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소설가 김솔

▲ 소설가 김솔은 세 작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면에 있는 것을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게 카프카였다면, 보르헤스한테는 생각하는 방법을, 마르케스한테는 서사를 쌓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어느 따뜻한 봄날의 오후, 소설가 김솔과 함께하는 조금은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가벼운 안부에서부터 시작해 소설과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조금은 무거운 물음이 오가는 사이, 처음에 자신을 평범하고 재미없는 회사원으로 소개했던 그는 점차 특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꾼으로 변해갔다. 2012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내기의 목적」으로 등단한 그는 “대학교 때 너무 공허했던 그 순간에,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건 여행과 독서뿐이었습니다”라며 그 독서의 한 방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4년 단편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를 출간했다. 이를 두고 그는 “모래주머니를 떼어낸 기분입니다”라며 “제가 소설을 쓰고부터 15년 동안의 기록들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제게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지난 4월에도 소설 「유럽식 독서법」으로 제7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평론가들 사이에서 소설의 틀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가로 통한다.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그의 작품을 “소설이라는 장르가 또 한 번 변태를 일으키려는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고 평하며 그를 자기만의 공방에서 소설을 찍어내는 독특한 기술자로 표현했다. 실제로 고려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솔은 소설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온갖 재미있는 실험들을 진행하는 실험가에 가까운 소설가다. 그의 손을 거쳐 소설들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고, 소설 너머의 작가와 독자들마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실험 첫 번째. 서사에 모호함의 안개를 피우다

확률의 세계에서 모든 사건은 반드시 일어나는 동시에 전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두 가지 경우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이 확률을 결정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동전은 무한히 많은 면으로 이루어졌을 게 분명했다.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 중에서

김솔 작가의 소설들은 명확한 인과관계에 따라 하나의 완결된 서사를 추구하는 일반적인 소설의 법칙들을 뒤엎는다. 그의 소설은 모호한 서사, 즉 확실히 정리되지 않는 서사를 기반으로 한다. 소설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는 이별을 택한 한 커플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은 동거 중에 생긴 각종 세간을 팔아버리려고 가라지세일을 연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이별의 한 과정으로 가라지세일을 연 것인지는 점차 모호해진다. 점점 그들의 관심은 오직 판매 수익을 올리는 쪽으로 집중된다. 그들에게 사랑이나 이별이 동전 던지기와 같은 확률게임에 불과한 것이 됐을 때쯤, 둘이 심지어 레즈비언 커플이었다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드러난다.

이와 같은 불확실한 서사를 쓰는 의도를 묻자 그는 “모든 상황과 이야기는 단계별로 가야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왔다 갔다를 반복해요”라며 “자꾸만 갈팡질팡하는 소설이 써지는 것은 아마 현실이 그렇다고 내가 믿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라 말했다. “누가 내 소설이 등장인물도 그렇고 너무 불확실하다고 하더라고요”라면서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라 말하는 그의 소설론은 꽤 확실하다. 소설이 결국 현실을 반영하는 법이라면, 소설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결코 명료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모호함을 추구한다.

모호함. 이것은 김솔 소설가가 소설의 파격을 위해서 벌인 첫 번째 실험이다. 제대로 된 갈등 한 번이 없고, 그다지 명확하게 묘사되는 주인공도 없는, 그렇다고 제대로 된 결론이 나지 않는 서사. 이를 놓고 김솔 소설가는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던 거죠”라며 “독자들이 길을 잃게 하고 싶은 의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애초에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은 현실을 소설 역시 있는 그대로 담아야 하고, 그렇기에 소설가 자신도 갈팡질팡해야 한다. 더불어 그는 책을 읽는 독자들마저 이 애매한 서사에서 길을 잃기를 바란다. 그래서 작가 김솔은 첫 실험으로서 서사에 과감하게 안개를 드리운 것이다.

실험 두 번째. 독자의 충격을 위해 형식을 바꾸다

어쨌든 도장을 만드는 공방이 사전을 만들기에도 적합한 공간인 것만은 그에게 분명했다.

-「잠정적인 과오-‘쓰다’의 일곱 가지 쓸모」 중에서

평론가들은 흔히 김솔을 보르헤스주의자로 분류한다. 보르헤스는 라틴 문학계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파격적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형식주의 작가로 유명하다. 이런 보르헤스를 연상시킨다는 것은 김솔 역시 형식주의자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의 소설들 곳곳에는 기존의 소설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이상한 형식들이 사용됐다. 대표적인 예로, 소설「은각사(隱刻寺)」는 글의 첫머리에서 대뜸 이야기의 결말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라는 말이 항상 단락들의 맨 끝에 등장하면서 소설은 완전한 역순행 구성으로 진행된다. 뒤에서부터 읽어야만 잘 읽히는 글이 된 셈이다. 「주석본: 아주 오래된 여자」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운문에 가깝다. 하지만 이 운문들 사이에 괄호들을 집어넣고, 그 괄호들 속에는 주석에 해당하는 긴 설명을 집어넣었다. 전혀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 작품은 그 괄호들 속에 담긴 이야기들 덕분에 소설로 분류된다.

이런 파격적인 소설 작법을 두고, 그는 “사실 악의적이었어요”라며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목적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독자들이 길을 잃어서 계속해서 다시 읽어야만 하는 소설, 외관부터 충격을 받아서 한번쯤은 보게끔 하는 소설을 써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금은 브레히트적인 주장인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런 거장에까지 미칠 바는 못됩니다”라며 자신을 낮췄지만, 그가 독자에게 충격을 주려는 목적으로 형식 실험을 택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평론가들이 그에게 흔히 기술자라는 수식을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잠정적 과오 - ‘쓰다’의 일곱 가지 쓸모」에서 도장 공방의 장인인 주인공이 도장을 파듯이 섬세하게 자신만의 사전을 집필하는 것처럼, 작가 김솔은 형식적 측면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며 작품을 다듬는 기술자다.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는 ‘이 책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읽어주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다소 도발적인 문구로 시작된다. 그는 “어쨌든 보르헤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작품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웠어요”라며 자신이 그런 서문을 소설집에 남긴 이유를 설명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을 보르헤스주의자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책이 사라져도 보르헤스의 책만 남는다면 다른 모든 소설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도 얘기했는데, 보르헤스처럼 형식적 파괴를 꾀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그의 관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런 형식적 파격은 결국 독자들을 향한다. 독자의 충격을 위한 형식 실험, 이것은 소설을 새롭게 하는 데 있어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험일 것이다.

실험 세 번째. 모티프를 섞어 새로운 색깔을 만들다

내가 공들여 만든 가방이 명품은 아닐지라도 진품인 것만은 확실하오. 물론 진품이라고 모두 명품은 아닐 거요. 반대로 명품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진품이 아닌 것들도 많소. 진짜 현실에서도 가짜들은 필요한 법이오.

-「소설 작법」 중에서

김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소설 작법」은 소설 창작 강의의 수강생이 자신의 첫 소설을 써내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한다. 짝퉁 가방을 만드는 노인에 대한 글을 쓰는 주인공은 자신의 글이 단순한 필담인지, 아니면 실제로 소설이 될 수 있는지를 헷갈려 한다. 표절과 모방 사이에서 자신의 글이 소설로서 제대로 작품성을 평가받을 수 있는지를 걱정하는 것이다. 이는 그가 쓰는 소설의 등장인물인 노인과도 연결된다. 짝퉁 루이비통 가방을 만들면서도 자신의 가방을 진품으로 표현하는 그의 이야기는 독창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근대 이후의 문학관을 뒤집는다.

김솔은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란 건 존재할 수 없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잦은 모티프 차용에 대한 질문에 그는 “다양한 책들을 읽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알게 되고 거기에 저를 조금 더 얹어서 제3의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라고 답했다. 그는 다양한 모티프를 소설에 그대로 담아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소설 작법」만 해도 주인공인 공손승과 마사오는 각각 중국 무협지 『수호지』와 일본 관능소설의 대표자인 단 오니로쿠의 『오욕의 꽃』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들의 스승인 도메크는 보르헤스가 사용했던 필명 중 하나고, 마사오가 내놓는 첫 소설의 내용은 박지원의 「허생전」에 비유된다. 하나의 소설에 벌써 네 개의 다른 이야기들이 녹아들어가 있는 셈이다.

다른 작품에서도 모티프의 차용은 흔한 일이다. 「유럽식 독서법」은 마누엘 푸익의 소설인 「거미여인의 키스」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등장하고, 「변신」은 아예 제목에서부터 소설의 핵심 서사까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그대로 차용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모티프의 사용에 파묻히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피그말리온 살인 사건」은 모티프로 그리스·로마의 피그말리온 신화와 백설공주 이야기를 사용한다. 이들은 김솔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조각상이 그녀를 만든 조각가의 사랑에 의해 인간으로 변한다는 피그말리온 신화는 김솔의 소설 속에서 인간의 외형을 개조하는 성형외과 의사에 대한 이야기로 바뀐다. 백설공주와 계모의 관계를 거울 너머의 상으로 재조명하고 이를 쌍둥이 자매를 묘사하는 데 활용하는 것도 원작의 이야기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이처럼 그는 모티프를 독자들이 작품에 거리감을 느끼도록 하는 데 활용한다. “소재 자체를 새롭게 하려는 것이 소설의 목적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한 그는 익숙한 소재에 새로운 이야기를 얹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어차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의 창작이 불가능하기에, 그는 기존의 모티프들을 자신의 팔레트에 한가득 짜 넣고 이를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색을 가지고 소설가 김솔만의 독특한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잠시 가진 술자리에서는 소설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웹툰이나 TV 드라마, 영화 등 여러 방식의 이야기가 성행하는 와중에 소설이 설 자리가 있겠는지에 대해 묻고 답했다. 그는 “어쨌든 사람들은 계속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할 것입니다”라며 “저는 이야기를 글로밖에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도 나름의 혁신과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아니,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지점 하나하나에 의문을 던지는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파격적인 실험들도 결국에는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찾아갈 해답이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소설의 미래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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