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 라이브 클럽, 록 음악에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장소는 홍대다. ‘홍대씬’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인디 음악가들이 일궈내 음악가들과 팬이 모여드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거듭났지만, 수년 전부터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 이에 음악가들은 홍대를 벗어나 대안적인 장소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모여들 방법을 고민해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 주변에도 대안적인 음악적 환경이 생겨나려 하고 있다. 20년이 가깝게 이어져 온 밴드 경연 ‘따이빙굴비’가 있고, 100여 개가 넘는 많은 밴드가 활동하고 있는 이곳 서울대는 사실 7080 밴드 음악의 시초가 몸담은 곳이면서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등의 유명 밴드들이 거쳐 온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나온 밴드들과 음악의 흐름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대학신문』에서는 서울대의 밴드 문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여정을 돌아보고, 대안적인 음악 씬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관악의 현재 모습과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다.

1. 관악에 그루브가 태동하다

관악 밴드의 역사는 7080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중심엔 대학가요제를 휩쓴 ‘나 어떡해’의 주인공인 농생대 밴드 동아리 ‘샌드페블즈’가 있다. 70학번을 1기로 출발해 1971년부터 현재까지 농생대 학생들이 꾸려나가고 있는 ‘샌드페블즈’는 당시 흔치 않던 대학생 록 밴드였다. 1기 리더였던 윤장배 교수(전북대 동물소재공학과)는 “결성 당시엔 자비로 악기를 마련하고 악보를 직접 따 가며 연습했다”며 “당시 록 음악 자체가 새로웠다 보니 관객들이 농대 강당을 가득 채웠다”고 회상했다. 이후 1977년 ‘샌드페블즈’는 ‘나 어떡해’로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전국구 스타가 됐다. 대상을 받은 6기 멤버였던 김영국 씨(76학번·조경학과)는 “전국의 대학 축제에는 다 갔었다”며 “쭉 이어져 온 대학생 밴드가 많지 않다 보니 대학가요제 이전에도 섭외 요청이 많았고 이후에는 방송사 행사에도 나갔다”고 말했다.

이렇듯 첫 대학가요제 수상곡 ‘나 어떡해’는 ‘7080 음악의 기수’로 불리며 흥행했고, ‘퇴폐 문화’라는 이유로 기성 밴드들이 활동하기조차 어렵던 시절 새로운 문화가 담길 수 있는 공간이었던 대학의 록 밴드들은 7080 문화의 주역이 됐다. 서울대에서도 캠퍼스 밴드의 신호탄이었던 농대 ‘샌드페블즈’를 비롯해 공대 ‘에코스’ 등 단과대 밴드 동아리가 결성돼 활발히 활동했다. 이후에는 민중가요를 내세운 노래패 ‘메아리’ 등이 등장해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1976년 대동제에선 본격적인 밴드 경연대회가 펼쳐지기도 했다.

밴드음악의 인기가 사그라든 1990년대 서울대에선 총학을 필두로 ‘대학 문화’를 장려하며 밴드 문화의 재부흥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대중문화가 부상하면서 대학생 밴드의 위상이 7080 시대보다는 떨어져 있던 당시, ‘우리도 재밌자’는 기조를 내건 ‘광란의 10월’ 총학은 1999년 대동제에 학내 밴드 경연 ‘따이빙굴비’를 기획했고 학내 밴드들이 무대에서 다시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당시에는 밴드 동아리가 기성곡을 카피하는 경우가 주였고 ‘밴드 간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대학신문』 1999년 5월 31일 자)는 언급도 있었지만 이후 꾸준히 창작곡을 가진 밴드들이 등장했다.

학생들은 학생단체가 기획하는 축제에서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서로 뭉쳐 앨범을 내며 대학 밴드 문화를 이어갔다.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가 몸담았던 인디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 대표와 밴드 ‘눈뜨고 코베인’의 보컬 깜악귀 씨가 주축이 돼 2002년에 발매한 앨범 ‘뺀드뺀드짠짠’(뺀짠)이 그 시작이다. 고건혁 대표(심리학과·00졸)는 “곡을 창작하는 팀이 학내에 많아졌다는 걸 느끼고 알음알음 주위의 음악인들을 모아 뺀짠 1집과 2집을 발매했다”고 말했다. 이후 3집부터 마지막 앨범인 5집까지의 발매는 총학생회 문화국의 공모사업이 되면서 더 다양한 학내 밴드들이 참여하게 됐다. 초기에 ‘뺀짠’을 주도했던 이들은 다시 ‘관악청년포크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뭉쳐 이후 ‘가내수공업’으로 1집 앨범을 발매했으며, 이후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9와 숫자들’로 변모하며 홍대로 진출했다. ‘뺀짠’ 이후로 끊긴듯했던 관악 밴드들의 협업 앨범은 2009년 봄 따이빙 굴비에 출전한 밴드들이 모여 ‘관악자작곡놀이’(관자놀이)를 발매하며 부활했다.

2010년대에 접어든 뒤에도 서울대에서는 ‘따이빙굴비’의 전통이 이어지며 많은 밴드가 관악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밴드들은 학내의 따이빙굴비 무대와 그 예선인 미니 따이빙굴비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교류하며, 특히 2009년 생긴 자작곡 가산점 규정이 자작곡 밴드를 선발하는 ’자작곡 쿼터제’로 바뀌어 자작곡 밴드가 늘어난 상태다. 학외에선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을 결성해 활동했던 이재훈 씨(지구과학교육과·02졸)가 2014년 낙성대에 연 클럽 ‘사운드마인드’가 서울대 밴드들의 아지트로 자리잡았다.

관악음악증후군의 미니 따이빙굴비 무대에서 열창하는 밴드 '미친딸랑이'의 모습

음악평론가가 들은 관악씬

관악 밴드의 팬들은 혼자만 듣기 아깝고, 학내에서만 듣기 아까운 이들의 음악을 조명하고, 무대를 꾸려나가며 ‘관악씬’의 일원이 됐다. 그렇다면 관악 바깥의 음악평론가들은 관악의 음악을 어떻게 들었을까? 오늘날의 관악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두 밴드, ‘나상현씨밴드’와 ‘모반’을 대중음악평론가의 시선에서 그려봤다.

♬ ‘나상현씨밴드’ - 한명륜 평론가

나상현씨밴드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음악은 아니지만 지나치기엔 아쉬운 음악집단이다. 이들이 흥미로운 점은 자신들이 좋아하고 영향 받은 음악의 색채를 그들의 곡에 드러내는 일을 고유성의 구축보다 결코 가벼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이들의 EP ‘찌릿찌릿’과 정규 앨범인 ‘불장난’, 그리고 컴필레이션 앨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에 실린 곡 ‘뿌리염색’ 등의 넘버들을 들어 보면 그들이 매우 다양한 스타일에서 영향 받았음을 알 수 있다.

EP ‘찌릿찌릿’에 실린 ‘정전기’는 영국 밴드 ‘블러’ 등의 1990년대 영국식 감성을 보이는가 하면 ‘뿌리염색’은 데이브 나바로 재적 시절의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 대한 애정을 보이기도 한다. 거기에다 2016년 3월에 발표한 앨범 ‘불장난’에 수록된 ‘토끼춤’과 같은 곡은 최근 유행하는 댄서블한 사운드를 선보이고 있다.

연주력이나 보컬의 표현력에서는 이미 자신의 방법론이 갖춰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전략이 독자적인 개성 확립보다 다양한 경험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즉 이들은 레퍼런스를 숨기지 않는다. 이는 의외일 수 있지만, 유일성이 콘텐츠의 가치를 논하기 어려워진 시대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자유롭고도 스마트한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 ‘MOBAN’(모반) - 이경준 평론가

지금은 해체한 ‘모반’은 키보드-베이스-드럼으로 구성된 심플한 편성의 3인조 포스트록 밴드다. 대개 포스트록 밴드들이 기타를 중심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시도에 가깝다. 게다가 꼭 포스트록에 한정된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 이들은 포스토록의 제도화된 관습, 즉 ‘응축-폭발’의 고리타분한 도식에 갇혀 있지 않다.

올 2월에 발매된 EP ‘Tri-Planet’을 들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이들은 포스트록, 얼터너티브 록, 재즈, 팝, 앰비언트가 영리하게 혼재된 음악을 들려준다. 곡은 대체적으로 길게 전개되지만 멜로디에 방점을 찍은 탓에 귀에 잘 들리고 지루하지 않다. 특히 복합적인 리듬 변주가 돋보이는 재기발랄한 트랙 ‘Back through the wormhole’과 잘 알려진 민요를 변용한 ‘Toad’ 등은 우리가 신인 록 밴드에게 바랐던 미덕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모반은 계속 진보해 나갔다. 2014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에 수록된 ‘창문’과 ‘Tri-Planet’을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창문’은 날이 바짝 선 그 정서만큼은 주목해줄 만했지만, 많은 것을 압축해 넣으려다 결국 한계를 드러낸 과거를 보여준다. 허나 모반은 편한 길을 좇지 않고 고민의 끈을 이어나갔으며 어느덧 자신의 정체성이라 할 만한 것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올 9월 갑작스레 해체한 모반의 멤버들에게 행운을 빈다.

 

음악의 흐름을 짚다


농생대 밴드 ‘샌드페블즈’의 대학가요제 수상과 함께 록 음악은 캠퍼스 밴드의 흥행을 가져왔고 ‘나 어떡해’를 발표한 6기는 앨범 ‘화랑’을 발매했다.

 

 

통기타를 내세운 포크 음악에서 록 음악으로 유행이 바뀐 뒤엔 ‘메아리’ 등의 노래패가 지어 부른 민중가요가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록 밴드 음악이 주류에서 점차 멀어지면서부터는 ‘인디’ 개념이 등장하며 학내 밴드 음악들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성격을 띠게 됐다.

한편, 학내 음악 집단들이 늘어나면서 밴드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지인들끼리 모여 만들었던 컴필레이션 앨범 ‘뺀드뺀드짠짠’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관악자작곡놀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로 그 흐름이 이어졌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2집에는 어쿠스틱 곡이 더해지는 등 점차 장르가 다양화되고 확대되고 있다.

 

2. 모여야 씬이지!

지난 5일 열린 따이빙굴비 무대에서 공연하는 밴드 'chapeau'

음악 ‘씬’은 의미가 다소 모호한 단어지만 특정 지역, 그리고 음악가들 사이의 교류는 느슨하게나마 씬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다. 밴드들이 활발히 결성되고 활동하는 관악엔 음악가를 모으고 키우는 장인 축제라는 거점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학내 밴드들은 음반과 공연으로 교류한다. 또 팬들은 밴드들의 활동을 기록하며, 같이 즐길 수 있는 더 큰 무대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 관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움직임들은 밴드 음악계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미래의 ‘씬’을 그리고 있다.

◇축제와 연대로 꾸려낸 가지각색의 ‘관악 사운드’=서울대가 음악 환경을 꾸려낸 바탕에는 1999년 대동제부터 시작된 밴드 경연 ‘따이빙굴비’가 있다. 자생성을 강조하며 ‘우리만의 축제’를 지향한 서울대 축제에서 따이빙굴비는 학내 문화를 가꾸려는 노력 중 하나였고, 이는 자작곡을 들고 나오는 실력 있는 밴드가 쏟아져 나오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따이빙굴비를 즐겨본다는 팬 김수빈 씨(자유전공학부·15)는 “학내 밴드라고 해서 ‘학생들인데 이 정도면 훌륭하지’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음악으로 항상 일정 퀄리티 이상을 보여준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본선 무대는 예선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밴드들이 자기 기량을 펼칠 일종의 ‘데뷔무대’가 돼 주기도 한다. 밴드 뮤게트의 윤영민 씨(기계항공공학부·14)는 “가장 즐겁고 기억에 남는 무대는 두 번만에 통과한 따이빙굴비 예선”이라며 “그때 잘 돼서 지금까지 음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회상했다.

따이빙굴비는 음악가를 키워내는 산실인 동시에 이들이 만나 교류하는 장이기도 하다. 예선 미니 따이빙굴비에선 참가한 밴드 간의 상호 평가로 결과가 정해지며, 이 과정에서 밴드들은 서로의 곡과 퍼포먼스를 알아가며 즐길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학내 음악가들 사이의 교류는 다른 대학에 비해 탄탄한 편이다. 서울대 음악매거진 「샤우팅」 편집장 황운중 씨(자유전공학부·14)는 “우리 학교만큼 밴드들 사이에 커넥션이 있는 곳이 많지 않다”며 “미니 따이빙굴비는 밴드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기도 해서 학내 음악의 현재를 알려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밴드들이 모이고 교류하다 보니 장르 다양성이 높아져 각 밴드만의 색깔이 뚜렷한 것도 특징이다. 서로의 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각자의 특색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각각의 밴드들이 겹치지 않는 장르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황운중 씨는 “지역을 중심으로 같은 장르를 하는 밴드들이 모여든다기보단 각기 다른 밴드들이 겹치지 않는 장르와 색깔로 활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따이빙굴비에선 록이라는 큰 주제 아래 ‘강감찬밴드’ 같은 헤비메탈부터 ‘뮤게트’처럼 외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이키델릭 록, ‘MOBAN’(모반), ‘프리즘 아파트먼트’ 등 포스트 록 밴드도 만나볼 수 있다. 심지어는 ‘FUZE’ 같은 퓨전 재즈 밴드나, ‘홍범서’ 등 어쿠스틱 밴드까지 록 장르를 벗어나는 팀들도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강감찬밴드의 멤버 오영택 씨(건설환경공학부·12)는 “학교 사람들이 트렌드에 민감하다”며 “아스트랄한 음악이 인기를 얻기 전에 ‘모반’이 나왔고 디스코 리듬의 음악이 뜰 때쯤 ‘나상현씨밴드’가 등장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 번의 축제 무대에서 그치지 않고 출연한 밴드들이 모여 음반을 발매하는 것 역시 밴드 간 상호교류를 넘어 ‘관악씬’ 연대의 지층을 쌓아가는 시도다. 과거엔 2004년부터 시작된 ‘뺀드뺀드짠짠’ 5개 앨범과 2009년 발매된 ‘관악자작곡놀이’가 있었고, 2014년엔 문화자치위원회(문자위)에서 ‘셀프앨범 프로젝트’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1집을 발매했다. 당시 문자위는 “학생회와 함께 학생 공동체가 붕괴하면서 관악의 문화자치는 크게 쇠퇴하고 있다”며 대학 문화의 기반을 닦기 위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그해 따이빙굴비에 진출한 밴드들의 곡이 실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1집은 자하연 앞과 학생회관에서 5,000원에 판매돼 5일 만에 약 250장이 팔렸고, 온라인 음원으로도 발매됐다. 이를 통해 앨범 발매 경험이 없는 많은 밴드가 자신의 음악을 녹음하고 음원을 내볼 수 있었다. 강감찬밴드의 멤버 김기범 씨(경제학과·10)는 “레코딩 경험이 없었다 보니 음질 면에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곡이 많이 알려져 재생 수가 많이 올라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악의 관객들, 공연장을 뛰쳐나와 더 큰 무대를 열어주다=좋은 음악을 하는 친구의 밴드를 알리고 싶은 학생들은 관객의 역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학교와 지역과의 연대를 통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제1회 ‘스타폴라이브데이’는 황운중 씨를 주축으로 문자위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로컬씬 부흥 프로젝트’로 펼쳐진 록 페스티벌이었다. 이들은 학외의 인디밴드 4팀과 학내 밴드 12팀을 섭외해 라인업을 꾸렸고, 낙성대 공연장 ‘사운드마인드’와 ‘롤링락70s’에서 공연을 열어 200장의 사전예매 티켓을 모두 매진시켰다. 학생들은 직접 학내 밴드들에게 새로운 무대를 선사해 주고 학교 바깥의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게 해줬을 뿐 아니라 주변 지역과도 연계를 맺어 ‘로컬’에 초점을 맞췄다. 공연장 주변 음식점과 협업해 공연 팔찌를 착용하면 할인이나 서비스 음료를 제공해 지역과 함께 축제를 꾸려나가기도 했다. 황운중 씨는 “준비하면서 밴드들에게 무대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가게들과도 협력하다 보니 ‘스타폴라이브데이’가 씬을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적극적인 대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곳의 음악을 비추고 기록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2011년 개설된 웹진 「스누라이브」는 학내 밴드의 음악을 리뷰하고 공연 영상을 업로드한다. 이들은 시즌별로 주제를 정해 처음 밴드를 시작한 신입생들을 인터뷰하는 ‘Freshmen’부터 농익은 밴드들을 조명하는 ‘Rockstars@SNU’ 등 학내 음악가들의 영상 및 인터뷰, 리뷰를 올린다. 2015년 ‘서울대 음악매거진’을 표방하며 생겨난 「샤우팅」은 관악씬을 조명하면서 과거 이곳을 거쳐간 ‘브로콜리 너마저’ ‘9와 숫자들’부터 현재 학내 밴드들, 그리고 록 외의 장르도 다룬다.

◇‘포스트 홍대’를 꿈꾸며=이렇듯 관악에서 이뤄지는 활동들은 유일한 씬으로 여겨졌던 홍대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씬’ 형성의 가능성을 비춘다. 현재 따이빙굴비를 중심으로 많은 학내 밴드들이 모여들어 교류하고 있고, 이들은 학외 공연장 등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지만, 거점이 되는 곳은 낙성대의 클럽 ‘사운드마인드’다. 이곳에선 자체 기획 공연 ‘관악의 음악들’을 열어 학내 밴드들을 소개하는 등 명실상부한 관악의 음악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국내 거의 유일한 밴드 씬인 홍대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게 되면서 홍대에서 활동하던 음악가들이 다른 곳에 정착하거나, 홍대라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곳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생겨나는 흐름과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관객 김수빈 씨는 “씬을 조성한다는 말은 조금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홍대씬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주변부’의 음악에 관심을 쏟는 것이 현재로서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 계속될 관악씬을 위해서

낙성대의 공연장 '사운드마인드'에서 공연하는 밴드 '소리느낌'. 학내의 많은 밴드들이 이곳에서 공연한다.

그렇다면 ‘관악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처럼 특색 있는 아마추어들이 등장하는 장이 될 수도 있고, 홍대처럼 전업 음악가들이 속속들이 모여드는 장소를 꿈꿔볼 수도 있다. 학내 많은 밴드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점차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밴드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결성된 ‘나상현씨밴드’는 명확한 컨셉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주목받아 네이버 뮤지션리그에서 베스트 리그에 선정됐고 홍대의 음악 페스티벌 ‘잔다리페스타’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사운드마인드에서 열린 단독공연에서 공연장을 가득 채우면서 관악의 ‘스타 밴드’로 자리잡았다. 또 블루스 록 밴드 ‘쉬나니건스’는 몽골의 국제 음악 페스티벌인 ‘플레이타임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크게 주목받는 일부 밴드들만으로 ‘관악씬’의 미래를 그리는 일은 쉽지 않다. 이들이 학생 신분으로 음악을 하는 만큼 개인적인 사정으로 음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기를 끌던 ‘나상현씨밴드’와 ‘모반’이 멤버 군입대 문제 등으로 각각 활동 중단과 해체 소식을 전했고, ‘수강신청급’으로 어렵다고 알려진 따이빙굴비 예선 접수가 이번 가을축제에 미달을 기록하기도 했다. 밴드 ‘뮤게트’의 윤영민 씨는 “우리 밴드에도 곧 대학원생이 두 명이 된다”며 “각자 일이 있다 보니 갑자기 활동이 중단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직업으로 음악을 하겠다고 선뜻 결심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예술인의 1년 평균 수입이 1,200만원 가량이며, 36%의 예술인이 일 년간 수입이 없다는 문체부의 ‘2015 예술인 실태조사’의 결과가 말해주듯 직업 음악인의 길은 녹록지 않다. ‘강감찬밴드’의 멤버 박수호 씨(서어서문학과·08졸)는 “서울대생으로서 밴드가 아닌 길을 택했을 때도 진로가 있기 때문에 더 쉽게 해체되는 경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악이 ‘씬’으로 발전하고 이어지기 위한 일차적인 방향은 지금 관악에 있는 밴드들이 각자 상황에 맞는 방법을 모색하며 지속적으로 음악을 만들고 활동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2년에 결성한 ‘강감찬밴드’는 따이빙굴비에 7회 연속 출전한 뒤로도 멤버 교체를 통해 4년째 활동을 지속했고, 지난 6월 EP 앨범을 발매하며 평택, 동두천 등의 지자체 밴드 경연과 홍대 클럽 공연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멤버 박수호 씨는 “대대적인 멤버 교체도 있었지만 중심 멤버가 남아있었고, 가지고 있던 자작곡이 학내에서 반응을 얻다 보니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는 음악가가 계속 등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미니 따이빙굴비를 포함한 축제 공연 예선 ‘관악음악증후군’(관음증)은 누구나 선착순으로 신청하면 무대에 설 수 있어 많은 예비 음악가들이 도전해볼 수 있는 장이다. 비슷한 이유로 학내 밴드들 사이에선 따이빙굴비에 여러 번 참가해 학내에서 인지도를 얻고 나면, 더 이상 출전하지 않으면서 차세대 밴드들의 길을 열어주는 일도 종종 있다. ‘뮤게트’의 양현제 씨는 “따이빙 굴비에 여러 번 출전한 밴드는 확실히 유리하지만 새로운 밴드들의 기회를 뺏게 될 수도 있다”며 “잘하는 밴드가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도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지만 짧게 활동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담은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계속 나오는 것도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홍대의 공연장들처럼 학내는 물론이고 외부의 음악가들과 관객들이 모여들 수 있는 ‘거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황운중 씨는 “공연장이 있고 공연장과 교류를 맺는 뮤지션과 그의 팬들로 인해 주변에 유동 인구가 생기면 공연장이 단 하나뿐이더라도 그곳은 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운드마인드’는 홍대 공연장 ‘카페 언플러그드’와 함께 홍대와 관악의 밴드들이 서로의 공연장으로 ‘원정’을 떠나는 ‘교류전’을 열었고, ‘단편선과 선원들’ ‘한음파’ 등 외부 음악가들이 관악으로 모여드는 사랑방 역할도 하고 있다. 현재 관악엔 ‘사운드마인드’가 유일한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이런 공간이 더 마련된다면 더 많은 외부 음악가들과 관객들이 이곳을 찾게 될 수 있다. 김수빈 씨는 “지속적으로 서울대에서 관악씬을 지탱할 관객과 음악가들이 나오고 외부에서도 관악의 음악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도 관악에는 학업을 이어나가면서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합주실에 모여 새로운 세계를 펼쳐내고, 좋은 음악을 찾아 기록을 남기고, 더 멋진 무대를 구상하며 관악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모여 ‘씬’으로 자리잡아가는 관악의 모습과 함께 자신만의 특별한 색이 묻어나는 음악에 주목해 보자.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김여경 기자 kimyk3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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