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불복종, 그 저항의 흔적을 따라
시민불복종, 그 저항의 흔적을 따라
  • 최예린 기자
  • 승인 2016.04.0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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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집회로 시끄러운 한 해였다. 세월호 1주기 추모 집회부터 몇 차례에 걸친 민중총궐기까지 대규모 집회가 연달아 일어나면서 ‘집회’는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세월호 추모 집회에는 6만명, 민중총궐기에는 10만명까지 시민이 모이면서 언론 매체의 보도부터 SNS상 대중의 목소리까지, 집회에 대한 말이 무성했다.

하지만 그 많은 말들 뒤에 남겨진 것은 초라하기만 했다. ‘불법 폭력집회’와 ‘경찰 과잉진압’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대중의 관심은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쏜 물대포와 캡사이신에, 또 시위대가 흔들고 지나간 경찰 버스에 머물 뿐이었다. 궁극적으로 집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고, 법과 대중이 집회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은 없었다. 집회 참여자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 그들이 무엇을 외쳤는지, 무엇을 바꾸길 원했는지는 기억되지 않았다.

집회에 대한 말이 무성한 한 해였음에도 그 본질과 방향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이번 기획에서는 그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시민불복종 정신을 살핀다. 제도화된 국가 내에서 시민이 국가에 저항하는 방법의 단초를 제공한 시민불복종 정신은 지난해 벌어진 집회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안티고네부터 현대의 발리바르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치열하게 펼쳐진 시민불복종 논쟁을 짚고, 이를 다시 우리 사회에 비춰봄으로써 우리는 국가를 향해 무엇을 어떻게 외칠 것인지 고민해 본다.

 

소로, 우리는 국민이기 전에 인간이다

테베의 왕이 된 크레온은 자신의 반대편에 서서 싸웠던 폴뤼네이케스가 죽자, 그를 적으로 선언하고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게 했다.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은 짐승의 밥이 되도록 방치됐고, 테베의 시민이라면 그 누구도 그에게 무덤을 마련해주거나 그를 애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누이 안티고네는 사랑하는 오라비의 시신을 도저히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어 남몰래 그의 장례를 치러줬다. 이 때문에 크레온 앞에 끌려가 죄를 추궁당한 안티고네는 “신의 법은 인간이 정한 법에 우선한다”며 오라비의 장례를 치러준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항변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주인공 안티고네는 가장 오래된 시민불복종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국가의 법이 어긋나는 상황에서 국가에 불복하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했다. 체제가 정한 법과 질서를 정면으로 위반함으로써 그것의 부정의에 저항한 것이다.

이러한 불복종 정신은 결국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의 문제기도 하다. 개인은 국가가 부과하는 의무, 제시하는 질서를 어느 정도까지 따라야 하는가? 만일 그 질서와 의무가 개인의 신념과 도덕에 어긋나는 것일지라도 따라야 하는가? 안티고네는 따르지 않기를 택했고, 안티고네 이후에도 이러한 불복종 정신은 역사 속에 꾸준히 그 흔적을 남겼다. 아테네 법정의 결정에 불복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사형을 받아들인 소크라테스, 시민에게는 시민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는 국가에 저항할 권리가 있음을 지적한 존 로크 등 많은 사상가에게서 불복종 정신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국가에 대한 개인의 불복종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나타난 것을 두고 유레카 아카데미 박홍순 소장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란 인문, 사회과학 전반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며, 시민불복종 정신 역시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오늘날 시민불복종은 민주적인 법치국가에서 부정의한 법과 정책에 대한 저항행위를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통용된다. 오늘날 흔히 이해되는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개념을 정립한 사람은 19세기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다. 『월든』으로 잘 알려진 그는 매사추세츠 주 정부가 고수하는 노예 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세금 납부를 거부했다. 지속적인 납세 거부로 인해 소로는 하룻밤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는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개인과 국가의 관계’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고, 이를 정리한 것이 에세이 「시민불복종」이다.

국가에 대한 개인의 불복을 말한다는 점에서 소로의 시민불복종은 로크가 주장한 저항권, 또 그로부터 비롯된 혁명적 불복종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둘 사이에는 체제를 대하는 태도에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혁명적 불복종은 국민 주권의 원칙을 부인하고 군사력과 같은 강제적인 수단을 국민에게 사용하는, 그 자체로 부정의한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다. 프랑스 혁명처럼 체제 자체를 전복, 변화시킨 경우가 이에 속한다. 소로가 살던 19세기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같은 저항권에 동의했다. 혁명을 일으킬 권리가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했다. 다만 당시 시민들은 미국 정부가 그 자체로 부정의한 체제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에 ‘지금은 혁명을 일으킬 때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소로는 혁명과 같이 적극적 수단을 동원해 체제를 전복하는 대신, 위법 행위를 통해 체제의 부분적인 부정의에 항의하는 ‘시민불복종’을 제시했다.

그 불복종의 근거로, 소로는 개인의 양심과 도덕성을 내세웠다. 인간은 법 이전에 정의를 존중해야 하며, 통치를 받는 어느 한 나라의 국민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한 그는 결국 국가의 법에 선행하는 개인 양심과 정의가 있다고 본 것이다. 김선욱 교수(숭실대 철학과)는 “개인의 양심과 권리를 매우 강조한 소로의 사상은, 그 이전까지의 집단적인 사고방식과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소로는 법에 순응하며 때때로 한 표를 행사할 때 빼고는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는 시민들을 조롱하며 “단 한 사람의 시민이라도 부당하게 투옥하는 정부 하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있어야 할 장소 또한 감옥”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개개인이 부당한 법에 대한 위법행위를 통해 국가라는 기계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마찰을 만들어갈 때야 비로소 부정의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로의 주장이 실제로는 당시 미국의 노예제나 멕시코 전쟁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생전에 그는 자연에 대한 글을 쓴 작가로 아주 조금의 명성만 누렸을 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그가 살던 콩코드의 이웃들도 그를 질서정연한 삶을 어지럽히는 사람쯤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소로의 시민불복종 정신이 비로소 널리 알려진 것은 50년 후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을 통해서였다. 이후 1950년대 미국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필두로 흑인 민권 운동이 전개되면서부터 시민불복종은 미국에서 일상적인 단어가 됐고, 정치철학 논쟁의 단골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롤스, 시민불복종을 체계화하다

소로가 제공한 시민불복종의 단초는 1970년대에 이르러 존 롤스에 의해 더욱 정교한 요건들로 체계화됐다. 시민의 위법 행위가 어떤 경우에 ‘시민불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오늘날 시민불복종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롤스에서 출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롤스는 그의 명저 『정의론』을 통해 시민불복종을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혁을 가져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긴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로 규정한다.

그는 논의를 펼치기 위한 장으로 ‘거의 정의로운 국가’라는 상태를 상정한다. 이는 민주적, 법치적이며 대체로 정의롭지만 특정한 법률이나 정부 시책은 부정의한 상태의 국가를 뜻하는데, 롤스는 20세기 미국 사회를 염두에 두고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다. 오현철 교수(전북대 일반사회교육과)는 “롤스는 정치·사회체제 내부에서 그 근간을 해치지 않는 범위의 저항만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롤스가 시민불복종을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국가 내에서의 저항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거의 정의로운 국가’에는 국가의 부정의에 항의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있고, 시민은 우선 합법적인 통로를 통해 항의를 표시해야 한다고 롤스는 강조한다. 그러한 노력에도 항의가 수렴되지 않을 경우에 한해 시민불복종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시민불복종 정신에 대해김선욱 교수는 “시민과 국가 사이에 의견의 충돌이 발생할 때, 국회와 같은 합법적 통로를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하지만 제도가 시민의 의견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상황을 바꿔가려는 노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롤스가 말하는 시민불복종 행위는 해당 법률이나 여타 법률에 대한 의도적, 공개적, 비폭력적인 위반을 뜻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위반하는 법률이 저항하는 법률 자체일 수도 있고, 그것과는 무관한 다른 법률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롤스의 관점에서는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요구하는 시민이 국가보안법 자체를 위반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그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도로교통법 등의 다른 법을 위반함으로써 저항 의사를 표할 수 있다.

또 롤스의 시민불복종은 소로의 논의보다 공적인 성격을 띤다. 소로가 개인적인 양심이나 도덕성에서 시민불복종의 근거를 찾은 것과 달리, 롤스는 공동체 내의 공유된 정의관에서 그 근거를 찾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거의 정의로운 민주 체제에서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공의 정의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롤스의 입장에서 시민불복종 행위는 공개적으로 이뤄지며 다수의 정의감에 호소하는 청원의 형식을 취해야 한다. 이 때문에 롤스는 시민불복종과 양심적 거부 역시 엄밀하게 구분했다. 양심적 거부는 개인의 신념에 따라 국가의 부당한 법을 따르지 않는 선에서 끝날 뿐이며 공동체의 신념에 호소하지 않기 때문에 시민불복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렌트, 시민들이 연대할 때 비로소 시민불복종은 완성된다

롤스와 유사한 맥락에서 아렌트는 개인의 양심과 도덕을 근거로 이뤄지는 시민불복종 행위를 비판한다. 아렌트는 그의 저서 『공화국의 위기』에서 시민불복종의 사례로 흔히 꼽히는 소크라테스와 소로의 예시를 들며 왜 양심이 시민불복종의 근거가 될 수 없는지 설명한다. 우선 어떤 주장이 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일반화될 수 있어야 하는데, 양심은 일반화가 불가능하고 심지어 때로는 서로 다른 양심들끼리 충돌할 수도 있다. 흑인 민권 운동을 자신의 양심을 이유로 반대했던 로스 바넷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더해 양심은 ‘선한 인간’이기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좋은 시민’이기를 요구하는 정치적 영역에서는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없다. 이처럼 양심은 주관적이고 비정치적인 데 반해, 시민불복종이 관여하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이고 공적이기 때문에 그 근거를 양심에서 찾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다.

아렌트는 한발 더 나아가, 어떤 행위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행위가 될 때만 비로소 그것을 시민불복종이라 칭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그가 공화주의에 기반을 두고 권력과 국가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고 토의하는 과정에서 권력이 형성된다고 봤다. 서로 결속을 이룬 수평적인 개인들이 바로 권력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시민불복종 행위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의 의견 교환과 연대를 통해 특정 변화에 필요한 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아렌트의 견해다. 이러한 개인들의 결속을 통해 나타나는 연합이 바로 ‘자발적 결사체’다.

결국 아렌트는 어떤 행위를 시민불복종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양심에 근거한 개인의 행위를 넘어, 공동의 의견을 가진 여러 개인이 자발적 결사체를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이 개인으로 고립되지 않고, 하나의 권력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김정한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는 “아렌트는 개인의 양심을 넘어서, 집단적인 협력, 연대를 통해 그 행위가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경우를 시민불복종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아렌트와 같은 맥락에서 현대의 프랑스 철학자 발리바르는 시민불복종을 아예 새로이 규정할 것을 주장했다. 시민불복종의 영어 단어 ‘civil disobedience’에 해당하는 단어를 프랑스어로 옮기면 ‘개인적인 시민불복종’에 해당하는 ‘désobéissance civile’로 번역된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이를 ‘집합적인 시민 불복종’에 해당하는 ‘désobéissance civique’로 표현하기를 주장한다. 불복종이 시민 개인의 양심과 관련된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집합적 실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시민 불복종의 토양이 척박하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인물부터 시작된 시민불복종 정신은 양심이라는 개인적 차원에서 출발해 연대와 결사라는 정치적 차원까지 변화해왔다. 그리고 그 어떤 정치적, 철학적 논의보다도 오늘날 우리의 삶에 가까이 맞닿아있다. 사상가들이 시민불복종의 본질을 고민하는 오랜 시간동안 시민들은 그 본질을 현실에 효과적으로 구현할 방법을 고민해왔다. 간디는 영국군이 폭력을 행사할 때 행위자들이 완전한 비폭력으로 대응하며 맞고 고통받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큰 파급력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비폭력을 고수했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흑인 분리 정책에 맞서며 백인 전용 버스, 영화관, 식당에 고의로 ‘앉아있기’를 하며 직접 행동(direct action)이 시민불복종의 한 유형으로 자리매김했고, 흑인 차별적 행태가 벌어진 건설현장 앞에서 교통을 막는 등 다양한 방식의 시위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시민불복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는 시민불복종 행위와 정신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 원인은 집회와 시위에 대응하는 정부의 강경한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경찰은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해 집회를 ‘방해’하는 도구로 법을 악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본래 도로를 점거하거나 파손해 교통에 심각한 방해를 초래할 때 적용되는 도로교통법을, 시위대가 도로에 서 있었다거나 지정된 인도 대신 반대쪽의 인도로 행진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집회 참여자를 기소하는 거의 모든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밖에도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된다는 비판을 받는 집회 신고제, 소음·장소·인원 기준 등 경찰의 지나친 법 적용이 집회 자체를 방해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시민들의 집단행동이 실제로 어떤 의도적 불법 행위를 하기도 전에 경찰에 의해 해산되거나, 개최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김선욱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이 그들의 의견을 사회와 공유하고 전파할 수 있는, 대중 호소의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차단된 상태”라고 비판했다.

시민불복종의 권리는 물론이고 집회를 통해 자유롭게 모여서 의견을 펼칠 권리조차도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중들은 위법행위에 거부감을 느끼고 자기 검열을 시작했다. 오현철 교수는 “한국에서의 합법적 시민운동은 하버마스가 제시한 '자기제한적 시민운동'과 유사하다”며 “시민운동은 불법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강박에 행위자들이 스스로를 제한하고 적법한 활동을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국가의 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있어야 그것을 불복종이라 부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행위자들은 조금의 위법행위만 있어도 '불법폭력'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을 우려해 최대한 온건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는 2011년 미국의 금융위기로 시민들이 월가를 점령하며 시위했던 경우나, 지난달 프랑스에서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극렬한 시위로 고등학교 100여 곳이 휴교한 사례와는 사뭇 대조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이같이 온건한 방식의 저항이 한국 사회에서 실제 변화를 불러온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현철 교수는 “집권 세력이 악의적으로 무시하는 정책을 취하면 딱히 다른 방법을 활용하기 어렵다”며 “이명박 정부 이래로 많은 촛불집회를 비롯한 많은 시위와 집회가 있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시민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고 탄압하는 정부 아래서 자기제한적 시민운동은 처음부터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므로 이러한 활동 방식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 내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시민불복종 정신이 아주 당연한 시민적 권리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김도균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시민불복종은 시민사회의 요구를 국가와 제도 정치권이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명”이라며 “이는 한 사회의 기본적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실정법을 어김으로써 실정법의 토대인 국가질서를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므로 마땅히 옹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불복종, 상상력을 펼쳐라

우리 사회의 시민불복종 정신은 그 스스로도 정체 상태에 놓여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부족한 것이다. 김정한 교수는 “결국 상상력의 문제”라며 “더 큰 효과와 참여를 불러올 수 있는 새롭고 창조적인 방식의 발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다양한 모습으로 시민불복종이 발전하지 못하고 관행화된 집회 형태에만 머물러있다는 것이다. 집회 이외의 새로운 방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집회 자체도 광장에 앉아서 정해진 연사의 연설을 듣고, 잠깐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다가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식으로 정형화됐다. 또 현재 대부분의 집회가 취하는 형식은 많은 대중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김상연 씨(사회학과·12)는 “운동권 중심의 집회 문화가 남아있어서 그런 운동권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참여하기 어렵다”며 특정 조직을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계획되는 집회 문화를 지적했다. 이에 더해 지난해 진행된 민중총궐기의 경우 사회 전반의 모든 문제를 끌어모아 수많은 요구를 한꺼번에 주장하다 보니 결국 무엇을 외친 집회였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었다. 분명한 주장을 통해 사회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시민불복종이라는 저항의 형태는 그 자체로 ‘상상력’의 산물이다. 양심, 공익, 정의와 국가의 방침이 충돌할 때, 어떻게 정당하고도 효과적으로 국가에 저항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철저히 고민한 결과 시민불복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저항이 비로소 나타날 수 있었다. 또 그 정신을 기반으로 많은 운동가의 고민 끝에 비폭력 저항 운동, 직접 행동, 나체 시위, 삭발 시위, 단식 투쟁과 같은 다양한 방법론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지금도 시민불복종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의 지나친 집회 규제에 저항하기 위해 사람 없이 영상만으로 집회를 진행하는 홀로그램 시위, 마치 관련 없는 행인들처럼 서로 다른 자세로 가만히 서서 침묵을 유지하는 침묵시위 등 다양한 저항의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우리를 부당하게 지배하는 것들을 우리가 지배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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