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16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참혹한 사건 혹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부터 남들에겐 별거 아닌 일상의 한 장면까지, 독립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현장을 카메라의 눈을 통해 담는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면 감독이 될 수 있는 이 장르는 주제부터 표현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한국의 감독들 역시 30여 년 동안 자신의 일상을 더욱 깊게 파고들거나 사회의 변방 더 낮은 곳까지 관심을 확장해왔다.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55편을 감상하면서 이러한 흐름을 짚을 수 있는 축제가 있다. ‘실험, 진보, 대화’의 정신을 표방하며 지난달 24일부터 31일까지 홍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열렸던 ‘인디다큐페스티발’이다. 몇 걸음만 가면 닿는 두 개의 상영관에서는 일주일 내내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는 언론의 역할을 자처해 현장을 기록하며 사회적 의제를 제시해 왔다. 주현숙 집행위원은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수행하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영화제 역시 미디어를 통한 사회참여를 의미하는 ‘미디어 액티비즘’(activism)을 화두로 던져 관객들은 하나의 사회운동이 된 다큐멘터리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경순 감독)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공권력에 의한 의문사를 조사했던 2000년 당시 상황을 파헤친다. 영화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이 드러낸 한계와 위원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적나라한 현장을 인터뷰 등의 정직한 방식을 통해 지적한다.

▲ 다양한 사회,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관객들이 인디다큐페스티발로 모여들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특히 많은 관객으로 붐볐던 「416프로젝트 “망각과 기억”」(박종필 감독 외 6명)은 2014년 11월부터 주류 매체의 망각에 대항해 비극을 기억하고자 7명의 감독이 힘을 모아 완성한 작품이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된 이 영화의 상영관은 자신의 후원으로 만든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로 가득 찼다. 일곱 개의 프로젝트로 구성된 영화 중 첫 번째 프로젝트「도둑」은 지난해 12월에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현장을 폭로한다. 위증이 난무했던 청문회로 인해 사람들이 진실을 알 권리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한 감독은 화면을 흑백으로 처리해 진실이 퇴색됐음을 표현했다. 세 번째 프로젝트 「자국」에선 유가족이 아이들과 살아가던 기억을 회상한다. 어렸을 적 오리를 키우겠다고 떼쓴 기억, 사춘기 아이와 싸운 기억 등 주류 미디어가 담아내기 어려운 작은 조각들이 관객들에게 덤덤하게 전해진다.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된 ‘씨네토크’에서 한 관객은 “우리가 잊지 않고 자각할 수 있도록 채찍 같은 역할을 해주는 영화”라며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번 페스티발에서는 묵직한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담은 ‘사적 다큐멘터리’도 다수 상영됐다. 프로 감독부터 고3 학생까지 경력도 나이도 다양한 제작자들이 자신만의 시점으로 일상을 바라본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누구나 만든다’는 독립 다큐멘터리의 의미가 살아난 것이다. 「봉준호를 찾아서」(정하림 감독)에선 존경하는 인물 1순위로 봉준호를 꼽은 세 명의 고3이 그를 찾아 나선다. 페이스북, 메일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봉 감독 주변 사람들이라도 찔러보는 그들의 모습에서 패기 넘치는 ‘고딩’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영화과 대학생인 박윤진 감독은 실제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결심한 후 그 과정을 작품 「퍼펙트 마라톤」에 담았다. 감독은 서로에 대한 심경을 고백하는 중대한 순간에도 카메라를 들이대며 기어코 우는 모습을 담고야 만다.

기존의 관습을 넘어 실험적인 기법과 연출을 시도한 작품들도 많아 축제에 다양성을 더했다. 순수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인 차재민 감독은 색다른 연출로 그만의 다큐멘터리 세계를 보여줬다. 「독학자」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법의학을 독학한 허영춘 씨의 목소리를 담은 그의 작품이다. 이때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허 씨의 모습이나 사건 현장이 아닌 현미경처럼 확대한 채 화면을 천천히 지나가는 법의학 자료와 손글씨뿐이다. 「히스테릭스」에선 원 모양의 트랙을 맴도는 카메라가 혈흔처럼 보이는 물감 자국들을 비추는 방식으로 감독 자신의 히스테릭한 감정을 표현한다.

올해로 16돌을 맞은 이 축제엔 어김없이 많은 독립 다큐멘터리 팬들이 영화를 감상하고 즐기기 위해 모여들었다. 다양한 독립 다큐멘터리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축제의 장이 돼준 인디다큐페스티발. 독립 다큐멘터리가 자처하는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이 영화제는 이번에도 작품들의 갖가지 색깔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막을 내렸다.

 

사진: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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