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울대 영화연구회 '얄라셩'

「헤이트풀 8」은 지난해 2015년 12월 7일(LA기준)에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4년만의 신작이자 그의 8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 또는 이 글을 읽고도 딱히 볼 생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네이버에 소개된 짧은 시놉시스를 읽어 보자.

 

레드 락 타운으로 ‘죄수’를 이송해가던 ‘교수형 집행인’은 설원 속에서 우연히 ‘현상금 사냥꾼’ ‘보안관’과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거센 눈보라를 피해 산장으로 들어선 4명은 그곳에 먼저 와있던 또 다른 4명, ‘연합군 장교’ ‘이방인’ ‘리틀맨’ ‘카우보이’를 만나게 된다.

큰 현상금이 걸린 ‘죄수’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에게 ‘교수형 집행인’은 경고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참혹한 독살 사건이 일어난다. 각자 숨겨둔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서로를 향한 불신이 커져만 가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증오의 밤은 점점 깊어지는데...

2016년 1월, 누구도 이유 없이 이곳에 오진 않았다!

 

만약 당신이 이 감독의 이전작들을 이미 마스터한 타란티노의 빅 팬이라면 이 짧은 줄거리만으로도 이 영화에 무한한 기대를 걸게 될 것이며, 실제 영화 역시 그 기대를 절대 저버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감독의 영화에 대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전문가나 영화광들의 평을 들고 별 생각 없이 이 영화를 본다면 이게 무슨 명작이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취향에 대해 알아보고이 영화에 대입해 본다면, 이 영화 특유의 맛을 당신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특징들이 몇 개 있다. 그중 20대 때 비디오 가게에 일할 적 심취했던 6~70년대 B급 액션물에 대한 오마주에서 오는 감독의 소위 B급 감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를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그의 영화들의 잔인함이다. 신체 절단 정도는 예사고, 살점이 터지고 피가 뿜어져 나와 화면 전체가 시뻘겋게 피칠갑된 장면들은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를 보러 간다면 당연히 기대하게 되고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헤이트풀 8」에서도 거구의 남자가 여죄수의 머리를 권총으로 후려치거나 팔꿈치로 코에 사정없이 박아버리는 것 정도는 가벼운 시작일 뿐이다. 독약을 먹고 피를 토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감독은 한 배우의 얼굴을 총으로 말 그대로 터트려 버리거나, 2시간 23분 만에 막 지하실에서 올라온 채닝 테이텀의 뒤통수를 1분도 되지 않아 총으로 갈겨버린다. 하지만 감독이 연출하는 잔인함이 역겹기보다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오락 장치로 잘 활용됨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너무 잔인한, 필요 이상의 폭력성에 조금만 익숙해진다면, 오히려 그 과도함이 관객을 불편하게 하기보다 영화를 더욱 영화로 보게 해주고, 그래서 영화를 더욱 편하게 오락으로 즐기게 해준다.

또 타란티노 특유의 대사는 영화 내내 압권이다. 그 많은 대화를 이루는 대사의 방대한 양뿐만 아니라 각 대사가 비꼬고 있는 숨겨진 의미들이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듣도 보도 못한 소재로 만담을 풀어나가는 감독의 입담은 과연 정말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대화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오직 톡톡 튀는 대사만으로 그 많은 영화들의 각 캐릭터들의 개성과 매력을 완성시키고 더욱 더 관객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빠져들게 해준다. 챕터(chapter) 3 전까지 약 1시간 35분 동안 기껏해야 도머그(죄수)가 뺨을 맞고 마차에서 떨어지는 씬 외에는 크게 액션으로나 연출적으로 눈에 띄는 재미를 이 영화에서 찾기 힘들다. 하지만 싸구려 잡지 같은 저급한 대화들과 그걸 살리는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전혀 스토리가 늘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더 긴장감을 끌여올려줌으로써 마지막 권총 단 한발로도 충분히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영화 속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또한 감독 특유의 색깔이 있다. 감독은 시간의 순차적인 흐름보다, 플롯을 큰 흐름의 챕터로 구획하고 각 챕터의 시간적 구성을 앞뒤로 섞은 후 그 사이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다.「헤이트풀 8」에서는 챕터 1부터 3까지 순차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챕터 4에서 뜬금없이 새로운 사건의 시작을 설명하는 짧은 내레이션과 플레이백이 있다. 심지어 챕터 5에선 그 날 아침에 일어난 두 번째 이야기의 전말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잘못 사용한다면 상당히 유치하고 수준 떨어질 수 있는 실험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미 타란티노는 그의 이전 영화들에서 축적된 노하우로 두 이야기를 탄탄하게 전개하면서도 전혀 식상하지 않게, 또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영화 전반에 걸쳐 나오는 링컨의 편지나 초반부와 대조되는 후반부의 인물간의 관계 또한 더욱 스토리의 구성을 완벽하게 해주면서도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피와 폭력의 오락적 사용,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수다, 동화책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 이러한 특징에서 나타나는 감독의 태도를 보면, 타란티노는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 ‘재밌게’ 보는 게 영화의 최고의 가치라 생각하는 게 느껴진다. 세세하게 언급하지 못했지만, 음악 감독 엔니오 모리코네의 환상적인 서부배경음악이라든지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의 특색을 살려주는 미술들, 대사 속 블랙 유머, 각 캐릭터 특유의 억양, 독특한 화면 비율까지 영화를 보기 전까진 느낄 수 없는 재미들이 영화를 보면 볼수록 튀어나온다. 눈 속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부터 링컨의 편지의 낭독으로 끝날 때까지, 그 사이의 모든 대사와 카메라 워킹, 미장센, 심지어 이번 영화에도 역시 등장하는 레드애플담배까지, 모든 영화 속 요소들이 가진 의도는 오직 하나의 심플한 이유에 있다.

“because it's so much fun” (쿠엔틴 타란티노 「킬빌」 인터뷰에서)

 

김시온(건축학과·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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