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호텔 밖 작은 외침은 멈추지 않는다
화려한 호텔 밖 작은 외침은 멈추지 않는다
  • 정채현 기자
  • 승인 2016.09.25 0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스케치] 세종호텔 노조 투쟁 현장
두 명의 노동자들이 호텔 정문 앞에서 '세종호텔 경영진을 규탄한다'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지키고 있다.

명동역 10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금빛 간판에 ‘세종’이라는 영문명이 큼지막이 적힌 호텔이 보인다. 1층 내부를 엿보면 커다란 샹들리에 양옆으로 넓은 에스컬레이터가 고급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세종대 재단인 대양학원이 운영하는 세종호텔은 330개의 객실 규모를 자랑한다. 2014년 한국호텔업협회 등급심사에서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특1급’으로 승격된 전국에서 손꼽히는 호텔이다. 호텔에서 나가는 노인을 곁에서 부축하며 택시까지 데려다주는 친절한 호텔리어가 정문 안팎을 수시로 드나든다. 하지만 그 친절함은 호텔의 노동자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한 듯하다. 다수의 행인, 관광객, 투숙객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한두 명의 노동자가 피켓을 지키고 서 있었다. 세종호텔 노동조합(세종노조)은 2015년 1월부터 ‘해고자 원직 복귀’ ‘연봉제 폐지’를 외치며 평일 세종호텔 정문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세종호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비정규직 확대인가

 

세종호텔의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회사에 불만을 품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노동 환경이 악화된 것은 2009년 주명건 회장이 부임하고부터라고 말한다. 주 회장은 1996년 세종대 이사장으로 취임했지만 2004년 교육부 감사에서 113억원에 달하는 교비를 횡령한 비리가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2009년 상지대 김문기 총장 등 사학 비리로 퇴진한 인사들이 복귀할 때 함께 세종대의 재단 이사이자, 재단의 수익사업체인 세종호텔 회장으로 복귀했다. 김상진 전 세종노조 위원장은 “주명건 회장 이전의 경영진이 회사를 운영했을 때는 동종업계에서도 세종호텔의 고용환경이 안정됐다고 알려졌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노조의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라는 구호의 시발점은 세종호텔이 2010년 권고사직, 저성과자 해고제 등을 도입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봉제에 따라 지급하던 임금을 업무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성과연봉제로 전환하며 성과가 낮은 노동자에게 사직을 권고했다. 그래서 2009년 말엔 298명의 직원 중 296명이 정규직이었지만, 정규직 비율은 점점 줄어들어 현재는 140명도 되지 않는다. 정규직 감축으로 부족해진 인력은 아르바이트, 용역, 촉탁계약직 등의 비정규직으로 채워지는 실정이다. 이러한 비정규직 인력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기존 정규직이 해오던 업무량을 소화하며 최저시급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시위현장에서 홀로 피켓을 지키던 노조원 차현숙 씨는 “재작년 메르스 사태 때 객실이 많이 비어 객실 청소업무를 맡던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임시직을 점차 확대하는 것은 남아있는 정규직 직원의 노동 환경 악화라는 결과도 낳았다. 정규직 자리에 임시직 직원을 배치했지만, 정규직이 담당하던 전문적인 업무를 소화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측은 세종호텔 상설뷔페 ‘엘리제’에서 일하는 전문요리사를 23명에서 13명으로 줄이고 일용직 노동자를 그 자리에 고용했다, 고진수 세종노조 위원장은 “김밥을 마는 등 간단한 일은 일용직이 할 수 있지만 전문적인 조리는 전문요리사의 몫이라 여러 명 몫의 일을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를 압박하는 그들의 방법

 

노조는 세종호텔의 방침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을 강제 전보하거나 인사고과에서 낮은 점수를 매겨 연봉을 삭감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측이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기시설물을 관리하던 노동자를 세탁물을 나르는 업무로 전보하는 등 기술과 경력에 무관한 보복성 조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호텔 노동자들의 부서 업무는 대학의 전공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부서 업무를 단계적으로 거치며 부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방식이기에 부서를 변경하는 일이 잦지 않다.

예컨대 객실 부서에 배정된 노동자는 로비에서 투숙객의 짐을 나르는 일로 시작해 객실 안의 비품을 관리하는 객실 정비 업무를 거쳐, 연차가 쌓이면 프런트에서 투숙객을 상대한다. 그래서 다른 부서로 전보된 노동자는 이전 부서에서의 경력과 상관없이 가장 초보적인 업무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고 위원장은 “관리자로 발령받았다고 해도 업무가 상이하기 때문에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다”며 “이는 노동자가 여태껏 쌓아왔던 경력, 직급, 자존심을 무너트린다”고 말했다.

성과연봉제에 회사의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한 부당한 감봉도 압박의 수단으로 지적된다. 고 위원장은 “실제로 조리 업무를 맡고 있는 노조 간부에게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라는 평가를 내려 감봉시켰다”며 “사람들과 웃으며 밥 먹는 등 인간관계에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 내린 억지스러운 평가”라고 말했다. 연봉제를 실시하며 5,000만원의 연봉을 받던 30년차 조리사는 3,400만원으로 감봉됐으며, 다른 노동자의 연봉은 4,500만원에서 2,990만원이 됐다. 이들은 사측을 대상으로 노조 동의 없는 임금 삭감에 대한 반환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싸움은 계속된다

 

호텔 앞에서 매일 시위하는 노동자와 사측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다. 세종호텔은 지난 5월 일정 기준을 넘는 집회 소음에 대해 건당 100만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고, 법원은 ‘노조가 호텔 앞 인도에서 75dB이 넘는 소음을 발생시키거나 노조탄압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을 게시할 경우 1일당 100만원을 세종호텔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사측은 노조 집회가 열릴 때마다 소음을 측정해 법원에 제출했다. 고 위원장은 “사측의 소음 측정 방식이나 측정 기계의 신뢰성에 의심이 가기 때문에 이 청구에 대해 법적 공방 중”이라며 “손님을 내리는 버스가 도로에서 공회전만 해도 80dB 정도가 나오는 등 호텔이 서울 도심에 있어 항상 75dB이 넘어간다”며 부당함을 토로했다. 또 세종호텔 측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선전전에서 피켓을 잔디 위에 올려놨다는 이유로 잔디값 배상을 청구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종노조의 시위는 계속된다. 고 위원장은 “해고자 원직 복직, 노조탄압 중단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객실 정리 업무를 맡다가 2년 전 로비와 화장실을 청소하는 업무로 전보된 10년차 노동자 차현숙 씨는 “노조 가입은 꿈도 못 꾸는 비정규직도 있지 않느냐”며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노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처우 개선이 조금씩 이뤄지지 않겠느냐”며 노조 활동에 대한 소신을 전했다.

 

사진: 김여경 기자  kimyk37@snu.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