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세등등하던 8월 어느 날, 오랜만에 찾아간 내 고향, 경상남도 밀양도 역시 더웠다. 원래부터 더위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긴 하지만 올해는 특히 더 더웠다. 예년만 해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지낼만했던 고향집에도 올해는 후덥지근한 열풍만 불어와 온 집안이 뜨겁게 달궈졌다. 결국 견디다 못한 나는 에어컨 바람을 마음껏 쐴 수 있는 대형마트로 피난가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서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집에 있을 때 느꼈던 더위를 감쪽같이 잊은 채 나는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밀양 시내로 향하는 다리 위에서 보이는 풍경을 예전부터 나는 참 좋아했다. 몇 번이고 본 풍경이지만 반짝거리며 흘러가는 강물과 그 건너에 나무가 우거진 낮은 산 중턱에 마치 자연물처럼 주위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서있는 누각은 조금 수수하지만 볼 때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랜만에 본 그 풍경에 마음이 동한 나는 잠시 근처 정류장에 내려 강가로 발을 옮겼다. 하지만 직접 밖에 나와서 본 풍경은 버스 안에서 보았던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풍경이라도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보는 것과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다. 강물 위에선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고 이글거리며 떠있는 태양에 눈이 부셔 그 아래에 있는 누각의 모습은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 단순히 너무 더웠다.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폭염 앞에선 풍경을 즐길 마음의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강가를 한 번 거닐어볼까 하던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나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내 내 머릿속에선 아름다운 풍경은 지워지고 오직 1초라도 빨리 시원한 버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게 되었다.

어쩌면 여름철 일상 속에서 흔히 겪는 일일 수 있는 이런 경험을 나는 2주 전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 중 일부분을 들으며 다시 떠올렸다. 연설에서 그는 우리 내부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지고 있다며 최근에 인터넷 상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자국에 대한 비하 행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옥같이 푹푹 찌는 자취방에서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우선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그곳에서 나와서 그 이야기를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 발언이 마치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풍경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던 내 모습과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다수는 폭염보다 더 견디기 힘든 현실과 싸우고 있다.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절망적인 통계 수치들. 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화면 안의 수치들보다 더 절망적이다. 폭염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듯 힘든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의 긍정적인 모습을 볼 마음의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시원한 버스에 타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타 에어컨 바람을 쐬고 더위를 잊은 이후에야 비로소 풍경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올 여름, 사람들을 괴롭혔던 폭염이 물러가고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바람도 얼마 후엔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으로 변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이번엔 난로가 피워진 밀폐된 방안에서 창밖을 보며 “겨울 풍경도 참 아름답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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