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짓에서부터 음악이 펼쳐지다
그의 손짓에서부터 음악이 펼쳐지다
  • 고유리 기자
  • 승인 2016.09.25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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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성시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콘서트홀의 넓은 무대 가운데엔 혼자 등을 돌리고 선 사람이 있다. 그가 손을 한 번 휘젓자 조용하던 무대에 화음이 울려 나온다. 작은 체구지만 큰 존재감을 가진 그는 백 개의 소리를 하나의 리듬으로 모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명확하면서도 열정적인 연주가 이어지고, 마지막 악장의 마지막 음에 다다르면 지휘봉을 들고 있는 그의 묶은 머리는 마구 흐트러져 있고 박수갈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뒷모습만 보이던 그가 돌아서서 얼굴을 보인다. 열정이 채 가시지 않은 눈빛의 주인공은 유럽에서 지휘 콩쿠르를 석권하며 주목받은 젊은 거장이자 보스턴 심포니 역사상 최초 여성 부지휘자, 나아가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 여성 단장으로 부임한 성시연 씨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사용하는 문화의 전당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그는 무대에서의 카리스마와는 또 다른 차분한 말투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기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피아니스트, 지휘봉을 잡다

“어머니께서 제가 언젠가 피아노 소리를 듣고 ‘이거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부산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성시연 씨는 본래 피아노를 전공했다. 성악을 잠시 공부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년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에 익숙했던 그는 열세 살에 첫 독주회를 열고 국내 여러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재능을 보였고,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사했던 교수를 따라 스위스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생활을 이어오던 중 성시연 씨는 스물다섯 살에 ‘슬로 모션처럼 다가온’ 독일 지휘자 푸르트뱅글러의 영상을 보고 지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피아노 음악 외의 다른 음악도 접하며 열린 시각을 가지라는 지도 교수의 말에 오케스트라 공연 영상과 CD를 찾아보던 중, 그는 그 영상에서 지휘자의 동작 하나에 단원들이 에너지를 쏟아붓고 어우러짐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피아노 연주는 작은 연습실에서 혼자 검은 물체와 친구가 됐다 적이 되기도 하고, 사랑했다가 미워하기도 하는 과정”이라며 “그렇게 혼자 음악을 하다가 오케스트라가 모여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보니 너무 강력해 보였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많은 양의 레퍼토리를 한꺼번에 배워야 했죠. 극복하는 방법은 노력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담담하게 말하는 성시연 씨는 늦게 지휘 공부를 시작해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악보의 음과 실제 음이 다른 이조악기나 총보 읽는 방법을 독학하며 기초를 다졌고, 2001년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악대학 지휘과에 롤프 로이터의 첫 여성 제자로 입학해 이듬해 베를린에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겁이 없는 성격이라 떨리진 않았어요. 지휘자가 업 비트*를 줘야 하니까 칠십 명 가까이 되는 단원들이 모두 저를 쳐다보는데, 느낌이 좋았죠.” 그는 꿈꾸듯 당시를 회상했다.

새롭게 걷게 된 지휘자의 길에서 성시연 씨는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도전을 이어나갔다. 베를린에 10년 넘게 머물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던 그는 스톡홀름 왕립음악원에 입학해 핀란드의 대가 요르마 파눌라를 사사하며 스칸디나비아 무대로 진출하기도 했다. 2004년 졸링겐 여성 지휘자 콩쿠르,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지휘자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그는 차세대 지휘자로 주목받았다. 익숙한 유럽을 떠나 보스턴 심포니의 첫 여성 부지휘자로 일하는 것 역시 도전이었다. 그는 “매주 대편성의 새로운 곡 3~4곡을 배워야 했고 잠을 서너 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며 “3년 일하고 나니 웬만한 레퍼토리를 모두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을 종횡무진으로 활동한 그는 2009년부터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일하다 2년 전부터는 경기필하모닉(경기필)에서 예술단장(상임지휘자)으로 일하고 있다. “도전은 내가 서 있는 지점을 알게 했다”는 그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필요한 건 보태고, 버려야 할 건 버리면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흔치 않은 여성 지휘자이지만,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편견을 깨나가고 있다. “콘서트홀에 여자 분장실이 없을 정도로 과거의 오케스트라는 여성에게 닫혀 있었다”고 설명한 그는 ‘여성은 이성적이지 않아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편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시즌에 초청할 여성 지휘자 수를 이미 채웠다’는 이유로 모 오케스트라로부터 거절의 답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 보스턴 심포니 126년 만의 첫 여성 부지휘자이자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 여성 상임지휘자로 선 성시연 씨는 ‘여성’이라는 단어에 얽매이려 하지도, 이를 내세우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좋은 연주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감정에 깔려있는 모든 걸 드러내는 게 음악이라고 하잖아요. 음악도 사람과의 관계도 복합적으로 알아야 하는 게 지휘인 것 같아요."

#포디엄 위에서 음악과 사람을 마주하다

‘열정적이고 명확하다’ ‘우아하면서도 정확히 계산됐다’는 평이 이어지는 성시연 씨의 지휘에는 절제된 표현에서부터 나오는 강렬함이 있다. 이에 그는 지휘할 때마다 ‘음악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뿌리내리듯 하는 것’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스승 요르마 파눌라에게서 이 말을 들은 그는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내 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항상 이 가르침을 떠올렸다. ‘뿌리를 내리는 것’에 대해 그는 “더 크고 풍성한 소리를 내기 위해선 더 깊숙이 음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무조건 크고 역동적인 동작을 하기보다는 작은 동작 안에서도 깊은 에너지를 내면서 연주자의 소리를 끌어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07년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받아 ‘말러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만큼 말러는 성시연 씨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다. 특유의 열정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그의 지휘는 복잡하게 얽힌 듯한 말러의 곡과 만나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죽기 전에 연주하고 싶은 곡으로 2번 교향곡 ‘부활’을 꼽는 그는 “복잡성이 말러의 매력”이라고 설명하며 “아주 복잡하게 얽힌 전선에서 하나라도 빼면 불이 들어오지 않듯 말러 음악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의미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그는 경기필 취임 후 첫 공연에서의 말러 2번 교향곡 무대를 언급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손을 휘젓는 게 왜 필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농담처럼 말을 꺼낸 성시연 씨는 곧바로 “무대에서 비춰지는 게 다가 아닌 직업이 지휘자”라고 덧붙이며 무대에 서기까지 지휘자가 하는 일을 설명했다. 오케스트라의 계획과 주최측의 의견을 반영해 레퍼토리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길고 지난한 과정이 이어진다. 곡이 정해지면 총보(스코어)를 피아노로 쳐보며 중요한 성부와 멜로디를 구분하고, 악장 전체의 흐름을 파악한 뒤 작품에 녹아있는 역사를 공부한다. 그는 “그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생각해 보며 거의 외우는 단계에 이른다”며 “그때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거친 뒤 무대에 선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케미스트리가 없다면 결코 좋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며 단원들과의 관계도 강조했다. 가지각색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만큼 지휘자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음악은 하나의 언어’라고 거듭 강조한 그는 단원들과의 소통도 음악을 기본으로 이뤄진다고 말한다. 그는 “지휘봉을 드는 행동으로 ‘Let’s talk’라고 말하는 셈”이라며 “지휘를 하면 연주자들이 음악으로 반응하고 그에 맞춰 다음 선율에 대해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경기필의 키를 잡고 출항하다

부지휘자 또는 객원지휘자로 활동하던 성시연 씨가 처음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자리잡은 곳은 국내 최대 규모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경기필이었다. 처음 맡은 리더의 자리는 오케스트라의 살림부터 음악적 방향 지시, 홍보까지 음악 외적으로도 더 많은 책임이 따랐다.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그는 “나 자신만을 위해서는 하지 못했던 홍보나 예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오케스트라를 위한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고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경기필의 한계를 예상하는 말도 들어봤고 수원에 오케스트라가 왜 두 개냐는 이야기도 들었다”는 그는 취임 이래로 경기필하모닉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술단장이 된 그는 국내 최초 멘델스존 오라토리오 ‘엘리야’ 전곡 연주로 시작해 새로운 레퍼토리를 소개하는 ‘마스터 시리즈’를 기획해 음악성과 신선함을 내세우고, 청소년 대상으로 모차르트와 인공지능이 작곡한 곡을 비교하는 ‘모차르트 vs. 인공지능’ 콘서트를 여는 등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는 “경기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단장으로 일하면서 성시연 씨는 한국 음악가들의 현실에 대한 문제를 더 깊이 체감하고 있다. 그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독일의 경우 예술가들이 소속된 단체의 활동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또 그는 “예술가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한 재능기부를 당연시하는 것은 그들의 땀방울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예술가의 재능기부를 당연시하는 일부 시각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지원과 처우 개선만을 요구하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예술에 정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뛰어난 오케스트라를 외치기 위해서는 이 점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최근 한 달간 연주 일정으로 독일에 머물다 온 성시연 씨는 “얼마 전 왜 이 일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일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며 “음악가 개인으로서는 이 열정이 오래가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지휘는 육십부터”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의 음악을 오래도록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업 비트: 박자젓기를 할 때 여린박에서 올려 젓는 것. 곡의 첫마디에서 센박을 유도한다.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사진: 경기필하모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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