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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덩이 사립박물관, 보물창고로 거듭나려면[특집] 숫자 늘리기에 급급한 사립박물관, 대책을 모색해본다


‘뮤지엄 위크’를 맞아 주변의 한 사립박물관에 찾아간 A씨. 국립중앙박물관같이 번듯한 건물을 기대했던 그는 평범한 3층짜리 가정집에 붙어있는 ‘박물관’ 간판에 당황하고 만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생활공간과 전시공간이 뒤섞여 있고 손님이 없어 불이 꺼진 상태였다. 응접실과 식당, 탁자에 놓인 유물들엔 먼지가 가득하고 벽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는 이 사립박물관,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제 가치를 지닌 사립박물관, 그러나..

사립박물관이란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사적인 주체가 설립·운영하는 박물관이다. 최초의 근대적 사립박물관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유산을 지키고자 한 개인의 노력으로 설립됐다. 이후 약 80년 동안 한국의 사립박물관은 의학, 스포츠,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물건과 자료를 수집·전시해왔다. 국보, 보물을 중심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유물을 주로 다루는 국·공립박물관과는 다르다. 누군가가 수집하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제주도만의 풍습을 보여주는 박물관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하나둘 모은 축음기를 통해 소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도 있다. 하계훈 교수(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는 “국·공립박물관이 미처 손대지 못했던 것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모아왔다”고 사립박물관의 가치를 설명했다. 이렇듯 사립박물관은 분명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다.

사립박물관의 가치에 주목한 정부는 1991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제정했다. 이에 누구나 승인을 거쳐 사립박물관을 세울 수 있게 됐고 각종 세제 혜택은 물론,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지원과 복권 수익금의 일부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시기 경제 상황이 윤택해지면서 관심사에 따라 물건을 모으는 취미생활을 영위하던 수집가들은 정부의 진흥책에 힘입어 박물관을 하나둘씩 세우기 시작했다.

문체부가 발간한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2015년 10월 기준 등록 사립박물관은 336관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2배가량 증가했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우리나라 어느 지역을 가든 최초의 전화기부터 스마트폰까지를 모은 폰박물관, 짜장면의 역사를 조명하는 짜장면박물관 등 저마다 개성을 자랑하는 작은 박물관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 수가 크게 늘어난 것에 비해 사립박물관의 현재가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정준모 전시감독은 “사립박물관이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있긴 하나,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국가의 지원을 받는 이상 공공성이라는 기본적인 기준을 지켜야 한다”며 ‘누구나 세울 수 있는 박물관’ 이상으로 사립박물관이 지녀야 할 가치를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한 해에만 7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사립박물관을 지원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립박물관들이 예산 부족에 허덕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계훈 교수는 “현재 한국 사립박물관은 순기능이 적어지고 역기능은 많아지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꼬집었다. 사립박물관의 가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증 없이 숫자만 늘리는 진흥법

사립박물관 수는 증가했지만 그에 비해 내실 있는 곳이 많지 않은 이유는 질을 담보하지 못한 채 숫자만 늘려가는 정책 때문이다. 90년대 사립박물관 진흥책을 쏟아내던 정부는 ‘10년 안에 박물관 1,000개 달성’이라는 숫자채우기 식의 목표를 내세웠다. 진흥법은 사립박물관 설립의 최소 요건으로 유물 60점 이상, 학예사 1명, 그리고 법령에서 요구하는 시설을 제시했지만 이는 박물관 설립을 위해 필요한 물리적 조건일 뿐 박물관의 질을 보장해주진 못한다. 국제박물관협회(ICOM)에 따르면 박물관 설립에는 △소장품 취득과 수집에 관한 윤리 정책 △운영주체와 권력통제기구 △재무관리 △박물관 전문직 윤리 강령 등 내실을 높이기 위한 정관이 세세하게 요구된다.

설립의 문턱이 낮아야 사립박물관의 개성이 살아나는 것은 맞지만 질적 검증이 아예 부재한 한국에선 극단적인 폐해가 생겨났다. 부당한 경로로 취득된 유물이 버젓이 공공재로서 전시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박성원 직원은 “현재 사립박물관들엔 검증기관이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에 분쟁대상인 유물을 검증 없이 기증받아 후에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 보호법을 위반한 전과자가 박물관 관장직을 수행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13일 한국미술박물관 관장 권 모 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및 장물취득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미 2005년에도 문화재 보호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그 후에도 계속 관장직을 수행해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립박물관의 근본적인 정체성이 흔들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 2월 개최된 ‘2016 제주 박물관 포럼’에서 발표된 공동선언문에선 제주도의 사립박물관들이 유사 박물관의 난립으로 인한 정체성 부족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실제로 테마파크에 가까운 많은 상업 시설이 버젓이 ‘박물관’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 ‘트릭아트뮤지엄’이나 ‘믿거나말거나박물관’ 등은 체험 활동 위주로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것이 주목적으로 역사적 유물을 연구·보존·전시한다는 박물관의 기본 성격에 맞지 않다. 정준모 감독은 “유사 박물관은 믿고 방문한 관람객들이 만족할 만한 역사적 유물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사립박물관을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자 최근에서야 정부는 해결책으로서 평가인증제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문체부 박물관정책과 최환 연구사는 “질적으로 더 나은 사립박물관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있어 평가인증제를 시행하게 됐다”고 평가인증제의 의의를 밝혔다. 평가의 지표는 △유물 △조직 △시설 △콘텐츠(전시, 교육, 문화행사 부문별 정성평가)로 이뤄졌고, 이미 지난해 전국 등록 사립박물관을 대상으로 평가인증제가 시범 실시됐다. 더불어 문체부는 유물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관리를 돕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문화유산 표준관리 시스템’을 배포하고 있다. 이는 박물관 소장품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사립박물관이 좀 더 쉽게 소장 유물을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좀 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환 연구사는 “(평가인증제에서) 미흡으로 평가된 박물관에 대해서 제재가 가해지기 어렵다”며 그 이유에 대해 “사립박물관에 대한 관리는 사실상 지자체에서 맡고 있기 때문에 협조 요청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인 제재 방안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계훈 교수는 “(평가인증제는) 사후 대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설립 단계서부터 공공성에 대한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설립자 또한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순간 이것이 공공재가 됐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박물관 설립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공공성과 함께 본래 가치를 보존하려면

그러나 관리와 규제만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다양한 역사를 보존한다는 사립박물관의 본래 가치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합리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다양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립박물관들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본래 가치를 지켜내기 힘든 상황이다. ‘박물관 고을’을 표방하는 영월군의 경우 강원도에서 가장 많은 수인 15개의 사립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종류도 곤충, 초등학교, 미디어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일평균 관객이 100명이 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으며 운영난으로 휴관 중인 1곳을 제외하면 10명을 넘기지 못하는 곳도 4곳이나 된다. 이렇다 보니 ‘개점휴업’ 상태로 운영되는 사립박물관도 적지 않다. 하계훈 교수는 “법정 개관 일수가 있는데도 불도 켜지 않고 있다가 손님이 오면 그때서야 문을 여는 박물관이 많다”고 사립박물관의 현실을 지적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원인은 예산이 부족해 시설이 노후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사립박물관을 세웠기 때문이다. 소장품은 있지만 공간 마련 비용이 없는 사람은 폐교 건물을 값싸게 임대받아 사립박물관을 세운 경우가 많다. 2005년 폐교를 리모델링해 설립된 ‘해금강테마박물관’은 연간 17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아 거제도의 대표 명소가 됐지만 이는 드문 성공 사례다. 임대료가 저렴한 폐교는 대부분 시설이 낙후됐고 농어촌 등지에 자리 잡아 교통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영월군의 한 폐교 박물관을 방문했던 윤예지 씨(23)는 “대중교통이 없는 것은 물론 자가용을 타고도 힘들게 가야 했다”며 “시설도 전시를 관람하기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없어 운영난을 겪게 된 사립박물관들은 본래의 가치를 지키는 방향으로 운영되기 더욱 힘들어졌다. 사립박물관협회 김미영 연구사는 “개관할 땐 수집한 유물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하더라도 개인이 인력, 프로그램, 시설 유지, 홍보 등 모든 부분의 예산을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많은 사립박물관이 가치 있는 유물을 제대로 관리할 전문가를 고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감사원에서 지난해 12월에 공개한 ‘문화예술진흥시책 추진실태’에서는 전국 등록 사립박물관의 30%에 이르는 107곳이 학예사를 한 명도 고용하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관리 전문가의 부재뿐만 아니라 관리 시설 부실 문제도 발생한다. 수장고의 항온·습도를 유지할 장치를 365일 가동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여기엔 엄청난 예산이 소요된다. 정준모 감독은 “예산 문제로 장치를 가동하지 못해 온·습도 유지에 민감한 문화재, 특히 금속류는 녹이 슬고 서화류는 곰팡이가 피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사립박물관이 더욱 공공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따라서 사립박물관의 본래 가치를 보존하면서 운영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평가인증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지원책 또한 필요하다. 김미영 연구사는 이에 대해 “인력이나 교육 프로그램은 그나마 국가에서 지원이 이뤄지는데, 시설유지비나 홍보비는 전혀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더 좋은 환경에서 유물을 전시하지 못하는 사립박물관의 사정에 대해 설명했다. 정부는 현재 평가인증제를 통해 우수사례로 선정되거나 문화유산 표준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박물관을 대상으로 지원과 혜택을 더하는 등 각 사립박물관의 상황을 고려한 지원 계획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 구체화 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니다.

사립박물관은 자체적으로도 내실 있는 연구와 전시 기획,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파주 세계민속악기 박물관은 러시아 부랴트 국립민족학박물관, 네팔 민속악기박물관 등과 MOU를 체결했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생소한 나라의 민속악기와 이를 이용한 공연을 감상할 수도 있고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다. 하계훈교수는 “사립박물관은 치열하게 연구하고 그것을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으로 선보여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사립박물관의 자립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아직까진 지원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립박물관과는 달리, 해외에서는 기부가 활성화된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박물관이 자체적으로, 혹은 국가에서 재단을 설립해 기부를 장려한다. 이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안정적 운영 기반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설립자가 박물관을 개인 소유가 아닌 공공의 기부를 통해 만들어진 공공재라고 인식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세계적인 박물관인 미국 게티뮤지엄은 박물관 설립 과정부터 기금을 마련해 시작한 대표적인 사례다. 우선 건물을 지어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시작할 때부터 기부를 받기 때문에 완공 후 운영 기반이 미리 마련돼 있는 것이다.

 

현재 제기되는 사립박물관의 문제에 대한 가장 손쉬운 접근은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쉬운 길을 택하려다 문화 자산을 보존하고자 하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박물관조차 살리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기업의 자산을 통해 운영되는 사립박물관부터 영세한 사립박물관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한 만큼 적절한 규제는 물론 철저한 조사와 평가인증을 통한 합리적 지원이 절실하다.

 

김지수 기자  alsltm20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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