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독일의 반난민 운동

IS와 시리아 내전으로 중동 사태가 격화된 이후 난민 유입이 증가해 지난해에만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독일로 유입됐다. 설상가상으로 악화된 유로존 상황에서 독일이 지는 경제적 부담은 커졌다. 이런 사회적 상황에 독일인들은 불안해졌고 그들의 불안감은 분노의 화살이 돼 무슬림 난민에게 향했다.


반난민 운동의 중심지 드레스덴에 가다

종교 혁명을 일으킨 마틴 루터를 낳았고 리하르트 바그너의 활동무대였던 작센 주의 주도 드레스덴. 수백 년 동안 독일 문화의 중심이었다는 자부심이 너무 컸었던 것일까. 드레스덴은 무슬림 난민 혐오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드레스덴의 구도심 중심부에 위치한 노이마르크트 광장.(Neumarkt Platz) 이곳에는 작센 주의 문화적 자긍심을 상징하듯 마리안느 교회와 마틴 루터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무슬림 난민과 이에 우호적인 정치권을 규탄하는 극우단체 페기다(Patriotische Europaer gegen die Islamisierung des Abendlandes, PEGIDA)의 활동무대다. 페기다는 우리말로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인 유럽인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무슬림 난민들의 무분별한 대량 이민을 반대하고 기독교에 기반한 유럽 문화의 수호를 주장하고 있다.

페기다는 지난 2014년부터 매주 월요일 노이마르크트 광장과 젬퍼 오페라하우스 앞 극장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오후 6시, 집회가 예정된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노이마르크트 광장 중앙 루터의 동상 앞에서 주최 측이 준비한 차량과 무대 주위로 페기다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삼색의 독일 연방기는 물론 작센 주의 깃발, 이슬람에 저항하는 의미를 갖는 깃발 등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광장으로 들어섰다. 집회에는 젊은 남성뿐만 아니라 나이가 지긋한 남성과 여성, 어린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 등 연령과 성별을 불문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참가자 대부분이 비교적 소득이 낮은 구동독 지역 출신이라는 것이다. 오후 6시 30분, 경찰 추산 8천~1만 명의 인파가 모였고 집회가 시작됐다. 300여 년 전 카톨릭에 대항해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의 동상 바로 앞에서 이번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축으로 한 종교적 갈등이 재현된 것이다.

‘무슬림 난민의 범죄에 반대한다’ ‘무슬림은 유럽에서 나가라’. 광장에 운집한 만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지난 2월 쾰른에서 발생했던 난민에 의한 집단 성폭력 사건과 더불어 무슬림 범죄와 이슬람 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기독교 문화 훼손을 한 목소리로 규탄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이슬람 난민 정책에 책임이 있는 정치권도 비판했다. 실제로 집회에서 가장 많이 외쳐진 구호 중 하나는 “메르켈은 하야하라”(Merkel muss Weg), 메르켈 독일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지난해 독일 내에서만 100만 명의 난민을 수용한 메르켈과 독일의 정치권이 독일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난민 범죄에 책임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끈끈히 뭉쳐진 겉모습과는 달리 페기다는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단체는 아니다. 오히려 페기다는 반이슬람이라는 가치에 동의하는 개인들이 전국적으로 서로 연계해 하나의 연결망을 이루는 느슨한 그물망 같은 조직이었다. 이 때문에 창설 초부터 페기다의 집회는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적관계망(SNS)을 이용해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이뤄져 왔다. 페기다 회원인 라모나 씨(25)는 “페기다는 이슬람 난민이 저지르는 범죄에 위기감을 느낀 시민들이 루츠 바흐만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만든 시민 네트워크”라며 “집회 참여자는 페기다 회원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자생하는 지역수준에서 반이슬람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녀는 드레스덴 근처의 소도시 그리마(Grimma)의 지역 수준의 반난민 단체에서 활동하던 중 페기다의 월요일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드레스덴에 왔다고 했다.

▲ 페기다 주최 측 차량 위에서 찍은 집회 모습. 페기다 회원들이 노이마르크트 광장에서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무슬림 난민 유입을 반대하고 있다.

페기다에 대한 시선

페기다만 반난민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이프치히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레기다(LEGIDA) 등 독일 각지에서 반이슬람 단체들이 페기다와 비슷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지난 2월 초 베를린에서도 이슬람 난민 유입을 반대하고 난민 범죄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쾰른과 함부르크 등 서독 지역에서도 지역 수준의 반난민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독일 전역에서 난민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시민운동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페기다를 바라보는 일반 독일 시민들의 시각은 어떨까? 다수의 독일인들이 페기다가 공격적이며 극단주의적인 우익단체라며 혀를 내둘렀다. 드레스덴에서 나고 자란 슈나이더 씨(40)는 “페기다가 추구하는 가치는 난민을 비롯한 독일 내 외국인들에게 공격적이고 위험하며 인종차별적인 것들”이라며 “독일인들 중 매우 적은 수만 페기다의 회원이지만 이들로 인해서 과거 나치의 역사를 갖고 있는 독일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는 슈미트 씨(47) 또한 “이슬람 난민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등 페기다가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지만, 그 방식이 잘못됐다”면서 “페기다의 극우적 강령과 행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페기다 집회 참여자들은 일반 독일인들이 페기다에 대해 갖는 이와 같은 부정적 여론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 집회 참가자는 “페기다가 독일의 일반 시민들과 외국인들에게 네오나치와 비슷한 극우 운동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됐다”며 “게르만 민족주의와 외국인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를 주장했던 네오나치와는 달리 페기다는 난민 범죄자, 이슬람 문화의 기독교 문화 훼손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독일의 정치세력에만 반대하는 반이슬람 난민 범죄 혁명”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페기다는 창립 초부터 표방한 19개조 정강에서 인종주의를 배격하고 종교적, 정치적 탄압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은 수용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즉 난민들이 범죄를 일으키지 않고 유럽의 기독교 문화를 손상시키지 않는 한 소규모 무슬림 이민도 괜찮다는 입장을 보인다. 실제로 페기다 집회를 감독하던 한 독일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게르만 민족주의에 기반한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범죄는 지금까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페기다의 이러한 행태와 정강들은 과거사적 부담과 그들에 대한 독일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나치의 게르만 민족주의와 같은 인종주의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부)는 “페기다가 모든 외국인이 아니라 무슬림 난민에만 제한해 혐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나치와 인종주의라는 과거의 과오에 부담을 느낀 것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5월 초 페기다의 대표 격인 루츠 바흐만은 SNS에서 난민들을 오물이나 동물로 노골적으로 묘사해 독일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는 그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페기다가 인종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방증이다.

 

중앙정치로 향하는 극우 정당의 움직임

한편 지난해 12월 프랑스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국민전선’(Front National, FN)은 28%를 득표해 공화당과 사회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비록 2차 투표에서는 참패해 단 한 석도 얻지 못했지만 선거 전 발생한 파리테러와 난민 유입에 대한 프랑스인의 감정을 보여줬던 사건이었다. 1972년 창당한 FN은 지속적으로 유럽연합 탈퇴 및 반난민과 같은 극우 정책을 내세워 왔다. 일찍이 극우정당이 등장한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에서는 2013년까지 정당차원에서 극우 움직임은 뚜렷하지 않았다. 페기다 또한 시민단체로 기층 차원에서의 운동이었기 때문에 전국적인 정치세력과의 연계 혹은 중앙에서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3년 우익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ur Deutschland, AfD)이 창당했다. 이들도 FN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난민 유입과 유럽연합 강화에 반대의 기치를 내걸었다. 하지만 2013년 창당 후 열린 첫 연방의회 선거에서 한 석도 얻지 못했고, 2014년 주의회 선거에서도 작센 주와 브란덴부르크 주 등 일부 동독지역에서 적은 의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4년과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의 유입이 급속하게 늘자 AfD의 지지도도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올해 3월에 열린 주의회 선거에서 기민당에 이어 24.4%를 득표한 작센안할트 주를 비롯해 16개 주 중 절반인 8개의 주의회에서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정치적 지지를 얻어나가고 있다.

다만 AfD가 프랑스의 FN처럼 전국적인 차원에서 주요 정치세력으로 성장할지는 회의적이다. 강원택 교수는 “IS 테러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계속되고 유럽의 전반적인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페기다와 같이 난민들에 적대적인 움직임이 증가해 AfD의 기반이 될 수 있다”면서도 “독일은 반유대주의와 같은 과거사에 대한 부담이 있어 계속해서 극단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AfD가 프랑스의 FN과 비슷한 지위를 갖는 정당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선거제도적으로도 AfD가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게 될 여지는 적다. 강 교수는 “독일에서 AfD의 세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독일의 연방선거에서 정당이 의석을 배분받기 위해서는 전국에서 5% 이상을 득표를 해야 한다”며 “연방선거 수준에서 의미 있는 정치 세력이 되기보다 주의회 선거에서 구동독 일부 지역에서만 세력을 확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AfD가 표방하는 정책과 활동들을 볼 때 AfD는 페기다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단체는 아직 연계돼 있다고 보기 힘들다. 페기다가 반이슬람 난민과 이를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낸다면, AfD는 이와 함께 유럽연합 내에서 독일의 부담 경감 등 더 포괄적인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 홍진호 교수(독어독문학과)는 “AfD는 원래 외국인 배제가 아니라 유로존 위기에서 독일의 유럽연합 탈퇴와 재정적 역할 경감을 내세우며 등장한 이후 난민 위기가 벌어지자 이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라며 “단순히 배타적인 외국인 혐오만을 주장하는 페기다보다 기존 정치권 내에서 수용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AfD가 보다 더 극단주의적 성향을 가진 페기다와 연합한다면 기존 정당 체계 밖으로 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AfD가 페기다와 연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페기다 관계자도 아직 AfD와 연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페기다의 강령들과 AfD의 정강 및 정책이 이슬람 난민을 둘러싸고 정합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페기다 조직원들이 AfD의 강한 지지기반이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드레스덴에서 열린 페기다 집회 참가자 마티우스 씨(34)는 “지난 주의회 선거에서 AfD에 투표했다”며 “페기다 집회 참가와 투표라는 정치적 활동을 통해 난민 문제에 대한 의사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 메르켈 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는 페기다 회원들

독일 사회의 힘겨운 싸움

현재 독일은 위기상황이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로존 각국의 경제위기로 인해 유로존의 맏형 격인 독일의 재정적 부담은 커져만 간다. 무슬림 난민의 유입은 지난해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해 유럽 사회의 불안 요소가 됐다. 페기다와 AfD, 그리고 각종 우익단체들은 이러한 독일 사회가 느끼는 불안감의 발로다. 그러나 독일 사회는 이에 대해 끊임없이 자성했고, 비판적인 지식인들과 언론은 지속적으로 이를 감시하며 경계의 목소리를 내왔다. 독일에는 페기다 회원보다 그에 비판적인 시민들이 많고, 극우정당보다 중도를 지향하는 정당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독일 사회는 아직도 70년 전 과거의 망령과, 그리고 현재의 위기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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