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영 상담 튜터

(CTL 글쓰기교실)

최근에 작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작인 『The Vegetarian』이 맨부커 국제상의 최종 후보작 중 하나로 선정됐다. 언론에서는 한강의 작품이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맨부커상의 후보작이 된 일이 ‘문학 한류’의 형성에 미칠 긍정적 영향을 강조하면서, 최종 수상작 선정에 높은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인 최초의, 세계적인 문학상의 수상 여부와 그 경제적 파급 효과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듯하지만, 한강 소설의 독자층이 언어권을 넘어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면, 그녀의 소설이 해외의 독자들에게도 호소력을 지니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새로운 독자들에 의해서 그녀의 소설은 어떻게 다시 ‘읽히는지’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펼쳐질 필요가 있겠다.

『채식주의자』는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로, 어느 순간 육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려는 결행을 시도하는 주인공 영혜의 행로가 중심 서사다. 그녀의 채식이나 거식(拒食)은 육식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근원적 폭력성을 자신의 몸에서 비워냄으로써 결백함에 이르려는, 즉 스스로의 구원을 위한 필사적인 기도다. 생명이 있는 그 어떤 존재도 해치지 않겠다는 식의, 절대적 결백성의 추구는 자기 파괴와 자멸의 경계에 닿을 수밖에 없을 터인데, 영혜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감으로써 그 경계의 의미를 문제화한다. 그녀의 마지막 발화는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다.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한강은, 그것이 파멸을 자초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내면의 진실을 끝까지, 인간의 어떤 한계까지 밀고 나가는 영혜와 같은 인물들을 통해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집요하게 묻는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잔혹함과 고결함이 공존한 공간으로서 80년 광주를 그린 『소년이 온다』에 이르기까지 한강은 ‘인간성’의 진실에 대한 탐구를 심화해왔다. 이렇듯 그녀의 문학이 천착해온 주제 자체의 보편성과 그 도저함은 언어의 차이를 뛰어넘어 독자와 작품의 내밀한 만남을 가능케 해준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한강 소설이 드러내는 인간학적 진실은 대개 강렬하고 명징한 이미지나 상징에 의해서 매개된다. 『채식주의자』에 나타난 몽고반점, 온몸에 꽃 그림을 그린 채 교합 중인 두 나신(裸身), 초록빛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나무들의 이미지는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마음에 화인처럼 선명하게 남는 상징이다. 한강의 어느 작품을 열어도 주제와 긴밀하게 조응하며, 동시에 암호처럼 비밀스런 차원을 내장한 듯한, 그래서 자꾸 되돌아와 들여다보게 되는 이미지들과 만날 수 있다. 한강 소설의 이와 같은 ‘회화적’ 요소들은 국경 너머의 독자들에게 쉽게 가시지 않는 파문을 남겼을 것으로 보인다.

문학 텍스트에는 직접 말로 주어지지 않은 구조적인 빈틈이 내재하기 때문에, 그것에 온전한 형태를 부여하자면 독자의 상상력이나 주관성을 개입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피에르 바야르는 텍스트를 활성화시키는 독자들의 개인적 반응으로 이뤄진 ‘중간 세계’가 작품의 주위에 존재한다고 상정했다. 이제 맨부커상 후보작 선정을 계기로 한강 소설은 더 많은 세계 독자와 만나게 될 것이고 그 ‘중간 세계’는 그만큼 새롭고 두터워질 것이다. 물론 『채식주의자』를 민족지(民族誌)로만 ‘읽고’ 이 소설이 한국에서는 채식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식의 엉뚱한 해석도 나오고 있지만, 나무로의 변신을 꿈꾸는 영혜를 신화 속의 저주받은 광녀와 견준다든가, 카프카 역시 유명한 채식주의자였음을 상기키시면서 『변신』과의 유사성을 찾는 등, 자신의 문화적 코드로 작중 인물을 이해해보려는 진지한 시도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중간 세계’에 더 많은 ‘채식주의자’가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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