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서 종교의 자유는 그것이 표명되는 순간, 하나의 정당한 선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적어도 그 선언의 장이 특정 종교적 신념의 그것이 아닌 ‘공공의 장’이라는 특성이 갖추어 진다면 말이다. 강의석군 사태에서 그러한 자유가 선언된 공간은 ‘학교’였다. 자립형 사립학교를 제외한 일반 사립학교의 경우 재정의 일정 부분과 학교 설립 취지가 어느 정도 발휘된다는 면을 제외하고는 교육부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사립’이라는 특성이 조금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중등교육체제 하에서는 평준화 제도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학생에게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일반 공립학교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학교’는 공공의 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으며, 사립재단이 누릴 수 있는 ‘설립 취지에 따른 재량’도 제한 될 수밖에 없다.

 

근대적 종교 개념의 특징은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정교분리의 논의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쉽게 만나게 된다. 종교는 ‘공공의 장’에서 힘을 발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만큼 이 이야기들은 ‘오래된 것’이다. 그래서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에서 고색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아직도 이런 문제로 갈등하는가’라는 자조를 품게도 하는데, 제도의 수입과 그것을 직접 누릴 줄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채찍질하여 ‘서구적 근대화’를 쫓아 왔지만, 서구적 ‘개인’조차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주변국이 지니는 파편적 근대화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자조를 뒤로 하고 현재 우리에 집중하게 될 때, 강의석군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가치의 확립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고교생의 입장에서 자신이 속한 공적 집단 내에서 부조리를 시정하기 위해서 ‘투쟁’했다. ‘자유’라는 개념이 가진 고전적 가치에 대한 실제적 학습효과가 아닐 수 없다.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자유라는 것. 한 명의 대학생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심형준

종교학과ㆍ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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