라끄 씨의 일을 사례로 들며 “지금도 이렇게 자의적으로 쉽게 강제 추방의 위협을 당하는데, 앞으로 개악안이 이주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인종차별적인 법과 제도를 바꿀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문 낭독이 있었다. 이들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인종주의에 반대하고 난민을 환영하는 행동이 전개됐다”며 “우리는 그러한 국제적 흐름에 함께 연대하면서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행동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은 플랜카드에 그려진 ‘STOP RACISM’에 손도장을 찍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됐다.

 

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snu.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